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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Aug 15. 2021

휴가 동안 본 영화

1. 시네마 천국


 '결국 우리 모두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이다. '시네마 천국'은 결국 이야기가 된 한 사내를 담은 필름이다. 세상의 전부 같던 순간들은 잉크가 마르듯 과거라는 프레임에 담긴다. 유년 시절의 좌충우돌부터 소년 시절의 풋사랑, 청년 시절의 출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잠자리에 누워 떠올려내는 이야기가 되었다. 마침내 이야기가 된 사내,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세상의 모든 입맞춤을 남기고 떠난다. 스크린 속 입맞춤이 스크린 밖의 인물에게 전달되는 순간은 삶과 영화의 층위를 아름답게 허문다. 스크린 속 토토가 흘리는 눈물이 스크린 밖의 우리에게 닿을 때, 우리도 비로소 이야기이며 영화가 된다.


2. 블랙 위도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10년이 넘는 프랜차이즈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비결은 섬세한 캐릭터 빌드업에 있다. 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캐릭터를 대중에게 선보이며 그 캐릭터에게 관객들이 스며들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빌런들에게는 충분한 기회가 없었다. MCU의 히어로들에게는 숙적이 없다. '배트맨'에게 '조커'가 그러하듯 히어로를 집요하게 괴롭히며 궁지로 몰아넣는 지구력 있는 빌런이 없다. 오히려 MCU에서 빌런은 영화 한 편마다 소모되는 부품에 더 가깝다. '블랙 위도우'의 슈퍼 빌런 '태스크 마스터'도 마찬가지로 소모품으로 역할을 다한다. 그는 캐릭터가 아니다. 주인공을 무차별 폭행하는 로봇에 불과하다. 영화 후반부에 반전의 요소로도 사용되지만 이는 태스크 마스터의 캐릭터가 아닌 '드레이코'의 캐릭터를 위한 설정이다. 나타샤와 가족들의 서사를 위해 액션의 비중이 줄었다는 설명이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타샤 가족의 드라마가 히어로물에서 슈퍼 빌런을 배제할 만큼 깊고 탁월했는가에는 의문이 든다.


3. 데어 윌 비 블러드


 유럽에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이 있다면 미국에는 이 영화가 있다. 둘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쌍을 이룬다. 두 영화는 작은 마을을 통해 시대와 세상을 은유한다. 그리고 두 영화는 시대적 자아도취가 결국 어떤 파국을 맞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얀 리본' 속 벨 에포크는 세계 1차 대전으로, '데어 윌 비 블러드' 속 아메리칸드림은 대공황으로 막을 내린다. '하얀 리본'은 안온하고 은밀한 반면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괴력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감독은 미국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나라라는 말을 뒤집어 미국을 원죄 위에 선 나라로 표현한다. 그리고 두 인물의 충돌을 통해 죄를 세상 위로 끌어올린다. 그 모든 과정은 그저 무시무시할 따름이다.

4. 판타스틱 Mr. 폭스


 지상에는 농장주들이 필요 이상의 식량을 쥐고 있다. 그리고 동물들은 최소한의 식량도 소유하지 못하고 굴을 파서 지하로 들어간다. 재작년 칸과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어느 영화의 플롯과 무척 흡사하다. 그 영화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계층을 논하는 반면, 10년 전에 나온 '판타스틱 Mr. 폭스'는 격려와 고취를 동력으로 삼는다. 영화는 짧은 러닝 타임 동안 경쾌한 리듬으로 이 깊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결말은 오히려 훨씬 냉철하다. 지상에 있던 지배계층의 농장은 마트로 바뀌고 지하의 동물들은 그 마트를 턴다. 결국 시대가 지나도 계층의 외관만 바뀌었지 계층 자체는 곤고하다는 메시지로 이 정신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는 막을 내린다.


5. 시리어스 맨


 어느 과학자가 방송에 나와 말했다.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컴퓨터에게 계산을 시켰더니 나온 결과는 '42'였다고. 다른 패널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과학자 혼자만 웃었다. '래리'는 물리학자다. 물리학은 세상을 수식으로 서술한다. 사과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일을 'F=mg'라고 말하는 식이다. 래리 역시 세상의 움직임을 칠판에 긴 수식으로 써 내려간다. 그리고 한편으론 자신의 불행을 두고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라고 질문한다. 불행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마치 컴퓨터가 '42'라는 대답을 내놓았던 바로 그 문제를 인간이 계산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42'라는 숫자를 이해할 수 없다. '42'이라는 답을 도출한 식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확장 중인 우주를 두고 답을 내놓으라는 질문이 난센스다. 세상을 계산해내려면 위에서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계산은 커녕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사건과 불행이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엉킨 질문들을 풀어가던 영화는 마지막 순간에 토네이도를 보여준다. 토네이도의 다른 이름은 트위스터(twister)다. '시리어스 맨'은 베베 꼬인(twist) 세상을 열심히 풀어도 결국엔 트위스터를 마주할 뿐이라는, 코엔 형제가 전하는 한 마디 말장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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