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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Jun 26. 2021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water)

Directed by 데이비드 맥켄지 (2016)


 요즘 세상에. 우리는 뉴스를 보며 말한다. 요즘 세상에 굶어 죽는 사람이 어딨냐고. 요즘 세상에 차별과 부조리가 가당키나 하냐고.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빈곤과 부당함이 그들의 요즘 세상이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는 은행을 터는 형제의 이야기다. 텍사스에 사는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벤 포스터)'는 지역의 소규모 은행 지점을 돌며 강도 행각을 벌인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은행을 털다니, 방범과 치안이 얼마나 철통 같은데. 그러나 그들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CCTV 없는 은행이 부지기수며 시민들은 방범과 치안을 믿지 못한다. 그들의 범행은 '오션스 일레븐' 같은 활극도 아니다. 그들은 낱장의 지폐만 훔친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신들이 털었던 은행에 가서 빚을 갚고 세금을 낸다. 황량한 서부의 풍경에서 두 형제의 도주와 보안관의 추격은 박진감은 없고 애잔함만 가득하다.


 영화는 차를 몰며 이동하는 형제와 함께 텍사스의 도로를 조명한다. 이때 보여주는 인서트 샷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개인회생 광고판이며 다른 하나는 작동 중인 석유 시추기다. 텍사스가 겪고 있는 모순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누군가는 석유로 큰돈을 버는데 정작 그 땅의 사는 사람들에겐 횡재보다 파산이 더 가깝다. 은행에 찾아온 노인은 사료 포대 밑에 돈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헛간에서 주운 동전자루를 은행원에게 건넨다. 그들은 돈을 깔고 앉고 살지만 그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은 자본만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국가'라는 시스템도 미비하다. 은행에서 강도를 맞닥뜨린 텍사스 사람들은 즉시 자신의 총을 뽑아 들어 응수한다. 그들은 공권력이 자기를 보호해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공권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들에게 부재한다. 수사를 위해 보안관이 식당에 방문했을 때도 손님들은 텃세 가득한 비웃음을 그들에게 흘린다. 토비와 직접 대면했던 웨이터는 보안관 '마커스(제프 브리지스)'의 협조 요구에 전혀 응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보안관의 수사와 공권력 행사는 그녀를 보호하기는커녕 토비에게 받은 팁을 빼앗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텍사스에는 뿌리 깊은 '자경주의'만 있을 뿐이다. 허무하게도 이러한 사실을 시인하는 건 바로 공권력인 보안관 마커스의 입이다. 토비와 태너를 쫓던 중 초원의 불을 피해 이동하는 카우보이를 보며 마커스는 조수에게 '여긴 불러도 아무도 안 온다. 저들이 알아서 해야지'라고 말한다. '로스트 인 더스트'의 텍사스는 그런 곳이다. 아무도 그들을 구해주지 않아 형제는 강도가 되었고 시민들은 자경단이 되었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어느 십 대가 보낸 iMessage 한 통으로 결말을 맞는다. 토비와 태너는 계획에 없던 다른 은행으로 방향을 돌린다. 기존의 범행 대상이었던 은행에는 모두 손님이 없거나 있어도 노인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은행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한 소녀가 몰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 구조를 요청한다. 서부극이 영화 시장에서 밀려난 이유는 그것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토비와 태너 형제가 서부 밖으로 밀려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인종이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서부 밖으로 쫓겨났다. 현대에는 자본의 유무와 세태의 빠른 변화가 추방을 주도한다. 그렇게 토비와 태너, 서부극은 서부 밖으로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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