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도 Apple처럼 '유효기간'이 있다.

사과 않고 버티다 몰락한 신인배우 K를 보며

by 이리천


최근 신인배우 K가 여자 친구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와의 불미스런 일이 드러나면서 진행 중이던 광고,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중도 하차하고, 많게는 수십억 원의 위약금을 물 처지라고 합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많이들 들어 알고 계시는 대로 입니다.


발단은 전 여자 친구의 폭로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배우 K는 여자 친구와의 사실혼 관계에서 갖게 된 아이를 낙태하도록 종용했고, 낙태 후엔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이별을 통보했다고 합니다. 여자 친구는 그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상처와 K의 인간성을 폭로하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습니다. 파장은 컸습니다. "그 선한 얼굴에 어떻게 그런 짓을...."하는 비난이 들끊었습니다. 배우 K가 나흘 만에 사과 글을 올리고 수습에 나섰으나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 같습니다. 광고 등 많은 출연 계약이 끊기고, 인기도 급락세입니다. 전 여자 친구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여론이 일부 돌아서는 것 같지만 이전과 같은 인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전형적인 ‘신파극’입니다. 잘 생긴 배우가 숨겨놓은 여자친구가 있었고, 알고보니 아이도 지웠다더라 하는, 그리 생소하지 않은 남녀상렬지사(男女相悅之詞)입니다. 알고 보니 여자 친구가 이혼녀였고 다른 불미스러운 일에도 연관돼 있으며, 배우 K에게는 또 다른 여자 친구까지 있었다는 뒷 얘기도 들리는군요. 그러나 이런 얘기들은 본질과는 상관없는 '곁가지'들입니다. 어떻게 해도 이들의 얘기는 ‘그렇고 그런’ 연애 스토리의 범주를 벗어나진 않습니다.


필자가 이 사건을 주목한 이유은 딴 데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SNS의 위력’‘사과의 타이밍’. 우선 SNS의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재확인합니다. 요즘 청춘들은 모두 ‘디지털 원주민’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핸드폰과 컴퓨터를 생활의 일부로 가까이했고,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도 동네 친구 모임처럼 일상화돼 있습니다. 대면 대화나 강의보다 카톡이나 온라인 강의를 더 편하게 느끼는 세대입니다.


30대인 여자 친구는 변심한 배우 K에게 타격을 입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인터넷 쇼핑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같았으면 가슴 아픈 사연을 혼자 묻거나 주변 지인들에게 고통을 호소하다 끝날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여자 친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렸고, 하루 만에 거의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 돼 버렸습니다. ‘대세 배우 K의 실체’라는 제목의 기사도 순식간에 수 백개가 쏟아졌습니다.




사과 타이밍은 이번 사건의 중요 포인트입니다. K는 여자를 배신한 것 외에도 헤어진 후 처신이 부적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처신이라 함은 피해자에세 사과하고, 사태에 책임을 지는 일련의 행동입니다. K가 이런 행동을 모두 무시했다는 게 여성의 주장입니다. 다음은 폭로 글 중 일부 입니다.



저한테만은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나 헤어지고도 돈 벌고 광고 찍고 스타가 돼서 광고 찍기만 급급했지 단 한 번의 사과나 반성도 없더군요.”


저한테 잘못했던, 낙태 얘기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나 언급 없이, 혹시라도 제가 그 얘기를 꺼낼까 봐 머리 쓰면서, 협박과 회유로 헤어짐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이렇게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제가 앞으로의 제 인생에 있어서 평생 그가 저에게 준 아픔의 그늘 속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자친구의 말 중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대목에 눈길이 갑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사과 한마디 없이 멀쩡하게 잘 나가는 상대에 대한 배신감이라고나 할까요. 시쳇말로 오뉴월에 서릿발이라고나 할까요. 여성은 글 곳곳에 아직 K를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의 배신에 대한 분노와 고통을 숨기지 않습니다.

K도 아마 이런 결과를 예상했을 겁니다. 아무일 없이 지나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겠지요. 그래도 그는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이 일이 "미안해"라는 한마디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사과에는 그에 따르는 적절한 책임있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같은 책임을 질 의사나 배포가 없기에 그냥 무시하고 싶었을 지 모릅니다. 그의 이런 무책임한 습성은 진작부터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폭로 글이 나온 다음 그의 행동을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합니다.

폭로 글이 올라오자마자 배우 K도 글을 곧바로 읽었을 겁니다. 상황을 묻는 전화와 관련 기사들이 봇물처럼 터졌으니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K의 대응은 너무 느렸습니다. 처음엔 사과하기 싫었거나, 아니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몰라 허둥댔을지 모릅니다. 억울한 생각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상황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것을 그 자신도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흘간을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골든 타임을 놓친 거지요. (들리는 얘기로는 K가 다른 여자 친구에게 사태를 해명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타이밍을 놓쳤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어쨌거나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후 뒤늦게 내놓은 그의 사과문은 좀 생각할 대목을 남깁니다. 내용이 이렇습니다.


저는 그 분과 좋은 감정으로 만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불찰과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그분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 분과 직접 만나서 사과를 먼저 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제대로 된 사과를 전하지 못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라도 그분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뒤늦게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K가 폭로 글을 읽자마자 여자 친구에게 연락해서 직접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무릎꿇고 "내가 정말 잘못했다" "용서해 달라"라고. 물론 헤어진 이유가 100% K에게 있을리 있겠습니까. 들려오는 얘기처럼 상대방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K는 공인입니다. 그것도 대중의 관심과 사랑으로 먹고 사는. 급한 불을 먼저 꺼야 하는게 그의 우선 선택지 였을 겁니다. 그렇게 판단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군요. 그런데도 그는 ‘사과를 전하지 못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썼습니다. 억울했든, 아니면 방법을 몰랐든, 아니면 다른 일때문에 챙길 시간이 없었든 그는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의 여자 친구는 K로부터 나흘 만에 사과를 받고 그 다음날 이렇게 씁니다.

저와 그분 모두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이 있는데 저의 일부 과격한 글로 인해 한순간 무너지는 그의 모습에 저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분에게 사과받았고, 서로 오해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사실과 다른 내용이 알려지거나 저나 그분의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 일로 많은 분들에게 큰 피해를 드린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

여친이 K의 사과를 받고 화가 가라앉은 건지, 아니면 그의 몰락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한 건지, 아니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물러서기로 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신상을 파헤치기 시작한 극성 팬들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문제를 묻기로 한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여자 친구는 입을 닫았고, 그 다음 벌어지는 일들은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이번 일로 한 때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은 몸과 마음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다른 한 사람은 명성과 인기, 부에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이 모든 비극이 '제때 제대로 된' 사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너무 늦은 사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요.


먹는 사과도, 말로 하는 사과도 모두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뒤늦은 사과는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만큼 부질없어 보입니다.

연인의 몰락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사과 #용서 #유효기간 #타이밍



http://ttenglish.co.kr/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