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타이밍과 메신저, 채널의 중요성에 관해
영화 <사죄의왕(謝罪の王様>(2013년)은 사과를 주제로 6편의 에피소드를 묶어 만든 일본 영화입니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사과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주인공이 고객들의 의뢰를 받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코믹물이죠.
이 영화를 주목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우선 ‘39.62초’ 룰입니다. 주인공 구로시마는 자신을 찾아온 고객들에게 사과의 타이밍을 강조합니다. 사과는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잘못을 인지한 후 39.62초 안에 끝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 스스로도 기분 나쁜 것을 알아채기 전에 먼저 사과를 하라는 거죠. 그것도 좀 오버해서. 때문에 서비스도 365일 24시간 무휴입니다. 주인공이 그 원칙을 실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포복절도 웃음이 터집니다. 일본식 사과 방법 ‘도게자(土下座)’(고개를 땅바닥에 닿도록 납작 엎드려 사죄하는 방식)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영화는 진심을 전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사과는 없다는 것과 사과는 반드시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뜬금없이 일본 영화 얘기를 하는 이유는 사과에는 콘텐츠만큼이나 타이밍(Timing)과 사과 주체(Messenger), 채널(Channel)이 중요하다는 점을 짚어보기 위해서입니다.
⓵타이밍(Timing)
먹는 사과(Apple)와 마찬가지로 사과도 역시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너무 늦거나 떠밀려서 하는 사과는 아예 안 한 만 못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구로시마의 ‘39.62초’는 다소 과한 측면이 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어렵죠. 그렇지만 잘못을 인지하자마자 곧바로 사과하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모르고 발을 밟았다거나, 어깨를 부딪혔을 때, 커피를 쏟았을 때, 갑작스러운 소음으로 상대를 놀라게 했을 때 등이 그런 경우입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상대를 다치게 했다거나 기분 상하게 했을 때도 잘못을 인지한 후 최대한 빨리 사과하는 게 좋습니다. 이런 원칙은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론이 악화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대응하는 게 최선입니다.
참고할 사례가 신인 배우 K 씨의 경우입니다. 최근 ‘대세 배우’로 한창 상종가를 치던 그는 여자 친구와의 불미스러운 일이 대중에 알려지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되는데 사태 발생 사흘 만에 공개 사과를 하게 됩니다. 여론을 돌이킬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죠. 그 사이 광고주들 대부분 등을 돌렸고, 그는 진행 중이던 드라마와 영화, 광고 등에서 하차하게 됐습니다. 수십 억 원대(?)의 위약금을 물게 됐다는 소식도 들리는군요. 하늘을 날던 스타가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진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가 뒤늦게 상대에게 사과한 후 몇 가지 오해 소지가 풀리는 듯 하지만,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어 버린 것 같습니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배우 K가 좀 더 일찍 사과하고 대응했더라면 지금 같은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배우 김혜수 씨는 2013년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1시간 만에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쿨하게 사과함으로써 사건을 조기 종결시켰습니다. 비슷한 시기 많은 정치인들과 유명인들이 논문 표절 의혹에 휘말려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다 곤경에 쳐했던 것과 비교됩니다. 김 씨의 사례는 이후 기업들까지 벤치마킹하는 위기 대응 모델이 됐습니다.
그러나 재빠른 사과가 항상 최선인 것은 아닙니다. 때론 상대방에게 충분히 시간을 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상대가 아직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거나 흥분된 상태인데 졸졸 따라다니며 사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역효과를 내기에 딱 좋지 않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사과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을 일반화하기란 어렵습니다. 전후 사정을 살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지한 후 최대한 빨리 대응 방안을 짜는 것입니다. 곧바로 대응할지, 시간을 둬야 하는 사안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최악은 잘못을 부인하거나 변명하거나 대응을 미루는 것입니다. 그런 태도는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⓶메신저(Messenger)
사과 주체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한국은 구로시마가 운영하는 ‘도쿄사과센터’ 같은 사과 대행 전문업체가 드뭅니다. 대리 사과를 하는데 대해서도 정서적인 거부감이 큽니다. 사과는 본인이 직접 하는 게 좋습니다. 아이들도 싸움 후엔 직접 사과토록 하지 않습니까. 사과문도 타이핑을 하기보다 가급적 자필로 쓸 것을 권고드립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한국말이고,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정성을 보여야 상대 마음이 움직이는 법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게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입니다. 절대 따라 해서는 안 되는 사과 유형입니다.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던 조현아(조양호 회장 장녀)는 기내 간식인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줬다는 이유로 승무원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출발한 비행기를 회항시켜 사무장을 하기시켰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갑질'도 문제지만 대응은 더 가관입니다. 조현아 본인은 나서지 않고 회사 측이 대신 사과문을 발표합니다. 그것도 사흘만입니다. 이후 여론이 더 악화되자 이번엔 조양호 그룹 회장이 나와 “못난 여식”운운하며 사과했습니다. 조현아는 건설교통부 조사를 받게 돼서야 일주일만에 고개를 숙입니다. 그러나 이미 여론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된 뒤였습니다. 한진그룹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뒤로 한진그룹엔 한진해운 파산,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공정위 조사, 국세청 조사, 조현민(조현아 동생)의 '물컵 갑질'사건, 이명희(조현아 모친)의 갑질, 조 회장 타계 등 악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집니다.
⓷채널(Channel)
어떤 채널을 통해 사과할 지도 중요합니다. 대면 사과가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코로나 시국임을 감안할 때 대안을 찾아야 할 경우도 많습니다.
개인들의 경우 대면 사과의 가장 적절한 대안은 스카이프, 페이스타임, 카톡 영상통화 등입니다. 대면 사과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효과적인 의사 전달 수단입니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카톡이나 문자 등을 이용할 수 있는데 문자로 사과할 때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대면이나 화상을 이용할 때는 언어의 보완 수단으로 표정이나 제스처,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말이 어눌하거나 잘못돼도 상대가 표정만으로 무슨 의미인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만으로 소통할 때는 오해 소지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더 진중한 단어를 쓰는 게 좋습니다.
기업들의 경우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보도 또는 해명자료, 정식 사과문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사과문 길이가 너무 짧으면 성의 없어 보이고, 너무 길면 변명으로 흐를 가능성이 큽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글꼴 12포인트로 A4 용지 한 장 반 정도면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 등 동영상은 최근 기업들이 선호하는 채널입니다. 기자들이나 시민들을 모을 필요가 없이 발표 시점을 임의로 정할 수 있고, 내용에 오해가 없도록 사후 편집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리합니다. 피드백을 충분히 받아 일일이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이점으로 꼽힙니다. 그러나 그런 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알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난제입니다.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사과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상대가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사과하는 측에서 세심하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5R 콘텐츠부터 타이밍과 메신저, 채널까지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또 그렇게 했다고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습니다. 사과 후 사후 관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복잡한 사과 과정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도 완벽하게. 사과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는 불가능하죠.
실수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신의 몫이다.
결국은 부단히 사과하면서 스스로를 단련해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과문을 전달해야 가장 효과적일지 고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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