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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May 10. 2021

[동사서독 리덕스] (Ashes of Time)

directed by 왕가위, 2008

 ‘동사서독 리덕스’는 형식에 있어 자전과 공전을 닮았다. 사막에서 살인청부를 중계하는 구양봉(장국영)에게 고객들이 찾아오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살인을 부탁하는 의뢰인과 그 의뢰를 수행하는 강호의 검객이 구양봉의 고객이다. 각자의 사연을 축으로 자전하는 인물들은 동시에 구양봉을 축으로 공전하며 이야기의 계절을 만든다. 영화는 경칩, 하지, 백로를 지나 다시 경칩으로 돌아오는 4부 구성이다. 감독은 24절기와 사계절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통해 인물들의 고통을 손 닿을 수 없는 과거로 밀어 넣는다. 계절은 돌아와도 지난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아픔은 햇수만큼이나 중첩된다.


 반면 절기의 변화가 무색할 만큼 사막의 풍경은 1년 내내 황량하다. 봄이 와도 사막에는 꽃이 피지 않고, 겨울이 와도 사막에는 꽃이 지지 않는다. 인물들은 종종 복사꽃을 언급하지만 그 꽃은 모두 사막의 밖에 존재한다. 맹무살수(양조위)는 고향에 있는 복사꽃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복사꽃은 떠나온 아내의 이름이었다. 구양봉 또한 고향에 핀 복사꽃 꿈을 꾸었노라 독백한다. 인물들이 현존하는 사막과 그들이 꿈꾸는 꽃의 공간은 명백히 평행한다. 이듬해 경칩에 구양봉은 사막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고향에도 복사꽃이 없다. 홍칠(장학우)과의 대화에서 언급하듯, 산 너머는 또 다른 산이며 사막 밖은 또 다른 사막일 뿐이었다. 그가 꿈꾸던 복사꽃은 그의 형수가 되어버린 전 연인(장만옥)의 손에 들려있다. 그녀 역시 구양봉과는 결코 만날 수 없다. 사막과 화원(花園)은 의미뿐만 아니라 존재에서도 대조를 이룬다. 한쪽은 강호에 만연한데 다른 하나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영화는 구양봉이 고향으로 돌아가 서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음을 알리며 막을 내린다. 이는 보통의 서사라면 구양봉이 서독으로 거듭나는, 서독의 ‘출현’을 알리는 엔딩이어야 맞다. 그러나 '구양봉이 고향으로 돌아가 서독이 되었다'는 마지막 자막과 장국영의 전투씬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마침내 퇴장했다는 심상을 느끼도록 한다. 장국영의 영화를 감상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영화 텍스트의 안과 밖을 구분 지어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배우 장국영과 '아비정전'의 아비, '패왕별희'의 데이, '해피투게더'의 보영은 배우와 배역의 층위가 구분되지 않는다. '동사서독 리덕스'의 결말은 홍콩 시네마의 쇠락, 장국영의 사망이라는 텍스트 외부의 사실과 이야기의 공전축이라는 영화 내부의 장치가 서로 엮여 일몰처럼 다가온다. 동사서독 리덕스는 한 편의 거대한 석양인 셈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 시간과 공간은 그 자체로 주요한 오브제다. 감독의 시간과 공간은 현실, 혹은 이상과 어딘가 어긋나 있으며 그 점이 인물들에게 고통이다. 왕가위의 인물들 대부분은 찰나에 머무르거나 호시절로의 퇴행에 몰두한다. 그런 그들의 위치는 좁은 방이거나 추방된 타국이다. 때문에 그의 영화는 협소하다. 고이고 맴도는 회한이다. 이토록 조밀한 영화 세계를 펼쳐오던 감독은 '동사서독 리덕스'에서는 그 축을 무한히 확장시킨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에게는 영원한 달력과 무한한 지도가 주어졌다. 말인즉슨, 끝없이 헤매고 또 헤맬 운명이다. 강호에 던져진 우리는 서독처럼, 객잔의 손님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앞에 놓인 적을 베어넘기는 서독의 마지막 장면을 곱씹으며 그저 분투를 다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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