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하냐”는 지청구를 듣고

낯가림과 나잇값에 대한 단상

by 이리천


친구 모친상 장례식장에서 30여 년 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 여사분들. 지나가는 저를 이름으로 불러 세우더니 좀 앉아보라고 합니다.

"얘 00야. 어디가. 잠깐 여기 앉아 있다가."

“지금 막 일어나는 길인데…”

라고 말했지만 이유도 옹색하고, 적당히 다른 이유를 둘러댈 타이밍도 놓쳐 그냥 뻘쭘하게 앉았습니다.


두 여사님(동갑이지만 여사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은 분위기)과 두 남정네. 다 친하지 않은, 친구(?)들입니다. 악수를 하면서 이름을 얘기하는데도 누군지 통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남자들 중 하나는 교수고 하나는 사업을 한다고 합니다. 맞은편에 앉은 여사님들 중 하나는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초면입니다. 다 처음 만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다 들 저를 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공부도 좀 했고, 그땐 귀여웠다나.


“야 00야. 너는 그 나이 먹어서도 낯가림하냐.”

한 여사님이 대뜸 말하더니 맥주잔을 건넵니다. 난감합니다. 차를 가져왔는데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운전 변명을 대기도 궁색하고. 일단 받습니다. 그리고는 뻔한 레퍼토리입니다. 하는 일을 묻고, 애들 크는 상황을 얘기하고, 같이 아는 친구들 근황을 공유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나 대화 내내 제 생각은 딴 데 가 있습니다. 아직도 낯을 가리느냐는 여사님 말씀이 귓가를 맴돕니다. 특히 '그 나이에'라는 부분이.





'낯가림'

사전적 의미는 '어린아이가 낯선 사람을 꺼리어 피하다'입니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는 엄마에게서 잘 떨어지지 않고, 낯선 사람을 보면 울기부터 합니다. 어른들도 낯선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몰라 어색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 편한 사람만 만납니다. 사회화가 덜 된, 사회성이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낯가린다는 말 자체가 약간 모욕적입니다.

'그 나이에도'라는 말은 좀 더 그렇습니다.

나잇값을 못 한다는 소리입니다. 50 넘으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까요. 처음 보는 여사님들과도 스스럼없이 말도 트고, 농도 하고, 소위 Y담(음담패설)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까요. 아니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충분히 대화를 리드하며 분위기를 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걸까요. 어쨌거나 초면이나 다름없는 친구들 앞에서 졸지에 나잇값도 못하는 중년이 돼 버린 느낌?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여사님 한 분이 능란하게 대화 방향을 살짝 틉니다. 공부를 좀 하는 애들이 대체로 그렇다는 둥, 너는 학교 다닐 때도 유독 그랬다는 둥, 그래서 누가 너를 좋아했다는 둥 듣기 좋은 얘기 몇 마디를 늘어놓으며 깔깔 댑니다.

오 간사한 인간이여. 살짝 띄워주니 금세 기분이 풀립니다.

‘나를 좀 특별하게 보고 있다는 건가'

'이 나이가 되면 대부분 능구렁이가 되는데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말씀?’

여사님의 간교한 사탕발림이라는 뻔한 줄 알면서도 머릿속은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미쳐 날뜁니다. 어쨌거나 자리는 해피엔딩이었습니다. 1시간 여 대화 후 명함까지 교환하고 기분 좋게 헤어졌습니다.


귀가 길에 찬찬히 생각해봤습니다. 낯가림과 나잇값에 대해.

사실 낯가린다는 얘기는 그 자리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쫌생이라고 스스로 자인하지만, 하는 일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그렇게 낯을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필요하면 언제라도 먼저 나서서 인사를 청하고 안면을 터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뭔가 들켜버린 것 같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낯을 가려가며 사람을 만나왔고, 갈수록 그런 경향이 더해지고 있다는 걸 말이죠. 여사님이 초면에 예리하게 그걸 간파한 것일까요, 아니면 너무 눈에 띄어서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던 걸까요.

낯을 가리는 데는 선천적으로 샤이한 경우도 있지만 후천적인 이유도 있을 겁니다. 저는 확실히 후천적입니다. 그럼 왜 점점 낯을 가리게 되는 될까요.


우선 나이의 영향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낯가리다’에는 ‘친하고 친하지 아니함에 따라 달리 대우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익숙한 쪽으로, 아는 쪽으로, 편한 쪽으로 생각하고 기울고 만나는 경향이지요. 삶이 확장되고, 전진하고, 긍정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안주와 집착, 몰두 쪽으로 바뀌는 겁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와 기피. 한 마디로 늙어가는 부작용입니다.

교만함의 영향도 있을 겁니다.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아도, 앞으로 알고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낯을 가리는 거지요. 먼저 손을 내밀 필요도 없고, 저쪽에서 알은척을 해도 굳이 통성명을 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오만함. 여사님이 ‘그 나이에도 낯을 가리냐’고 한 게 혹시 '나이를 먹었으면 더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져야지 그 나이 먹어서도 아직 잘난 맛에 살고 있는 거냐'라며 일갈한 거는 아닌지. (물론 여사님이 그저 말을 트기 위해 한번 던진 '아이스 브레이크'같은 멘트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런 캐주얼한 멘트에 과하게 의미 부여한 것일 수 있지요. 시간이 좀 지나보니 그럴 가능성이 더 커 보이긴 합니다.^^)


마지막으로 익명 선호 경향입니다. 어떤 분들은 실명으로 앞장서는 것을 선호합니다. 소위 ‘본 투 비 리더’(born to be leader)라고 평가받는 외향적 성격의 쾌남들이지요. 그러나 중간에서 묻어가거나, 끝에서 따라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부류도 많습니다. 굳이 이름을 대고 관계를 맺어가며 부대끼기보다 익명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상태로 집단에 휩쓸려 가기를 원하는 거지요.



나잇값을 하는 것도, 그리고 낯가림하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단히 자기를 채찍질하며 노력해야 겨우 어느 정도 평가받을 수 있는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나이 50대. 자칫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는 나이만 먹었지 아주 철없어 보인다거나, 오만해 보인다거나, 이상해 보인다는 등의 소릴 듣기 십상인 때입니다. 이래저래 생각거리가 많은 요즘입니다.

갈수록 나잇값의 무게를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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