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리왕 Feb 01. 2022

채우려 하면 모자라고 인정할 때 충분한 우리의 결핍

어나더 라운드(2020) directed by 토마스 빈터베르크

 '마르틴'은 중년의 고등학교 역사교사다. 그는 매사 무력하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부터 배우자와의 관계까지 모든 것이 낡고 녹슨 생활을 거듭한다. 동료 교사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는 와인을 마시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처지를 고백한다. 그러자 심리학을 가르치는 '니콜라이'는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할 때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을 말한다. 그날 저녁, 취기에 흥겨운 밤을 보낸 마르틴과 동료 교사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로 유지하는 실험을 진행해보기로 한다.


마르틴과 친구들은 자신들이 '실험'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실험에는 너무 큰 결함이 존재한다. 바로 '통제'에 대한 문제다. 실험을 할 때 변인을 통제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 마르틴과 친구들의 실험에서 변인은 '인생'과 '술'이다. 바로 인간이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인생과 술은 통제하려 할수록 인물들을 더 돌발적인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실험 역시 변질된다. 0.05%를 유지한다던 실험은 그 양을 점점 더 늘리더니 마침내 만취 상태까지 치닫는다.


 인물들은 인간에게는 0.05%의 알코올이 부족하다는 가설을 따른다. 즉, 0.05%의 결핍이 존재하며 이를 의지적으로 메꿔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들의 노력은 일시적으로는 빛을 보는 듯 하지만 시도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더 큰 결함을 야기한다. 마르틴과 니콜라이는 가정의 불화를 마주하고 톰뫼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결국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학생들의 졸업식이다.  졸업식을 통해 마르틴은 과거와 작별하고 어른으로  걸음 나아간다. 졸업과 음주는 어른이 되는 상징적인 관문이다. 마르틴의 사회적 지위는 어른이었지만 그는 어른답게 살지 못했다. 아버지, 남편, 교사로서의 모든 권위가 추락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를 타계할 방법으로 술을 마신다. 술이 가진 본연의 가치와 상반되는 행동이다. 기쁘게 취하기 위해 먹는 술이 아니라 기능적 향상을 위한 기계적인 복용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음주는 잠시 효과를 발휘하지만 이내 인물들을 청소년의 모습으로 퇴행시키며   문제를 가져온다. 마르틴은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마침내 술을 술답게 마신다. 그리고 영화 내내 거절하던 춤을 기쁘게 춘다. 그는  이상 결핍을 채우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는다. 결핍을 인정하고 주어진 삶의 모자람을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이 되기엔 평생도 모자란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