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람을 만난 건 ‘메타버스’였습니다. 지금처럼 현란한 아바타가 등장하는 그런 메타가 아니고, 그 옛날 PC통신 시절의 메타. 전화선으로 네트워크를 연결하면 찌 지지 이직 찌 지지 이직~~~ 하는 기계음과 함께 통신이 시작되던 때. 한참 한석규와 전도연의 영화 ‘접속’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시절 온라인에서 짝을 만났으니 그때만 해도 ‘얼리 어답터’ 축에 끼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업무 후 ‘나우누리’(지금 이해 못 할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 당시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 4개 PC통신이 있었습니다. 나우누리는 그중 나우콤이 운영하는 통신망이었죠.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에 접속해 이것저것 읽을거리들을 찾아 읽었고, 집 사람은 업무차 통신에 접속했습니다. 그러다 그녀의 아이디가 눈에 들어왔고 말을 걸었지요. 집사람은 제 이름이 여자 같아서 여자인 줄 알고 말을 받아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긴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우린 그렇게 글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짧지만 툭툭 던지는 그 말투가 맘에 들었습니다. 이상하게 예의 바르게 느껴지고 따뜻함이 느껴졌지요.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완전 '뻥카' 아니면 정말 괜찮은 여자라고. 한 달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다 데이트 신청을 했지요. 만나보고 싶다고.
집사람은 두 달간 피했어요. 당시엔 오프라인 만남으로 잘못된 케이스들이 종종 보도됐었습니다. 지금이야 접속하자마자 만나고 하지만, 그땐 서로 조심했던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집 사람을 만난 지 10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바라고 기다리던 그런 여자였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각설하고….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글입니다.제가 집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게 된 결정적 동기나 우리 브런치 펠로우들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깐부 의식을 갖게 되는 계기. 그건 아마 글이 주는, 다른 어떤 것도 대체못할 힘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글은 사람입니다. 더 보태지도, 덜지도 못하고, 그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 자체입니다.
그래서 글에는 힘이 있지요. 사람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고, 세상을 만들고. 또 그 세상을바꾸는 게 바로 글 입니다.
글은 각박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마술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살인까지 벌어지는 살벌한 위아래층 층간소음 갈등 문제도 순식간에 이웃 간 훈훈한 미담으로 바꿔주기도 합니다. 그 중 글이 바꾼 아파트 풍경 몇컷을 공유하려 합니다.
물론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이미 신문과 인터넷에 많이 소개된 얘기입니다. 혹시나 못 보신 분들이나 제 의견이 새로울 수 있는 브런치 펠로우들을 위해 잠깐 소개코자 합니다.
“저는 할머니 집에 놀러 온 태희입니다. 어젯밤에 늦게까지 뛰어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태희 올림”
이런 편지를 받고 웃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편지를 쓴 아이도 그렇지만 그런 편지를 쓰도록 한 할머니 할아버지, 태희 부모의 고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더 감동적인 것은 아래층의 답장입니다. 특히 이 부분.
“그래도 12시 후에는 자야 한다. 그래야 키가 크거든.”
같은 말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듣기 좋게 했을까요. “12시 이후엔 조용히 했으면 해”. 이렇게 해도 충분할 겁니다. 그런데 뒤에 ‘키커야 하니까’라고 붙입니다. 그 센스와 배려에 절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군요. 아래층 내외와 위층 태희 할머니네는 아마 평생 싸우지 않고 좋은 이웃으로 남을 것 같네요.
위층 아이 엄마는 2년간 한 번도 문을 두드리지 않은 아래층 할아버지에게 감사편지와 과일을 보냅니다. 그 예의바름도 그렇지만 답장을 쓴 할아버지의 센스가 요즘 말로 '월드 클래스'입니다.
“혼자 외롭게 사는 늙은이에겐 시끄러움도 위안이 됩니다.”
밤늦게 아이가 뛰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줍니다. 그것도 늙은이에겐 시끄러움도 위로가 된다며. 저런 내공과 연륜을 배울 수 있을까요. 아마 저 같은 쫌생이는 죽었다 깨나도 힘들 것 같습니다. 경외할 뿐입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소송도 벌이고, 심하면 극단적인 상황까지도 가는 게 요즘 세태입니다.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도, 아니 바로 앞 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세상이니 조금의 불편도 참을 이유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층간 갈등을 방지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얼굴부터 트는 것이라고. 아이 있는 집은 아래층에 아이 손잡고 가서 인사도 드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사람 만날 때마다 살갑게 인사도 하고. 동네 슈퍼에서 놀이터에서 볼 때마다 아는 척도 하고.. 위층 소음에 욱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이 얼굴이 떠오르면 마음이 달라지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