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V피플 Aug 02. 2016

인생,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태어난다.



나중에 기억이 나지도 않을 영양섭취와 유희들로 유년시절을 보낸다. 초중고에 다니면서 적당히 친구를 만들고 공부랍시고 암기에 가까운 12년을 보낸 후, 굵직한 시험 하나와 두세 개의 면접을 거쳐 대학교에 들어간다. 벼락치기와 동아리 활동을 간헐적으로 반복하며 학점을 따고 학사 자격을 취득하고 졸업을 한다. 사회에 나간다. 누군가는 회사생활로 가고, 자영업을 고민하고, 더 공부하거나, 좀 더 굵직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흔히들 말하는 한 개인의 스펙이 만들어지고 사회생활의 맛을 알아갈 때쯤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육아를 경험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슬럼프가 찾아오고, 누군가는 이직을, 누군가는 승진을 거듭한다. 어느덧 40대가 되고, 몸의 기력이 쇠퇴하며 안정을 추구하는 50대를 지나, 사회생활을 일단락 짓고, 100세 인생이란 주문을 스스로에게 강박과 같이 부여하며, 자신만큼은 인생을 즐기고 있다 스스로 위로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나이가 들고 주변의 친한 사람이 먼저 명을 달리 하기도 하고,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이 탄생하고, 적당히 벌어놓은 자산을 소비하고, 인생을 조용히 회고한다.



 
우리는 나만큼은 특별할 거라 자부하며 하루하루를 살지만, 큰 그림에서 보자면 인생은 어쩌면 조금씩 형태를 달리할 뿐 모두에게 꽤 뻔한 스토리라인을 그려가는 단역 배우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언가 나답게 살고 싶으니, 돈을 모으는 것으로, 특별한 취미나 여가를 갖는 것으로, 인맥을 최대한 쌓는 것으로, 남이 갖지 못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으로,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특별하다 느끼려 최대한 노력한다.


 
수십 년 살면서 손에 자그맣게 움켜쥐게 된
그 무언가로, 우리는 나만의 정체성을
확보했다고 믿는다.
 


비관주의나 염세주의가 아니다. 정말 거품을 빼고 인생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 거품 역시 잘만 정돈하면 인생의 솜사탕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최대한 담백하게 그리고 무미건조하게 인생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를 떠올려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100년도 살지 못한다. 그래서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무미건조한 인생을 말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더욱
무미건조해지고 말았다.
자, 우리의 인생은 어디로 갈 것인가.
 


결과물, 무언가 남기는 것, 나중에 가서 손에 꼭 쥐고 있을 무언가는 처음부터 다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허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결과적으로 우린 한정된 인생을 살아가고, 무언가 결과물로 남긴 것에 대한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어제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맞았다고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자격증을 따서 취직에 도움이 되었던 그저께를 떠올려 보자. 그 기쁨은 얼마나 오래갔는가.




 


결국 결과를 남기거나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자꾸 꾼다 것은 남이 바라보기에 
그럴듯한 무언가가 되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
남이 보기에 좋은 인생이다.



성적이 올랐다 해서, 돈이 더 모여졌다고 해서 찾아오는 기쁨은 하루나 이틀, 길어봐야 일주일이다. 그 모든 자잘한 기쁨을 모아 인생 전체의 시간에서 비율을 찾아보자. 기껏해야 5% 미만일 것이다.



 
나머지 95%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결국 순간으로 귀결된다. 내가 지금 무심코 흘려보내거나 망상에 젖어 있는 순간 말이다. 무언가 특별해지고 싶어서, 손에 얻고 싶어서 노력했던 시간들은 결과론적으로 인생의 5%를 위한 달려감이었다. 공기가 소중한 것은 몸으로 들이켜서 몸속 어딘가에 저장되기 때문이 아니다. 들이키는 순간 나를 살아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어제가 어땠건, 누군가에게 심한 질책을 받았건, 친구가 등을 돌렸건, 사업에 실패했던, 미래가 암울하건, 솔직히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가로
95%의 인생이 결정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재미있지 않거나 루틴한 그 무엇이 95%를 채우고 있다. 매우 평범하고도 단순한 일상이 오늘의 95%를 채운다. 그래도 우린 인생에 태어났으니, 내가 어떤 사람인 지 정도는 최대한 이해하고 표현하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다. 그게 인간의 불완전성이자, 95%를 철저히 소비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평범한 95%의 인생을 나다운 95%로 채우려는 것이니 얼마나 쉽지 않은 작업이겠는가.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거다. 원래 인생은 별로 재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고 오늘 하루가 힘들다 따분하다고 하는 것은 뻔한 순간을 더욱 뻔하게 만드는 자책 행위다. 보람도 없고 나아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린 평범한 95%로 재확인되는
지금 이 순간을 평범하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냥 물 흘러가듯,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현실은 따분한 것 투성으로 채워 나갈 것이 아니다. 순간을 이끌고 가려면 결국 몰입을 수반해야 한다. 재밌지 않은 일생을 최대한 나답게 채워 가려는 역설적인 하루하루를 견디는 힘은 무엇이 되어야 하겠는가.



결국 몰입이다.



재미있지 않으니, 더욱 몰입하면 거기에서 나오는 희열과 자기 발견이 조금씩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몰입하지 않고선 95%의 인생은 절대 재미있지 않다. 그래서 인생은 힘들고 따분한 한 편, 몰입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기회를 만들고, 인생의 반전 매력을 느끼게끔 한다.




 
가장 인생에서 가장 따분한 지금, 그 순간을 몰입으로 채워 나갈 자신과의 약속.
 


당신은 얼마나 하루하루를
‘몰입’으로 채워가고 있는가?


 
이전 10화 타인의 마음이 아닌, 내 마음 위를 걸어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