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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Feb 26. 2022

드라마, 메시지, 반전을 모두 쏘아붙이고 마는 포와로

나일 강의 죽음 (2022) directed by 케네스 브레너

 벨기에 출신의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는 사교계 유명인사인 '사이먼 도일(아미 해머)'과 '리넷 리지웨이(갤 가돗)' 부부의 신혼여행에 초대받는다. 신혼여행지인 이집트까지 따라온 사이먼의 전 애인 '재키(엠마 맥키)'는 신혼 여행 주변을 맴돌며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나일강을 항해하는 크루즈까지 따라온 재키는 사이먼과의 언쟁 중에 그를 향해 총을 발사한다. 한바탕 소란이 멎은 다음날 아침, 리넷은 관자놀이에 총을 맞은 시체로 발견된다. 밀실과 다름없는 크루즈 위에서 포와로는 한 사람도 예외 없는 추리를 시작한다.


 '추리'라는 장르는 20세기 초에 가장 융성했던 문학의 한 형태다. 때문에 오늘날 스크린을 통해 추리 영화를 보는 일은 다소 생소하며 혹자에게는 낡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장르가 낡았다 해서 영화마저 낡은 것은 아니다. 추리와 마찬가지로 구시대의 유물이 된 서부극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 심지어는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들을 통해 변주되며 그 영광을 이어나가고 있다. 추리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서는 2019년에 개봉한 '나이브스 아웃'이 '고전 장르에 대한 최선의 복원'이라는 호평을 들은 바 있다. 따라서 '나일 강의 죽음'의 추리가 실패한 이유는 결코 장르의 문제가 아니다. 전적으로 영화 내부의 문제이며 내부의 실패다.


'포와로'는 인물들을 차례로 돌며 심문을 시작한다. 심문의 패턴은 반복적이다. 포와로는 심문 대상에 대한 살인 가설을 속사포처럼 쏘아붙인다. 그리고 심문을 받은 인물은 사랑의 힘에 대해 역설한다. 여러 차례의 언쟁 묶음을 영화는 '추리'라고 이름 붙인다. 관객에게는 포와로에게 이입해 함께 증거를 수집할 겨를이 없다. 여러 인물들을 번갈아가며 의심하기에도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그저 포와로가 어떤 설명을 해줄지 기다려야 할 뿐이다. 영화는 사건의 풀이 과정에서 결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하려는 메시지까지 모두 포와로의 입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의 참여와 체험은 무시된다.


 인물 간 관계도의 심도가 얕다는 점도 영화를 싱겁게 만든다. 추리극에 있어 복잡한 인물도는 중요한 묘미다. 배에 탑승한 사람들은 저마다 리넷과 원한이 하나씩 있다. 그러나 '나일 강의 죽음' 이들의 관계를 대사 몇 줄로 끝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리넷이란 인물을 얼마큼 증오하는지, 용의자들끼리의 관계는 어떠한지가 사건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어느  인물에게 끌리거나 속는 일도 없다. 게다가 최근 할리우드의 분위기를 따라가듯,  인물들의 특징은 인종이나 성적 지향에 한정적이다. 이집트라는 이색적인 배경과 독보적인 장르를 배합하고도 그저 그런 할리우드 영화가 탄생한 것은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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