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25만원 넣어 보낸 '사과편지'

사과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언어인 이유

by 이리천

“요즘 좀 여유가 있으시구먼.ㅎㅎ”


사과와 용서, 화해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을 때 지인 반응이 딱 이랬습니다. 서로 점잖은 관계에 험한 말은 못 하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그의 얼굴은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 그대로였습니다. 0.1초도 안 되는 찰나, 그의 미간에 살짝 찍힌 주름과 입 주변의 비틀림을 봤지요. 요즘 잘 나간다는 자기 계발서나 재테크 관련 글을 쓴다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사과와 용서 화해라니. 다들 공부하느라 돈 버느라 노느라 얼마나 바쁜데 누가 그런데 신경이나 쓰겠어. 그의 표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랬으니까요. 한 분은 좀 달랐습니다.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나중에 자기도 도와줄 기회가 있으면 돕겠다고 하더군요. 똑똑하지만 술 잘 드시고 마음도 둥글둥글한 분입니다.


어쨌거나 요즘 글 쓰는 맛이 납니다. 사과와 용서, 화해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전에 없는 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늦게 조용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할 때, 책을 읽으며 좋은 부분을 발췌해 옮길 때, 새벽에 일어나 내용을 자판기로 두드려 옮길 때, 맞춤법 검사후 최종 발행 버튼을 누를 때 행복합니다.


특히 오늘처럼 누군가가 사과와 용서에 대한 에피소드를 전해줄 때, 그리고 그 사연이 가슴 안쪽부터 훈훈하게 만드는, 눈가를 화끈하게 만들고 축축하게 적시게 하는 감동 사연일 때 더 그렇습니다. 이런 글을 쓰기 잘했구나. 더 많이 노력해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정말 ‘꿈같은’ 날입니다. 사연이 한꺼번에 세 개나 도착했어요. "관심 있으실 것 같아 보내드려요"라는 메시지와 함께.(이 기회를 빌어 제보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그 중 첫 번째 사연을 뜨거워진 눈으로 보다가 브런치 펠로우들과 공유합니다. (아마 이미 보신 분들도 계실텐데 양해 바랍니다)



가게 주인 이 모 씨가 받은 참회의 편지와 현금 25만 원. [독자 제공=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70703071600064?input=1195m


시골 여중고 앞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중년 부인 앞으로 발송자 미상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25만 원의 현금과 함께. 철없던 시절 가게 유리창을 깨고 과자를 훔쳤던 것을 사과하고 배상한다는 내용입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굉장히 후회 많이 했습니다. 다시 한번 정중히 사죄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마치 발송자가 어떤 표정으로 말하는지, 그가 어떤 마음인지 보는 듯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편지 내용보다 15년이란 시간에 울음이 날 지경입니다.


15년.

그 긴 시간 동안 이 여학생(여중고 앞이니까 그렇게 추정함)은 아마 대학 진학도 하고, 취직도 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을지 모릅니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이 일을 마음에 담아뒀을까요.

어떻게 사과할까, 편지로 할까 전화로 할까. 얼마나 배상할까. 한 100만 원 해야 하나 아니면 10만 원? 꼭 해야 되나? 안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가게 아주머니가 돌아가시지는 않았을까? 했다가 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학생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고민했을 겁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그 짧았던 순간, 유리창을 깨뜨리고 과자 박스를 훔쳐와서 혼자 또는 친구들과 나눠먹던 그 시간이 그 후 그녀의 15년에서 차지했던 비중은 과연 얼마나 컸던 걸까요. 그것도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꽃 같은 시간 중에.

가게 아주머니의 말도 감동적입니다. 그 당시 그런 일이 많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다 잊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일로 내가 큰 감동을 받았으니 이제 마음의 부담을 떨쳐내길 바란다”라고 합니다. 그 학생의 마음을 읽었겠지요.



힘든 일도 많고, 뜻밖의 사건들도 있지만, 견디기 힘든 고통도 있지만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각박한 것 같지 않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나요.


기사를 읽으면서 마치 톨스토이의 장편소설을 읽는 듯합니다. 그리고 궁금해집니다. 기사나 쓰인 게 2017년, 지금으로부터 4년 전입니다. 그때 이후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게 아주머니는 살아계실까. 그 학생을 만나봤을까. 그런 학생은 또 없었나. 수소문을 해서 한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혹시 들리는 얘기가 있으면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훈훈한 사과편지에 기분 좋아진 쫌생이가.



#사과편지 #변상금 #25만원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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