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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Apr 12. 2021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

directed by 왕가위, 1997

 왕가위 감독이 홍콩 영화감독인 이유는 단지 그의 국적 때문 만은 아니다. 그는 홍콩을 가장 잘 담아내는 감독이다. 그에게 홍콩은 무대인 동시에 소품이고, 인물이며 사건이다. 그런 감독이 자신의 여섯 번째 장편 영화를 아르헨티나에서 찍어왔다. 그의 시선이 홍콩이라는 좁은 섬에서 지구 정 반대편 광활한 대륙으로 옮겨간 것일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해피 투게더'는 너무도 비좁아 발 디딜 틈 없는 영화다. 왕가위의 아르헨티나는 협소한 아파트고, 막다른 길이었으며, 세상의 끝이었다. 감독은 시선을 옮긴 적이 없었다. 그는 광활한 대륙에 서서 좁은 섬을 바라본다. 그는 아르헨티나까지 가서 '홍콩' 영화를 찍어 온 '홍콩' 영화감독이다.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은 이과수 폭포로 향하던 중 길을 잃고 갈등 끝에 결별한다. 홍콩으로 돌아가기 위해 돈을 모으던 아휘의 앞에 보영은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나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한다. 아휘는 양 손을 다친 보영을 간호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보영은 아휘에게 애착하려 하지만 아휘의 구속은 못 견뎌한다. 반면 아휘는 보영과의 관계를 밀어내면서도 동시에 보영이 떠날까 두려워한다.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못하는 두 사람의 시간은 광장의 타임랩스처럼 점점 빠르게 흘러가기만 한다.

 

 인물들은 분명한 목적지를 갖고 출발한다. 아휘와 보영의 첫 목적지는 이과수 폭포다. 첫 번째 목적지가 좌절되자 아휘는 홍콩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들의 목적지는 어딘가 과거에 고착된 느낌이 든다. 아르헨티나는 한 때 손꼽히는 부국(富國)이었으나 개발도상국으로 전락했다. 홍콩은 한 때 자유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영국의 통치를 받았으나 1997년에 공산주의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두 국가 모두 '한 때'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분명한 목적지가 있음에도 보영과 아휘는 단번에 도착하지 못한다. 그들의 진짜 목적지는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 위치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관계적 위치는 반복해서 과거로 수렴한다. 보영은 아휘에게 그들의 좋았던 시절을 매개로 '다시 시작하자' 말한다. 즉,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보영은 영화의 러닝 타임 이전에도 수 차례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 적이 있을 테다. 보영과 아휘의 여정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버둥거림이다. 그러나 버둥거림에 대한 응답으로 영화는 이과수 폭포의 심연과 광장의 시계를 보여준다. 폭포와 시계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에도 물은 아래로 떨어지며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보영의 부상이 일종의 시계 역할을 한다. 언젠가 보영의 부상은 나을 것이다. 보영의 두 손이 나으면 보영은 아휘를 떠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때문에 아휘는 보영의 두 손이 영영 낫지 않길 바란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우주적이고 절대적인 사실이 아휘와 보영에겐 상처가 된다.


 과거로 회귀하려는 아휘와 보영을 기다리는 것은 '고립'과 '추방'이다. 그들은 도시를 떠날 수도 없고 도시에 머물 수도 없다. 설상가상 영화 텍스트의 안팎으로 보영은 여권을 상실한다. 텍스트 안에선 아휘가 여권을 감추었고 텍스트 밖에선 홍콩 반환으로 인해 기존의 여권이 무용지물이 된다. 보영은 끝내 여권을 찾지 못한다. 그들의 고립에 추방의 심상이 덧붙는다. 타국이라는 거리감과 타 인종이라는 이질감은 고립되고 추방당한 두 사내를 세상의 끝으로 밀어낸다. 세상의 끝에서 그들은 탱고를 춘다. 가슴을 맞대고 춤을 출 상대가 있다는 사실은 안도가 되지만, 맞닿은 두 가슴의 왜소함은 감출 수 없다.


  '해피 투게더'는 1997년으로 향하는 카운트 다운이다. 왕가위는 '아비정전'과 '화양연화'에서 찰나를 붙잡으려는 염원의 일환으로서 시계를 보여준다. 반면 '해피 투게더' 속 왕가위의 시계는 냉엄하다. 오벨리스크 광장 옆 전광판의 시계는 1997년을 향해 빠르게 흐른다. 영화의 시간도 홍콩의 반환과 두 남자의 이별이라는 기정사실을 향해 달려간다. 마침내 홀로 이과수 폭포에 도착한 아휘는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정방향의 시간대로 돌아온다. 더 이상 행복하지도, 함께이지도 않은 아휘에게 '해피 투게더'라는 제목은 너무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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