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 (2021) Directed by 션 헤이더
‘루비(에밀리아 존스)’의 가족은 어촌에 사는 어부 가족이다. 고등학생인 ‘루비’는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한 청인이기 때문에 매일 등교 전에 배를 타고 나가 어업을 돕는다. 그의 취미는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교내 합창단에 들어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 형편과 ‘루비’를 향한 가족들의 의존은 그를 더욱 지치게 한다.
‘코다’에는 영화를 관통하는 두 곡의 음악이 등장한다. 하나는 ‘You’re all I need to get by’이다. 이 곡의 제목은 흔히 ‘당신은 내 삶의 모든 것’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의미는 ‘당신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다. 가족들은 ‘루비’ 없이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일부터 생업에 이르기까지 모두 루비를 거쳐야만 이뤄진다. 가족에게 있어 ‘루비’는 말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다. 분명 가족들은 ‘루비’를 사랑하지만 이는 불완전하다. 그 사랑에는 수단으로써의 사랑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는 이 곡의 본연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루비’는 ‘마일스(퍼디아 윌시-필로)’와 듀엣을 맞춰가며 음악과 ‘마일스’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고 키워나간다. ‘루비’는 이 둘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사랑한다.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결코 효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며, 오히려 많은 것을 포기할 각오를 하도록 만드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가족들은 서로에 대한 효용을 포기하고 ‘루비’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그들의 사랑을 완성한다. 드넓은 바다 앞에 살면서도 좁은 세상에 갇혀있던 인물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서로를 기쁘게 떠나보낸다.
영화에서 중요한 다른 한 곡은 바로 ‘Both sides now’다. ‘이제 나는 삶을 양쪽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 영화는 이 곡과 가사를 영화가 마친 순간 관객들의 입에서 나오길 기대하며 삽입한 듯하다. 영화는 어떤 프로파간다나 교훈을 설파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카메라를 삶의 양쪽에 세워둘 뿐이다. 청인에게 농인의 세상이 낯설듯 농인에게 청인의 세상 역시 낯설다는 점을 알려준다. ‘루비’의 음악회에서 영화는 의도적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소리를 제거한다. 가족들과 같은 입장에서 음악회를 감상하는 이 순간은 청인 관객에게 묘한 긴장감을 준다.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무대를 감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음소거된 무대일지라도 감동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가족들은 열렬히 환호한다. 이렇듯 영화는 가르침이나 설교가 아닌 체험으로 두 세상을 만나도록 한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객체를 향한 아끼는 마음이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루비’ 없이 가족들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보여준다. 알을 깨고 나오는 ‘루비’의 과정은 길고 힘들었던 반면, 가족들의 부화는 음악과 함께 화목한 장면 몇 컷으로 대체된다. 물론 농인과 청인의 조우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영화가 제시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면적인 해피엔드는 앞서 쌓아 올린 이야기의 장력이 맥없이 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관객들이 ‘루비’를 응원하는 만큼 가족들의 삶도 응원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성취가 구체적이었더라면 영화의 층위는 한층 더 깊어졌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아도 관객 역시 객석을 떠나야 한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영화를 본 누구든 ‘루비’가 남긴 마지막 수어를 따라 해 보일 것이다. 그 순간 관객들에게는 영화를 향한 일말의 아쉬움은 상쇄되고 뿌듯함만 남을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