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데이'를 아세요

2001년부터 시작된 사과. 용서. 화해의 날

by 이리천

얼마전 지인으로부터 한 장의 사진을 카톡으로 받았습니다. 비밀로 포장된 사과 한 개.


“사과데이에 받았습니다. 사과에 관심 많으신 것 같아 보내드립니다.”

“사과데이요? 그런 게 있나요?”

“아 모르셨어요? 사과 주면서 사과하는 날인데. 상사분이 오늘 고생 많다면서 사과를 주시더라고요. 웬만한 직장이나 학교에선 하는 건데….”

갑자기 밀려오는 낭패감과 부끄러움. 사과하고 용서하는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돼보겠다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게 한 달 가까이 되고, 이런저런 책도 읽고 대화도 나누며 공부했지만 그런 기념일이 있는 줄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거기다 졸지에 웬만한 직장 축에도 못 끼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까지 돼 버렸으니. 이래저래 당혹함을 느끼면서도,

“아 그렇군요. 그런 게 있는 줄 미처 몰랐네요. 저희 회사에서도 가능한지 알아볼게요.”


전화를 끊고 바로 사과데이를 찾아봤습니다. 브런치 펠로우들은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 혹시 저같이 모르는 분들을 위해 찾아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과데이는 평소 미안한 사람에게 사과(沙果)와 편지를 주면서 사과(謝過)하는 날이다. 사과(apple)라는 단어와 사과(apology)라는 단어가 동음이의어(同音異語)인 데서 착안했다. 기념일이 10월 24일인 까닭은 사과 수확기인 10월에 둘(2)이 서로 사(4)과하고 화해하는 날로 만들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국내 115개 시민단체 연합체인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가 제안해 2001년부터 도입됐다. 학교 폭력을 없애고 우리 사회에 화해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사과와 사과편지를 제출하면 초콜릿이나 사탕을 받고, 24일에 수신자에게 일괄적으로 사과와 편지가 전달된다. 사과할 대상이 없으면 감사 편지로 대신한다.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가 알려지면서 학교뿐 아니라 각종 회사와 단체, 공공기관들에서도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 행사는 사과 농가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농협 등 단체들이 사과데이 홍보에 열심이다.


사과데이에 얼마나 많은 학교와 회사, 단체들이 행사를 벌이는지 통계는 없는 모양입니다. 사과 사진을 올린 지인의 얘기에 따르면, 사측에서 사과 12kg을 구입해 입구에 놓으면 출근 때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간다고 합니다. 사과를 사과하는데 썼는지, 그냥 간식으로 먹는지 알아보지 않는다고 하네요. 2016년부터 사과데이 행사를 해오고 있다는 학교 쪽에도 알아보니 사정은 비슷한 모양입니다. 학생들이 학생부에 놓아둔 사과를 가져가는데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는군요.


어쨌거나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바쁘게 달려왔습니다. 해방부터 건국,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정보화까지. 정말 한 숨도 쉬지 않고 내달려왔지요. 그 사이 잃은 게 많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려 살다 보니 좀 손해 보더라도 주위와 함께 살려는 마음, 친구와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 늦어도 천천히 목표를 향해 가는 여유로운 마음을 잊고 살았지요.


사과데이는 그렇게 잃은 것들을 회복해 가는 과정입니다. 경쟁보다는 상생, 미움보다 화해, 갈등보다는 화합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과데이 행사가 앞으로 더 빠르게 확산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저 빼고 많은 분들이 사과데이를 알고, 그 기회를 활용할 기회를 갖고 계시다니 제 무지의 부끄러움을 접어두고 기뻐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사과데이 직후 언짢은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전두환의 아내 이순자의 '15초짜리 사과'입니다. 사과는 무릇 내용(contents)과 스피드(speed), 화자(Messenger)가 핵심입니다. 정확한 내용으로 늦지 않게 본인이 직접 하는 게 좋습니다. 이순자의 대리 사과는 그런 측면에서 '빵점'에 가깝습니다.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특히 사죄를 드리고 싶다."


사과해야 할 대상을 ‘재임 중 고통받은 사람들’로 한정했고, 무엇을 잘못해서 어떻게 보상하겠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죽은 뒤 사과도 허망하거니와 하물며 ‘대리 사과’라니요. 빵점이 아니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망언'에 가깝습니다.


왜 그럴까요. 전두환은 12.12와 5.18로 죄를 지었고, 이를 사과하지 않고 죽음으로써 다시 한번 피해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죽어서도 말도 안 되는 '대리 사과'로 그들을 세 번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됐습니다. 유사 이래 이렇게 경우 없고, 뻔뻔한 인사와 가족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가 죽어서도 묻힐 곳을 찾지 못해 그 가족들이 유해를 집으로 가져갔다는 소식이 그나마 피해자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과데이에 기뻐하고, 15초 대리사과에 분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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