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출근 ; 버팀의 미학

by 에르네스티토

아침 6시. 아기 첫 수유/소화/다시 재우기

아침 7시. 씻고 옷 입고 출근 준비하기

아침 7시 30분. 출발

아침 8시 30분. 회사 도착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조기퇴근과 휴가, 야근의 변주가 있는 퇴근과는 달리 일정한 출근. 알고리즘에 따라 설계된 기계처럼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채 움직일 뿐이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취준생 시절 그리도 간절히 원하던 사원증과 출근이 참 쉽게도 지겨워진다. 크게만 느껴지던 월급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설레임에 차 있던 발걸음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건 금방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그 다음부터는 버텨야 한다.

학창시절 나는 속칭 천재라고 불리는 부류는 아니었다. 물리문제를 보고 머릿속에서 답을 구하는 몇 안 되는 친구를 부러워하던 노력파였다. 따라잡기 위해서는 같은 이론에 대한 문제를 더 많이 풀어봐야했다. 패턴을 익히고 변형성을 이해해야 가까워질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다시 멀어지곤 했지만, 절대적인 양이 많다면 못 이길 것은 없다. 그래서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라는 말처럼 나의 학창시절은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집에서 앉은 채 흘러가곤 했다.


버티기는 나의 특기는 아니었지만 잘 정비된 무기였다. 그 무기는 일이 힘들 때나 재밌을 때나 큰 힘이 되었다. 일이 재밌을 땐 더 매달려 풀어내고 싶었고, 일이 힘들 땐 죽었다 생각하고 버텨야 했다. 참 신기한 것은, 일이 재밌고 몰두가 되어도 출근만큼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매일 아침 회사까지의 순간이동을 누군가 개발해주길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누구나 몇 번쯤 지하철이 멈추길, 세상이 정전되길, 회사 문이 안 열리길, 좀비가 뛰쳐나오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래서일까 출근길은 숨 막히듯 옥죄이면서도 몽상과 망상으로 가득 차 뿌옇다. 현실을 잊기 위해 어제를 떠올리고, 꿈 속으로 들어가고, 매체에 중독되어 버리곤 했다. 모두를 감싼 어젯밤의 잠, 혹은 진한 술자리와 쇼츠는 쉽게 끊어지지 못 했는데 어디론가 탈출하고픈 소망으로 점철되어 있어서 아니었을까.


물론 그저 버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아니라고 판단되거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면 평탄한 도로를 벗어나 불안정한 삶으로 뛰쳐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가 만족스럽다면, 혹은 아직 나의 길을 찾지 못 했다면 버텨야 한다. 그리고 이왕 버티는 것, 나름대로 막 써보는 게 좋지 않을까. 마음 한 켠에 시도조차 하지 못 한 꿈을 잠시라도 꿔보는 시간으로, 혹은 실제로 그 꿈을 위해 뭐라도 써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유의미함 없이 나를 그저 작은 쾌락인 라이트 컬쳐 속으로 밀어넣어도 좋다.


모든 아름다움이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그 시간을 버텨낸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작가의 이전글4. 씀 ; 생각을 글로 던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