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라고 쓰고 ‘용기’라고 읽는다

부인하고, 변명하고, 핑계 대는 게 인간의 본성

by 이리천


왜 사람들은 사과를 하지 않을까요. 아니 못할까요. 저 자신을 비롯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사과에 인색한 편입니다. 명분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기도 하고,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식의 각박한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생물학적으로나 사회관계적으로 사과를 꺼릴 수밖에 없다는군요.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내용을 좀 들어볼까요.


우선 생물학적 이유입니다. 다음은 [쿨하게 사과하라](김호·정재승 공저)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우리 뇌는 구조적으로 사과를 하기 힘들게 돼 있다. 인간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누군가 알게 되지 않을까’ 또는 ‘이로 인해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까’하는 우려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는다. 스트레스는 우리 뇌에서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활동을 방해하고,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우리 뇌를 더욱 강하게 지배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협에 촉각을 세우고, 방어적인 논리에 더욱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사과를 거부하는 행위 자체가 극히 인간적인 행위라는 해석입니다. 또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부인’은 자아(ego)를 위협하는 외부 현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방어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무의적으로 취하는 ‘방어기제’라는 것이죠. 거기다 인간은 필요하면 기억도 자기에게 편하게 왜곡 합니다. 부인과 거짓말, 핑계 대기, 기억 왜곡 등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방어하게 끔 돼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관계적 이유도 있습니다. 잘못을 인지했더라도, 그래서 사과해야 한다고 결심했더라도 해결해야 문제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과를 하려면 사과 후 벌어질 상황을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합니다. 평판이나 자산, 지위 등 자신이 잃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감내하겠다는 용기입니다. 진정한 사과란 ‘미안해’라는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보상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책임질 용기 없이 내뱉는 사과는 어불성설, 하나마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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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치세계에서 그렇습니다. 정치 세계에서는 승리 아니면 패배입니다. 승자만이 살아남습니다. 사과는 곧 패배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이 들어오게 됩니다. 간발의 경쟁상황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명백한 잘못도 뭉개거나 부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과해야 하는 경우에도 유감이나 통감 같은 애매모호한 단어를 씁니다. 사람이 죽어도 유감이다, 화재가 나도 유감이다. 절대 죄송하다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사과를 하는 것은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사과라고 쓰고 ‘용기’라고 읽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부인하거나, 거짓말하거나, 핑계를 대기 바쁩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는 대단히 진화된, 성숙한 자아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사과는 리더의 언어다'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본인의 과오나 잘못을 흔쾌히 인정하는 자세는 그러지 못한 일반인들에게 감동을 주게 됩니다. 구질구질하게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라고 해명하고 변명하는 것보다 흔쾌하게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상황을 급 반전시키는 게 사과의 위대함입니다. 그 때문에 ‘한마디 사과가 백 마디 설득을 이긴다’라고 책도 있습니다.


이왕 사과할 거라면 좀 ‘오버’하는 것도 좋습니다. 상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사과해야 합니다. 이리저리 재는 식의 자세는 오히려 독(毒)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문은 그런 측면에서 좋은 사례입니다. 그는 취임 후 사흘 뒤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해 사과하면서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라고 말합니다. 대통령이 자신을 죄인으로까지 낮출 필요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대통령 취임 전 사고에 대해서 말이죠. 하지만 그는 과감한 단어를 쓰고, 시선을 국민들 아래로 낮춰 설득력을 확보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그 후에도 일이 날 때마다 권위를 버리고 서슴없이 사과를 합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이 사과했지만 역사적으로 좌우를 떠나 가장 많은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 리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잘못을 화끈하게 사과하고 국면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배포 있는 리더십을 본 게 언제였던가요. 가물합니다.

리더의 언어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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