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저녁 자리에서 크게 충격받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 얘길 하던 차였습니다.
그걸 듣고 가슴이 뛰지 않는다고요
여의도 유명 증권사에서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던 그분은 '글쎄요'라는 제 반응에 '뭐 이런 경우가 있나 '하는 식의 표정으로 쳐다봤습니다. 화끈했지요. 그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잡스의 마지막 문장을 들으면 주체할 수 없는 자책감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 도전하려 노력한다고 하더군요. 잡스의 15분짜리 연설을 거의 통째로 외우다 시 피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날 반성 많이 했습니다. 나는 왜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이대로 늙어버리는 것일까.
지금도 그렇습니다.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 50 넘어 밥이나 축내며, 직장에서 능력 있는 후배들의 자리 뺏고 앉아서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사는 거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합니다. 그러던 차에 최근 희망적인 얘길 하나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그런 책을 읽었습니다.
‘성공의 공식 포뮬러’.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노스이스턴대학교 교수. 한국경제신문. 2018)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씨(전 다음 부사장)가 한 방송에서 추천하더군요. 물리학자가 쓴 사회과학 도서인데, 글 솜씨가 좋다면서. 잡자마자 바로 완독 했습니다. 일단 내용이 풍부한 데다 소재를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글 솜씨가 있었습니다. 읽는 재미, 배우는 재미, 남는 메시지까지. 좋은 책이었습니다.
책 내용을 소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책에서 제가 감명받은 부분만 살짝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은 ‘노익장’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서문에서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노벨상을 탄 학자들이 노벨상을 탄 연구의 아이디어를 언제 처음 떠올렸는지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물리학상은 평균 36세, 화학상은 37세, 생리의학상은 38세였다고 한다. 최근 50년간 받은 수상자들로만 한정하면 그 시기는 40세를 훌쩍 넘긴다. 위대한 업적은 인생에서 언제 만들어질지 예측할 수 없지만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학자들의 결론이다.
무릇 50을 넘으면 조바심이 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정년은 다가오고, 해놓은 것은 없고. 그래서 무리를 합니다. 젊어 성공한 사람들 애길 들으면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퇴직 전에 투자를 과하게 하거나, 퇴직 직후 사업을 한다고 나섭니다. 그 결과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퇴직금을 말아먹는 것은 애교입니다. 심한 경우는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빚을 내 민폐남이 됩니다. 한국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데는 이런 이유도 작용합니다.
저자인 바라바시 교수는 서두르지 말고 하던 일을 진득하게 계속하라고 설득합니다. 저자는 성공의 법칙을 5가지로 요약합니다. 1. 네트워킹의 힘 2. 성과는 유한하지만 성공은 무한하다는 법칙 3. 과거 성공경험과 이를 확장시키는 적합성이 성공의 크기를 결정한다 4. 팀의 기여와 성공의 몰빵 법칙 5. 지속적인 노력. 이런 것들이 성공을 담보하고, 그 크기를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라바시 교수는 이 중 제5법칙(지속적 노력의 보상 원칙)을 강조합니다. 이미 성공한 학자인 본인 스스로도 그 때문에 위안 받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말이죠. 내용은 간단합니다. 천재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연구자나 직장인이라도, 지속적인 노력만으로 성공에 이를 확률이 커진다는 겁니다. 왜냐. 소년 급제, 20대 천재에 대한 전설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 때가 가장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은 것 뿐이다. 따라서 전 인생의 구간에 걸쳐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해서 결과물을 내놓으면 그만큼 성공 가능성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바라바시 교수는 이런 주장을 데이터와 사례로 증명합니다. (자세한 데이터는 책 참조).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런걸 제시합니다.
1. 아인쉬타인은 1905년 26세 나이에 20세기 과학계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상대성 이론’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왕성한 연구활동을 계속합니다. 1935년 56세에 ‘양자 얽힘’에 관한 논문을 내놓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양자컴퓨팅의 기본 개념을 80여년 전에 발견한 거죠. 그런 천재적인 연구 결과가 그냥 나왔을까요. 아인쉬타인은 생전 300편 이상의 과학 논문과 150편의 비과학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한마디로 '죽을 때까지 죽으라고' 써댄 것입니다. 그 중 몇 편이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걸작이 된 거지요.
2. 세포의 작동원리를 규명한 화학자 존 펜은 프린스턴과 예일대에서 67세까지 교수로 있으면서 이렇다 할 업적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의 장점은 끈기였습니다. 퇴직 후 모두가 연구를 그만둘 때 그는 20년을 더 연구했고 87세에 세포 연구 공적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대기만성의 대명사입니다. 그러고도 그는 90세로 죽기 바로 전날까지 연구실로 출근합니다.
3.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자신의 일흔 살 이전 작품을 쓰레기로 칭하고, 73세가 돼서야 약간 구조가 잡혔다고 자평합니다. 그 후 여든아홉에 죽을 때까지 20여 년간 그의 생애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들을 남기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보면 '아 저 작품' 하고 무릎을 칠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1831년)같은 작품들을 말이죠.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나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1831)
책에는 인용되지 않았지만 노익장의 사례는 그 외에도 차고 넘칩니다.
1. 중국의 강태공은 바늘 없는 낚시로 세월을 낚다가 72세에 주 문왕을 만나 공직에 나갑니다. 그는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 건국의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2. 미켈란젤로는 71세의 나이에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책임자가 되어 89세로 죽을 때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데 남은 여생을 쏟아붓게 됩니다.
3. 철학자 김형석(1920~) 연세대 명예교수는 100세 넘은 나이에도 형형한 목소리로 강의와 세미나 등을 통해 정치인들과 젊은인들에게 일갈하고 있습니다.
사례는 여러분들이 더 많이 알고 계실 겁니다. 다 꿈같은 소리, 나와 동떨어진 사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얘기만 들어도 좀 답답하고 조급했던 마음이 풀리지 않습니까. 아직 시간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는 사실에 위안도 되고. 특히 브런치 펠로우 여러분과 함께 호흡하고 숨 쉬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을 업그레이드 하고, 획기적으로 바꿀 기회를 가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