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열흘짜리 휴가"라는데

50대에 다시읽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by 이리천

근래 사과와 용서, 화해에 대해 진지하게 쓰기 시작하면서 저 스스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생각하고, 찾아보고, 쓰고, 퇴고하면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인생의 다른 면을 경험하게 됩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남이 아니라 저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 자신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저 자신도 못 바꾸면서 누구에게 권하고 제안할 수 있을까요.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편으론 이런 걸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철없이 살았던 그동안의 관성대로 훅하고 50대도, 60대도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글을 통해 때 묻고 탈 많은 저의 다른 면을 보게 됐으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다 브런치 펠로우들의 격려와 제안, 충고까지 듣게 됐습니다. 글쓰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각설하고,

그동안은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 사과와 얽힌 에피소드들, 용서와 화해의 기술 등에 대해 썼습니다. 기존에 나온 얘기들을 정리하다가 점점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붙는 단계입니다. 세상에서 처음 나온 얘기들입니다. 그런 얘기를 소개할 때 기쁨을 느낍니다. 그런 얘기들을 브런치 펠로우들과 공유하면서 확산시켜 우리 사회를 더 사과하고, 더 용서하고, 더 화해하는 그런 성숙한 사회로 만들어 보자는 게 제 꿈입니다.


그러다 오늘은 '꼭 사과나 용서를 하면서 살아야 하나' '사과할 일 없이 살 수는 없을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습니다. 제대로 사과하고 용서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럴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그런 세상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백 프로는 힘들겠지만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 이거 무슨 '바르게 살기 국민운동 본부 캠페인'조가 돼가는 데 죄송합니다. 짧게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침 좋은 글을 친구로부터 받게 됩니다. 제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딱 맞는 글을 보내 주네요. 평소 생각이 깊은 친구입니다. 부지런하고,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친구입니다. 감사의 인사를 거듭 보냅니다. 친구가 보낸 글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합니다.


아마 이런 장자(莊子)의 마음이라면, 이런 삶의 자세로 산다면, 서로 힘들게 사과하고, 어렵게 용서하고, 화해하는데 힘 빼며 살지 않아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과하고 용서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그만큼 어렵게 살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요. 각박하게, 경쟁적으로, 시기와 질투.견제 속에서 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서로 부딪히고 상처 입고 넘어지는 게 아닐까요. 어깨 힘 빼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하시길 바랍니다. 받은 원문을 그대로 올립니다.





- 소요유(逍遙遊) -


장자 사상의 중요한 특징은

인생을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하루하루의 삶을

그 자체로서 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기계적 소모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자는 우리에게 인생에 있어서

‘일’을 권하는 사람이 아니라 ‘

소풍’을 권한 사람이다.

우리는 ‘일’하러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성공’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다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과거 생에 무엇을

잘했는지 모르지만,

하늘로부터 삶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 우주에는 아직 삶을 선물로 받지 못한

억조창생의 ‘대기조’들이 우주의 커다란

다락방에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당신과 나는

이 삶을 하늘로부터 선물 받아

이렇게 지금 지구에 와 있지 않은가!


삶을 수단시 하지 마라.

삶 자체가 목적임을 알라.

이 삶이라는 여행은 무슨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이 여행 자체를 즐겨라.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인생이란 소풍이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소풍을 보내면서

단지 열흘짜리 휴가증을 끊어 주신 건데,

하느님이 사는 중심 우주와 우리가 사는

외곽 우주가 서로 흐르는 시간대가

달라 그것이 백 년이 된 것뿐이다.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에는 글자 어디를 뜯어봐도 바쁘거나 조급한

흔적이 눈곱만큼도 없다

‘소(逍)’자는 소풍 간다는 뜻이고,

‘요(遙)’자는 멀리 간다는 뜻이며,

유(遊) 자는 노닌다는 뜻이다.

즉,

‘소요유’는 ‘멀리 소풍 가서 노는 이야기이다.

‘소요유(逍遙遊)’는 묘하게도 글자 세 개가 모두

책받침 변(辶)으로 되어 있다.

책받침 변(辶)은 원래 ‘착(辵)’에서 온 글자인데,

‘착’이란 그 뜻이

‘쉬엄쉬엄 갈 착(辵)’이다.

그러니

‘소요유’를 제대로 하려면

내리 세 번을 쉬어야 한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고!

참 기막힌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하루하루 힘든 시간입니다. 그 속에 빠져 살다 보면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잊게 되지요. 그걸 생각해보면서 천천히 한숨 돌리자는 게 소요유의 정신 아닐까 생각합니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철학을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인생의 답이 보인다는 것이죠. 세네카의 그 말이 장자의 소요유, 무위(無爲) 사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본질, 결국은 죽음으로 가는 길을 생각하면 본질적으로 화낼 일도, 짜증 낼 일도, 조급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아닐까요. 바람직하지만 한없이 높은 경지임에는 분명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시간을 갖고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자를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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