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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V피플 Jun 25. 2016

'인생의 프레임'은 '직업'이 아니다

직장생활의 아이러니한 심리.


 
어릴 때 우린 줄곧 얘기를 들었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해라, 그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누군가는 또 얘기한다. 대학 들어왔으니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 좋은 직장이 되었든 무언가 시험을 쳐서 새로운 전문직을 갖게 되든,, 좋은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이 최종 목표인 것처럼 얘기한다. 한 두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니 무언가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할 것 같은 답답함이 가득하다.




 
당연히 예상했겠지만, 좋은 직업을 갖게 되면 좋은 사람 만나서 원하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갖고, 내 집 마련을 하고,,,, 내 집 마련을 하면 자식을 잘 키우는 입장으로 주객 관계가 전도되어,, 내가 그렇게 어릴 때 듣던 말을 자식에게 주구장창 늘어대고 있다. 끊임없는 인간의 삶과 죽음,, 그 안에서 이러한 지향점에 대한 무한 루프.. 흡사 내가 문명의 쳇바퀴에서 아주 미미한 점 하나를 담당한 것 만 같다. 내가 태어나도, 태어나지 않아도 그 점은 누군가 담당했을 것이다…


 
생각을 달리할 때도 되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 칼럼에서 기자가 얘기했다. 인생은 좋은 일, 잘 하는 일, 돈 버는 일이 있는데, 그 세 가지를 다 갖는 직업을 가질수록 인생은 자신다워지고 행복한 거라고,,, 한국 사회는 그 세 가지 일이 다 따로 놀기 때문에, 직장 가선 돈 버느라 힘겹고, 잘 하는 일은 평일에 퇴근한 뒤에 취미 비슷한 것으로 대체 위안을 삼고, 좋은 일은 주말로 미뤄 두면서, 그래도 나는 좋아하는 일은 조금은 영위하고 있다는 자기 착각 속에 토요일 오후 3시가 자신의 것이면 평일은 힘들어도 좋다는 식의 씁쓸한 인생의 변명을 스스로에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좋은 직업을 가지면’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니, 그 전에 좋은 직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직업은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며, 일정 이상의 보수를 받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해 볼 때, 직업은 극히 나만의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쉽게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는 ‘좋은 직업’이란 어설픈 허울 아래, 아둥바둥 한다.
 
좋은 직업이라는 말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한국 사회의 프레임에 지독히도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맞다. 한국 기준의 좋은 직업을 본인이 갖고 있거나, 아니면 그 좋은 직업을 가진 누군가가 부러워서 염세적인 듯 하지만 결국 물질 만능 주위에 심취된 푸념을 늘어 놓곤 한다.




 
단언컨대, ‘좋은 직업’이란 건 한국 사회의 어설픈 자화상을 드러내는 단어다. 높은 보수, 안정된 근무 기간, 남이 바라볼 때 그럴 듯한 회사의 네임밸류, 전문적인 무언가를 행사할 수 있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들. 대기업이란 말이 기업의 분류 기준이 아니라 특권 의식을 반영한 단어가 된 곳은 아마 한국 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자. 인생의 프레임은 당연히 내가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어느 정도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우린 그렇게 적당한 사회성을 갖고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지만) 그 인생의 프레임은 ‘나를 좀 더 나답게 표현하고, 세상에 뛰어 들기 위한 내 마음의 정체성과 맞물려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톱니 바퀴나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직업에, 맨날 상사의 잔소리에 지쳐 있고, 일의 성과를 올려도 동기부여가 안 되고, 생활고에 시달려 하루하루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오후 6시를 기다리는 우리네 인생들.



그건, 직업은 있어도, ‘인생의 프레임’은 없는 것이다.




 
‘인생의 프레임’이란 내가 나 혼자만의 몸뚱아리로도 충분히 나다울 수 있지만, 사회에 몸담고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장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얘기한다. 직업을 가졌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직업을 남의 기준에 맞춰 억지로 맞췄다고 행복해 한다면,, 그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만 만족하는 결과를 낳는다. 공허하고, 남의 시선에 자신을 투영 시킨 반쪽 짜리 인생이다.
 
늘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인생은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 20%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빌프레도 파레토의 20 : 80 법칙을 어설프게 논하자는 것도 아니다. 사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얘기하자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좀 더 많이 가질 수 있고, 남이 보기에 그럴 듯한 인생의 어설픈 시각이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굳이 구분하는 줄 세우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인생은 나만이 평가할 수 있어서 재미있고 흥미진진 한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내 인생의 프레임을 정할 수 있고, 때에 따라 여러 가지 프레임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직장인이 은행에 다니는데, 그 은행이 아무리 높은 연봉을 주고 은행 중에서도 자산보유, 실적 등에 있어 최고 클레스를 달리는 곳이어도 그 안에서의 어떤 활동에 있어서도 자신의 프레임을 찾을 수 없다면, 직업은 그냥 인생의 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 직장인이 어릴 때부터 무언가 계산하고, 그것을 표로 정리하고, 타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것에 무척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 은행원의 직업은 하나의 인생 프레임으로서 유효하다.
 
우린 남이 바라보기에만 좋은 직업을 갖느라 30년 이상을 소비하며 젊은 시절을 다 보낸다. 그리고 그 남이 보기 좋은 허울만 가지면 결혼도 성공도 보장되고 남이 그럴 듯하게 바라봐 줄 거라 착각한다.



공허한 사람끼리 모여 자신의 인생 프레임도 하나 없는 상태로 남의 인생만 허무하게 바라보고 동조하는 삶. 과연 재미있기나 할까. 가슴이 뛰기나 할까.




 
다음 주 출근하면 당장 내가 직장에서 무엇을 할 때 가장 흥미를 느끼는 지 살펴보자. 직장에서 주어진 특정 사업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사업이든 새롭게 개선 점을 찾아내고 로드맵을 짜는데 흥미를 느끼는지… 내가 어떠한 일에 순수하게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 지 보고, 그것만 따로 추출해서 인생의 프레임을 설정하는데 주력하자.
 
인생의 프레임에 직업이 도움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그 직업이 ‘내 인생의 프레임’이란 제목의 나만의 인생 채널에 일정 분량 이상은 담당하고, 직업 이외의 나의 수많은 취미와 여가와 생각들이 또 다시 인생의 프레임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생의 프레임은, 내가 나다울 수 있기 위해 인생 전반에서 고민할수록 견고하게,, 그리고 더욱 행복한 형태로 나에게 다가온다.
 
살 맛 나는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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