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1만2784의 의미

인생의 끝에서 지금을 돌아보며 든 생각

by 이리천

며칠 전 생경한 경험을 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제 생에서 남은 날이 얼마나 될까 계산해 본 거지요. 그동안은 일주일 한달 일년 5년 10년 단위로 대충 앞날을 그려왔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변경하고, 진행 과정을 체크하고, 다시 추가하고…. 40대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 번도 끝에서 현재의 나를 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미국의 외과의사이자 저명 작가인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원제 Being Mortal)’(강추합니다)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85살까지 산다면 과연 내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나 될까.


1만2784일.

인터넷에서 날짜 계산기를 돌려보니 이렇게 나오더군요. 첫 느낌은 ‘어이쿠’였습니다. 겨우 1만 2000여 일? 햇수로는 35년, 420개월, 1680주라니. 막상 숫자로 적어놓고 보니 무한대처럼 생각했던 인생의 끝이 바짝 앞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얘길 친구들에게 했더니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첫 번째 친구는 “참 오만하다”고 했습니다. 얼마를 살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35년이나 더 살겠다고? 그런 생각하지 말고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겸손하게 즐겁게 살아라. 그 친구다운 반응이었습니다.

두 번째 친구 왈. “크리스마스도 여름 해수욕도 서른다섯 번밖에 안 남았다고? 큰일이네. 최소 50번은 더 보내야 는데….” 앞으로 운동과 건강에 더 신경 쓰겠다는 게 그의 다짐입니다.

좀 염세적인 세 번째 친구는 “아직도?”라고 되묻더군요. 지금도 살기 힘든데 30년 이상 더 살아야 하느냐고. 대충 살다 적당한 때 일찍 죽으련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너무 짧아서 놀라셨나요. 아니면 아쉬운 느낌이었나요. 그것도 아니면 아직도?라는 생각을 하셨습니까.

첫 번째 친구 말대로 부질없는 생각일지 모릅니다. 50대 들면 뭐든지 맘대로 안되잖아요. 직장 생활도, 건강도, 자녀 문제도, 부모님 모시는 것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게 50대 인생인 것 같습니다. 가끔 친구들의 부고 소식도 들려오는게 사실이고요.




주위에서 이런 질문들을 많이 듣습니다. 50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보내야 할까. 참 막막하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답은 어렵지만 기본적인 전제는 있습니다. 50대엔 가슴 뛰게 하는 희망도 있고, 몸을 한껏 움츠리게 하는 리스크도 동시 존재한다는 겁니다.

희망적인 얘기부터 해볼까요. 50대가 되면 직장에서 자리도 안정되고, 수입도 괜찮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직 왕성해 다른 일을 해볼 의욕이 충만합니다. 특히 세상을 살아오면서 시쳇말로 똥·오줌 가릴 수 있는 혜안을 가지게 된 것도 큰 복입니다. 그동안 해오던 일을 기반으로 은퇴 전에 제2의 인생 준비해 볼까 하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갖게 되는 게 이때입니다. 가정에서도 아이들 교육 문제가 대충 끝나가고, 부모님들은 정정하실 나이여서 마음의 여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 직장 부모님(또는 자녀)등 3가지 리스크가 차례로, 또는 한꺼번에 터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듭니다. 제2의 인생에 대한 준비가 안됐는데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든지, 아니면 아직 큰 일을 해야 하는데 건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든지, 부모님 봉양 문제로 가정생활에 균형이 깨져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경우도 교육, 취업, 결혼 문제가 생각과 달리 잘 안 풀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잘 생각하면 챙기고 준비하고 각오해야 할 골치아픈 일들이 산더미 같은 게 이때입니다.



지천명(知天命).

공자(BC 551~479년)는 나이 쉰 살을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40이 불혹(不惑), 즉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되는 나이라면, 나이 쉰은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되는 나이라는 거지요. 지금 얘기로 하면 이제 좀 세상 돌아가는 걸 알게 되는, 철드는 나이라고 할까요. 40대엔 아직 주관적인 세계에 머물렀다면, 50대로 들어가면서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거지요. 참고로 공자는 나이 51세에 노나라에서 첫 벼슬 생활을 시작하고 73세에 죽었다고 합니다. (공자가 살던 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이니 그때 나이 쉰 살이면 지금의 70~80살 이상에 해당하지만, 현재의 교육 수준이나 정보량 등을 감안하면 그때 50이나 지금의 50을 같이 놓고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50이면 세상을 좀 볼 줄 알게 된다는 게 큰 위안입니다. 어렵고 힘든 과제들이 많지만 그걸 풀어낼 혜안과 힘, 의지가 충만한 때입니다. 50대를 인생의 위기가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지요.

관건은 역시 어떤 자세로 50대를 준비하고 보내느냐는 것일 텐데요, 저는 1만 2784일 하루하루가 소중한 만큼 어느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각오부터 다지는 게 기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클리세가 돼버린 아인쉬타인의 얘기가 떠오릅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것은 정신병 초기증세이다."


"미친짓이란 항상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다른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50대 이후에 삶을 좀 다르게,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그동안과는 다른 삶의 자세나 각오가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인생의 끝에서 지금의 나를 되짚어 본다하니 그런 생각이 더 확실하게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세 가지 인생 원칙은 어떨까요. 제가 최근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상심 유지

사실 즐거운 인생을 망치는 것은 남이 아니라 자신입니다. 부딪힌 현실을 결국 어떻게 소화할 지는 자신의 몫이거든요. 남을 아무리 욕해도 소용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곤란한 일을 만났을때 심호흡하고 잠시 머리를 비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을 객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시 유체이탈을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현재 상황을 3미터 정도 떨어진 상공에서 지켜본다는 상상을 해보는 겁니다. 욱하는 마음을 죽일 수 있는,상대방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렇게 늘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최소한 순간순간을 최악에서 막아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일상에서 순간순간 만나는 작은 행복에 늘 감사하고, 매사에 먼저 사과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려는 자세. 그게 지금과는 다른 인생으로 안내하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계신분들이 많겠지만요^^)


②매사에 손해 보기

지는 게 이기는 것입니다. 실패해보는 게 성공하는 것입니다. 살아보니 그렇습니다. 이기려, 성공하려 아둥바둥해도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기려 성공하려 애를 쓰는 순간 삶이 피곤해집니다. 이제 좀 내려놓아도 됩니다. 좀 손해보고, 져도 좋습니다. 얼마남지 않은 인생. 언제까지 경쟁하면서 피곤하게 사실 건가요.

채우기보다 비우기

이제는 쌓기보다 비우는게 어떨까요. 하나가 새로 들어오면, 가진 것 두 개를 내려놓는 자세. 친구도, 재물도, 욕심도. 그렇게 비워야 새로 채워집니다. 그런 자세라면 삶이 편해지지 않을까요. 마지막 순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쓰고, 베풀고, 나누며 산다는 자세. 마음이 휠씬 가벼워질 것입니다.



가완디 박사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말기 암 환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만약 시간이 촉박해진다면, 선생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가 될까요"


그 질문에 환자들은 머뭇거립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합니다. 가완디 박사는 그 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그 속에서 중요한 게 뭔지를 알아내는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옳은 결정을 한 분들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의미있게 보내는 지를 담담하게 전합니다.



12784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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