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할 때는 제발 눈 좀 깝시다

조현아의 땅콩 회항 '레이저 눈빛'사과

by 이리천


한국인들은 사과에 서툽니다. 잘못을 해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눙치는 경우가 많고, 사과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겨우 쭈뼛쭈뼛 끌려 나와 성의 없이 후딱 끝내고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과를 하고도 욕먹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사과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몰라 헛발질하는 사례입니다. 어떤 경우든 사과를 하고도 욕 먹지 않게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과는 교감입니다. 일방적 행위가 아닙니다. 우선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과 형식(타이밍과 주체, 채널)으로 하는게 중요합니다. 아마 그만큼 더 중요한 게 진정성을 보여주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태도. 참 알쏭달쏭 합니다. 다짜고짜 납작 엎드릴 수도 없고, 너무 뻣뻣해서도 안되고.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헛갈립니다. 그렇다고 평소 하던 대로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사과를 제대로 하는데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곤란한 자세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이런 것입니다.



2014년 12월 12일. ‘땅콩 회항사건’(또 언급하게 되네요)으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으러 포토라인에 섭니다. 사건 발생 일주일 만입니다. 기억나시겠지만 조현아가 직접 나타나기 전 대한항공은 여론의 집중포화로 거의 초토화 상태였습니다. 당장 다음날 망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습니다. 조현아의 악질 갑질로 한번, 대한항공 홍보실의 헛발 대응(조현아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식의)으로 다시 한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리 사과(여식을 잘못 키운 아비의 잘못이다는 식의)까지 연타석 '분노 유발' 대응으로 한진 일가에 대한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사과 이미지 눈좀 깝시다.jpg

그 상황에서 조현아가 처음 포토라인에 선 겁니다. 상식적이라면 그 때라도 90도 폴더 인사를 하고 “이런 이런 일로 잘못을 저질렀다” “생각이 짧았다” “제 행동으로 상처를 입은 분들께 먼저 사과드린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습니다”가 끝이었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승무원과 사무장에 대한 사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는 섬뜩한 눈길을 보여줍니다.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가 이를 귀신같이 포착합니다.


조현아는 닷새 뒤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했을 때도 마찬가지의 눈빛을 보여줍니다. 적개심에 가득 찬 그 눈빛은 마치 ‘니들이 감히 나를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어’라고 묻는 듯합니다. 사과할 생각도, 사과할 이유도 없다는 눈빛입니다.



시선과 표정, 몸짓은 ‘비언어적’(non-verbal) 표현입니다. 언어 자체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특히 의사소통 환경이 열악하고, 언어 자체가 제한적일 때 훨씬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지, 상대를 경멸하는지, 존경하는지, 사랑하는지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조현아의 눈빛은 ‘물컵 갑질’의 주인공인 그의 동생 조현민에게서도, 직원 갑질. 폭행 논란을 일으킨 모친 이명희에게서도 볼 수 있는 바로 눈빛입니다. 공감과 용서가 아니라 분노를 부르는 눈빛입니다.


사과할 때는 눈을 내리 깔아야 합니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한 사과 때는 그렇습니다. 사과 내용을 설명할 때는 정확하게 상대를 보고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는 자숙의 표현으로 눈을 내리까지는 좋습니다. 그게 힘들다면 최소한 공격적 눈빛으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합니다.




다른 경우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여직원 성추행으로 2020년 4월 자진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입니다. 그는 업무시간 중 의도적으로 여직원을 불러 성추행했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처리 문제를 협의한 후 사퇴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한 사람에게 5분 정도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강제추행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중에 상관없이 어떤 행동과 말로도 용서가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강제추행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도, 경중에 상관없이 미안하다는 말도 모두 2차 가해에 해당되는 발언입니다. 또 말로는 “너무 죄송하다”면서도 눈을 부릅뜬 채 고개 숙인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죄를 뇌 우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재수 없게 걸려서 물러나게 됐다는 심정을 보여주는 눈빛입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모습입니다.



최소한 사과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다소곳이 눈길을 아래로 까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2015년 메르스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 때, 2020년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문 발표 때 보여준 모습은 참고할 만합니다. 전체적인 메시지부터 시선 처리와 호흡, 몸짓 하나하나까지 잘 연출된 작품 같은 느낌입니다. 발언 자체의 진정성을 느끼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거부감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대중을 상대로 한 사과의 '교본'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이 전부 다 잘했다고 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차후 분석할 기회를 갖겠습니다.


분노를 부르는 사과 태도를 연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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