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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댓글에 나타난 사회부적응.

by TV피플

태어나서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한 두 번 읽어 봐야 왠지 초등학생의 장난과도 같은 끄적거림인 것 같았고, 의견이라 부를만 한 것도 없어 보여서였다. 그러한 의견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니 오해는 없으셨으면 좋겠다. 요즘 인터넷을 장식하는 기사의 많은 부분이 1차 기사에 대한 인터넷 댓글을 대중의 의견처럼 치환하는 성격을 띠고 있어, 한 달여간 관심기사의 여부에 관계없이 댓글을 천천히 읽어 보았다. 물론 모든 댓글을 다 본 것은 아니였으나, 몇 가지 댓글을 확인하면 대충 그 흐름이라는 게 있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몇 년전의 댓글은 의견이라 부를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등학생 티나는 글보다는 내적으로 꽤나 불만 많고 철없는 어른들이 1차적인 느낌의 감상을 내부 여과나 파급효과 고려 없이 뿜어내는 기이현상을 보인다.


원래 하나의 현상이라는 게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꽈배기처럼 꼬아서 관찰하고자 하면 모든 게 뒤틀려 보이고, 자신에게 악영향을 준 것만 같고, 내가 꼭 심판해줘야만 할 것 같은 왜곡현상을 띠며 다가오게 마련이다. 물론, 인터넷 댓글 중엔 사려깊고 자신만의 의견을 담백하게 피력한 의견도 많기 때문에, 전체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불만 섞이고 뒤틀린 단발성 댓글이 대중의 여론인 것처럼 재생산되어 '댓글을 알리기 위한 기사'가 난무한다는 데에 있다.

인터넷 댓글의 정의가 무엇인 지는 모르겠지만, 엄연히 웹이란 가상공간 안에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본이라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받아줄거라고 예상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을 향해 정면으로 목소리를 낼 때 예의를 지키는 것은 얼굴을 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지켜야 할 '기본'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댓글을 보다 보면 정말 그 '특정인물을 향해 의견을 피력'한다는 느낌은 받기 힘들다.


오히려 꼬투리를 위한 꼬투리의 함정에 빠져들며, 자신이 그동안 이루지 못했거나 실현되지 않은 현실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보상의식에 기반한 면이 많다. 예를 들어, 가수 A가 배우 B와 사귄다는 기사가 있다고 하면, 굳이 축하의 글을 남기진 않아도 좋을 법한데, 한 번 꼬아서 축하글을 남긴다. 그리고, 둘이 어울리네, 어울리지 않네라고 두 인물을 폄하하기 시작한다. 종국에 가서는 A, B의 아주 사소한 과거 이력까지 들추어 내가며, 댓글을 올리는 자신은 꽤나 숭고한 위치에 서 있음을 억지로 드러내려 한다.


큰 그림으로 볼 때, 개개인이 사회에 불만이 많고, 삶에 대한 행복감이나 만족이 적은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즉, 사회전체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반증이며, 그러한 '화와 악의 감정'을 해소할 만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것도, 여러 가지 기반장치의 부족이 원인이라 볼 수도 있겠다.

취업에 실패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가족이 어려움을 겪는 등 여러가지 개인적 악재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설움과 푸념을 받아줄 만한 공간이 주변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시시한 기사가 더욱 시시해 지는 댓글을 달며 스트레스를 표출해 버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촌극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어떠한 집단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이루지 못한 것의 1차적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해결책을 강구하고 현실적인 노력을 최대한 기울이는 것 역시, 본인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물론 최대한 신중해야겠지만 말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전혀 상관없는 기사의 댓글에 쏟아냄으로서 아주 소모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하지 말고 건강한 감성과 의견표출로 자신이 휘둘리지 않게 스스로 지켜야 한다.

2차적으로는 아주 가볍고도 가벼운 '인터넷 언론매체의 댓글 기사화' 문제가 있다. 그 동안의 인쇄매체 언론이 어디까지 정당한 방향으로 행보를 보여왔는가는 뒤로 하더라도, 간단히 사이트 하나 개설해서 언론의 중심인 양 기사를 마구 올려서 포털사이트의 첫 페이지 한 구석을 장식하려는 노력은 눈물겹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기사의 앞부분만 짤막하게 보여줌으로써 오해와 호기심을 증폭시키며, 막상 클릭을 해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논지가 전개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답답한 마음에 클릭을 한 네티즌은 한 번더 자신의 심사를 꼬아 비방성 댓글을 남기며 화풀이를 한다. 연이은 댓글과 댓글을 전하는 기사의 '뫼비우스 띠' 와도 같은 굴레... 많은 소모를 낳는다.


'인터넷 댓글'로 밝은 사회를 건설하자는 취지도 아니요, 악플러를 처단하자는 취지도 아니지만 우리가 조금만 신경쓰면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 더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정치인, 언론인, 연예인 등 다양한 분야에 있는 TV속 인물들은 우선적 대중의 관심을 받는 직업에 처해 있다. 첫째로, 우리가 남긴 댓글은 그들이 직접 보게 된다는 사실이 기본적인 명제로 등장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소모성 비방 댓글은 어떠한 문제의 해결도 가져올 수 없고, 해결할만한 이슈도 아닌 것까지 새로운 제3의 문젯거리로 등극시키는 병폐를 가져올 뿐이다.
얼마전, 한 개그프로에서 개그맨이 인기 여가수와 콩트를 하던 도중 입맞춤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에 있어, 해당 개그맨이 엄청난 악플에 시달렸던 사건이 있었다. 아주 쓴 웃음을 짓게 만들었던 여론이였고, 제2, 제3의 패러디 꽁트를 낳기도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TV속 인물 양방 간의 SNS 비방 등은 당사자끼리 직접 만나 해결하면 될 일이고, 어떤 사회적 현상에 불만이 있는 인터넷 논객이 있다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고 정중하게 댓글로써 표현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남의 인식과 평가에 민감한 사회구조를 지닌 한국에서 나 스스로부터가 그러한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다. 결과로 판단하는, 그리고 남을 인식하고 좀 더 경쟁우위에 서려는 사회구조는 단숨에 경제발전을 이루며, 좋은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드백 없이 메아리 치는 '개인성 상실의 사회구조'는 지금 우리의 발목을 확실히 붙잡고 있다. 점점 고독해 지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듯 하다. 무언가 나도 모르게 두려운 것인 지도 모른다.


결과에 집착하면, 또다른 결과에 허무해 질 수 밖에 없다. 지금 있는 상황을 그대로 인식하고, '가능한 SOLUTION'을 현실적으로 실천하고, 의연한 자세로 담담히 또 다른 긍정적 행보를 이어나가는 '자신'을 먼저 만들 필요가 있다.


'주위를 인식하지 않으면 살기 쉽지 않는 대한민국'이란 곳에서, 인터넷 공간 속에 헛되이 불만을 성토하기 보단, 어떠한 상황이든 피하지 않고 도전해 보는 '건강한 마인드'를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가 꿈꾸는 '선순환 구조'의 사회로 조금씩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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