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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Mar 11. 2021

[브라질] (Brazil)

directed by 테리 길리엄, 1985

 2020년이라는 문지방을 갓 넘어왔을 무렵, 사람들은 새로운 10년의 시작이라며 꽤 들떠 있었다. 인터넷에는 지난 10년을 회고하는 글과 기사들이 자주 올라왔다. SNS를 통해 과거 사람들이 상상한 미래의 모습과 현재를 비교하는 게시물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때 인류에게 ‘2020’은 미래를 상징하는 숫자였다. <2020 원더 키디>라는 만화 제목이 이를 증명하며 ‘필립 K. 딕’의 소설 <전기 양은 안드로이드의 꿈을 꾸는가?> 가의 배경이 2021년이라는 점 또한 ‘2020’이란 숫자의 미래 지향성을 뒷받침한다. 보신각 종소리의 잔향은 나에게 우리가 드디어 미래 세상에 도착했다고 생각하게 했다. 비록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없었지만, 나는 인류가 왠지 상한가에 도달한 것만 같았다. 나는 더 나은 미래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의 우리가 모두 알 듯 불행은 내가 단꿈을 꾸는 그 순간에도 조금씩 서해를 넘어오고 있었다.


 20세기가 그리던 미래를 보고 있자면 마냥 순진한 나의 미래에 대한 상념들이 참 민망스럽다. 내 생각 기저에는 왠지 미래의 발전은 인간을 더 이롭게 하며, 자유롭고 완전하게 하리라는 인본주의적인 소망이 존재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나온 미래를 그린 유수의 작품들은 발전을 바라보며 인간을 걱정한다. 거듭하는 발전은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을 탄압하며, 더 나아가 인간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할 거라고 경고한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브라질(Brazil, 1985)>은 이런 기조를 닮아 역시 우울하다. 영화 속 정부는 ‘터틀’이라는 이름의 반체제인사를 수배하던 중 어느 공무원의 과실로 ‘버틀’이라는 엉뚱한 사람을 체포한다. 담당자들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가 고문을 받다 숨진 이후였고, 공무원인 주인공 샘(조나단 프라이스)은 고문치사에 대한 배상금을 전달하기 위해 (영화는 이를 ‘환불’이라고 표현한다) 유족들을 찾아간다. 이 세 줄짜리 시놉시스 안에는 이미 영화 속 세상에 대한 핵심들이 담겨있다. 철저한 파시즘, 관료주의, 자본주의가 영화 <브라질> 속 세상을 구성한다. 정부는 국가 수호를 핑계로 개개인을 사찰, 탄압한다. 모든 일은 서류와 절차를 통해 이뤄지며 관료들은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만 보인다. 돈으로 문제 해결하는 무책임한 물질주의,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크리스마스가 시사하는 상업화된 문화는 이 ‘멋진 신세계’의 화룡점정이다. 다만, <브라질>은 이 모든 것을 ‘코미디’의 문법으로 관객에게 보여준다. 거리의 아이들은 총을 들고 서로를 포박해 심문하는 놀이를 한다. 백화점에서 산타클로스의 품에 안긴 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신용카드가 받고 싶다고 말한다. 이처럼 <브라질>에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유머가 영화 곳곳에 깨알같이 ‘토핑’되어있다.


 <브라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오브제는 바로 ‘파이프(pipe)’다. 가장 첫 장면부터 영화는 파이프를 소개한다. 진열장 속 TV에서는 고장이 나지 않는 파이프를 광고하는데, 이내 갑작스러운 폭탄 테러로 인해 진열장이 박살이 난다. 바로 이어지는 컷은 불타는 TV를 통해 방영되는 정부 지도자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파이프는 영화 <브라질> 속 세상의 시스템을 상징한다. 현실에서도 파이프는 어디를 가든지 우리를 따라오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모든 공간 이면에는 무수히 많은 파이프와 전선이 존재한다. 파이프는 곧 우리의 일상을 둘러싸고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이 사회의 체계이다. 영화 속 도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르게 벽과 도로 밖으로 드러난 파이프들이 어딜 가던지 눈에 띈다. 심지어는 고급 레스토랑의 한가운데 멋진 분수나 조형물 대신 굵은 배관 다발들이 연결된 모습도 보인다. 파이프의 성질을 이해하면 영화 속 세상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진다. 모든 파이프는 거슬러 올라가면 자원의 수송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중앙 기관이 존재한다. 그리고 파이프는 정해진 경로와 방향으로만 자원을 수송할 수 있다. 파이프가 존재하지 않는 경로나 반대 방향으로 물자를 보내려는 시도를 우리는 ‘고장’이라고 부른다. 파이프는 중앙집권체제의 상징으로서 영화 속 파시즘과 관료주의를 은유한다. 어쩌면 요금을 내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본주의까지 포함하는 은유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마디로 ‘파이프가 고장 나는 영화’다. 영화의 중심 사건을 이끄는 인물인 ‘해리 터틀’의 직업이 파이프를 수리하는 배관공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무허가 배관 수리를 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파이프가 고장 난 샘의 집에 찾아와서 고장 난 파이프를 보고는 고장 난 부분을 고치는 대신 자신의 부품을 통해 ‘옆길’을 내겠다고 말한다. 그는 경직된 샘의 세상에 유연성을 부여하고 일방적인 세상에 융통성으로 항거한다. ‘왜 허가된 업체에 소속되어 파이프를 수리하지 않느냐’는 샘의 질문에 ‘나는 수리하는 일이 좋아서 이 일에 뛰어든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이 사회에 소멸해가는 직업 소명을 밝히는 불꽃이다. 이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샘의 집에 있는 파이프가 고장 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더 나아가 영화의 후반부에 샘이 본인이 일하는 정부청사의 파이프를 직접 고장 내는 장면부터 영화의 절정은 시작된다.


 다른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들이 미래를 향한 일종의 경고라면, 영화 <브라질>은 한 편의 암울한 농담이다. 기발한 이미지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보는 이들의 정신을 뒤흔들던 영화는 마지막 순간 잔혹할 만큼 담담한 한방을 휘두르곤 아무 말 없이 제 갈 길을 떠난다. 2021년의 미래인들은 이 농담에 맘 편히 웃을 수 있을까? 대학생 선호 직업 1위가 공무원인 나라의 대학생인 내게 이 영화는 남 일일까? 서점의 베스트셀러 서고를 주식 투자에 관한 책이 잠식한 사회의 시민인 내게 이 영화는 남 일일까? 불과 5년 전,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걸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 관리하던 나라의 국민인 내게 이 영화는 남 일일까? 농담의 소재가 바로 자기 자신일 때 우리의 웃음은 쓴웃음일 수밖에 없다. 농담이라기엔 너무 지나친 이 세상에서 나는 끊임없이 내 표정을 관리해야만 할 텐데, 그때마다 나는 ‘해리 터틀’의 서글서글한 미소와 마지막 장면 속 ‘샘’이 짓는 처연한 미소가 두고두고 오버랩되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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