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사의 ‘용기 있는 사과’라는 평가에 대해

'약촌오거리 살인' 담당 검사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못 느끼는 이유

by 이리천

어쩐지 찜찜합니다. 용기 있는 사과라고 칭찬하는데도 선뜻 공감이 가질 않습니다. 그 유명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담당 검사의 사과를 다룬 기사에 대한 느낌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646348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21211350003794?did=NA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11215/110797193/1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내용은 분명 훈훈한 미담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무고한 시민을 10년 옥살이시켰던 현직 검사(김훈영 부장 검사)가 피해자 최 모씨에게 사과하고 용서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검찰 조직 전체를 대표해서 검찰총장이 사과한 적은 있지만, 담당 검사가 과거 자신의 업무로 인해 피해를 본 시민에게 직접 사과한 첫 사례여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김 검사의 사과는 당시 사건을 조작했던 담당 형사들과 2명의 다른 담당 검사, 1.2심 판사들 모두 입 다물고 뉘우치지 않고 있는 것에 비하면 분명 용기 있는 행동이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 중 일부는 아직도 “내가 뭘 잘못했냐”라고 큰소리치는 상황이니, 김 검사의 사과가 미담으로 평가받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과한 시점도, 사과하면서 내놓은 이유도 모두 이번 일을 선뜻 좋게만 보기 어렵게 합니다. 사건의 경과는 이렇습니다. 최 씨가 15년형을 확정받고 투옥된 지 3년 만에 진범이 나타나 범행 일체를 자백합니다. 그러나 담당 형사들과 검찰은 하루도 안돼 진범을 풀어줍니다. 그리고 김 검사는 2006년 진범 수사건을 무혐의로 최종 마무리해 버립니다. 이 때문에 최 씨는 억울함을 풀 기회를 놓치고 10년형(2심에서 10년형으로 5년 감형 받음)을 다 마치고 2010년 출옥합니다. 그 후 최 씨는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심을 신청했고, 2016년 11월 대법원은 최씨의 무죄를 확정합니다. 최 씨는 현재 국가와 김 검사, 담당 형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김 검사는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약촌 오거리 사건 이후 검사의 책임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며 굉장히 무거운 마음으로 지냈다. 당시로선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처분이었지만, 검사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한 것이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게 드러난 이상 책임지고 사과하는 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사심을 갖고 사건을 처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 검사는 끝까지 "최선의 판단" "사람으로서의 실수" “사심이 없었다"라고 얘기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직장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압니다. 조직 논리 때문에 또는 자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당시 진범의 자백과 증거는 명백하게 최 씨가 진범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형사들도 알고, 검사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진범을 풀어주고, 그 사실을 제보한 진범의 친구를 정신병동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자백 진술을 없던 일로 만듭니다. 왜 그랬을까요.


추청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다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본인들은 물론이고 그때 사건 처리 라인에 있던 웃선까지 모두 옷을 벗거나 좌천되는 불이익을 볼 게 뻔합니다. 김 검사가 얼마나 압력을 받았을 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직계 가족과 친구, 동창,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 자고 했을 겁니다. 김 검사 자신도 재수사 결정 시 검찰 조직에서 어떤 피해를 볼 지 가늠했을 겁니다. 결국은 진실을 뭉개고, 최 씨를 감방에 묶어둠으로써 본인과 조직의 안위를 챙긴 것입니다.



사과의 핵심은 진정성과 타이밍, 그리고 메신저입니다. 진정성은 정확히 뭘 잘못했는지 진솔하게 털어놓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행동입니다. 대충 묻어놓고 잘못했다거나, 변명으로 일관하면 진의가 의심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김 검사는 “검사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할 수 있다” “사심을 갖고 처리한 게 아니라”라고 변명할 게 아니라 “제가 저 살자고 양심대로 결정하지 못했다”라고 솔직하게 사과했어야 합니다. 시점도 너무 늦었습니다. '현직 검사 중 첫 사과'라는 타이틀은 그럴 듯 하지만, 최 씨에게 개인적으로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물게 돼서야, 그것도 1심에서 불복하고 2심에서도 지게 될 게 명확해진 시점에 와서야 사과를 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 최 씨는 그럼에도 김 검사를 “용서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포옹도 했다는군요. 모두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의 전언입니다. 사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박 변호사의 활약입니다. 그는 2016년 말 이 사건을 시작으로 여러 건의 재심 사건에서 승소를 이끌어내면서 '재심 전문 변호사' 타이틀을 갖게 됐습니다. 이번에도 담당 검사에게 사과를 권유해 검찰 초유의 ‘개인적 사과’ 이벤트를 이끌어냈고, 피해자에게는 '용서'와 '소 취하'로 화답토록 함으로써 한 편의 감동 스토리를 엮어냈습니다.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 변호사는 "김 검사의 진정성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면서 김 검사의 용기 있는 사과가 왜곡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재심’에서 최 씨는 변호인인 박 변호사에게 이렇게 소리칩니다.


당신도 법 다루는 놈이지. 다 똑같은 놈들이야.”


벼랑 끝에 몰린 최 씨가 법 다루는 사람, 힘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즉 사회 기득권층을 향해 외치는 불신과 저주의 절규입니다. 물론 김 검사와 박 변호사는 그런 기득권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들입니다. 약자 편에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홀연히 떨쳐 일어나는 변호사도 있고, 용기를 내서 사과도 하는 현직 검사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사를 읽는 내내, 영화 '재심'을 다시 보는 내내, 최 씨의 목소리가 내내 걸립니다. 아름다운 사과와 감동의 용서 스토리를 들으면서도 어딘가 아구가 딱딱 맞지 않는 듯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억지로 퍼즐 조각을 꿰맞춘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만의 질문일까요.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런 미완의 감동 스토리가 짜여졌는지 궁금합니다.


최 씨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제는 억울함을 풀어서, 승소하게 돼서 기쁘냐고. 김 검사로부터 사과받고, 용서하게 돼서 행복하냐고. 가해자는 사과했고 피해자는 용서했는데 듣는 사람은 생각할 게 많아진 '걸쩍지근'한 미담 기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과와 용서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재심 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박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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