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씨의 ‘사과 의향 있다’ 발언에 대해

‘하대 사과’ ‘대리 사과’는 사절입니다

by 이리천


한국인들은 사과에 서툽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방어하려는 욕구가 있는 데다, 유교적 문화와 경쟁적 사회 시스템까지 더해져 사과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위계질서를 흩트리지 않으려는 유교 문화의 잔재와 ‘사과=패배’라는 경쟁적 사회 풍토가 ‘그것은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려는 도덕적 욕구를 억누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할복이나 도게자(土下座· 머리를 땅에 대고 납작 엎드려 잘못을 비는 일본식 사과 방식)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일본 문화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 차이에 대해서는 추후 설명해보겠습니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김건희 씨(윤석열 야당 대선 후보 부인)의 경우를 보면 한국사람들이, 그것도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사람들 조차 얼마나 사과에 서툴고, 무지한 지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해 좀 얘기해보겠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지난 12월 14일 한 방송은 김 씨가 수원여대 겸임 교수 임용 시 허위 경력을 기재한 이력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씨는 2001년부터 한림성심대, 서일대, 한국폴리텍대, 수원여대, 안양대, 국민대 등 6개 대학에서 시간강사 또는 겸임교수로 강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력서 내용중 한국게임산업협회 기획 이사 경력과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 수상 경력이 사실과 다르다는게 보도 내용입니다. 사실 관계가 확인 중에 있지만, 실제로 몇몇 경력 기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일부 과장이 있다는 것은 본인도 시인했습니다.


문제는 김 씨의 대응입니다. 김 씨는 허위 경력 기재 관련 보도가 나간 후 여론이 들끓자 기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돋보이려고 한 욕심이었습니다. 그것도 죄라면 죄지요. “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습니다."


대중들이 김 씨 보도에 대해 분개하는 지점은 경력이 과정 됐거나 허위 사실이 기재됐을 가능성 등이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실관계를 확인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거품을 물지만, 일반인들은 사실 김 씨 경력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여론이 악화됐을까요.


저는 “그것도 죄라면 죄” “사과할 의향이 있다”는 이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도 죄라면 죄'라는 말은 죄가 아니지만 굳이 죄라고 주장한다면 그렇게 인정해주겠다는 뜻입니다. 사과할 때 절대 써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그냥 쿨하게 "경력을 적다가 실수가 있었다.(아니면 욕심을 부려 과장했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면 될 일입니다.


또 “ ~~ 할 의향이 있다”도 그렇습니다. 이런 표현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때 쓰는 말입니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지만 원하면 해줄게'라는 식입니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 같은 레벨에 있거나 윗사람에게 쓰는 표현이 결코 아닙니다. 지극히 상대를 하대하는, 고압적인 말투입니다.


'그것도 죄라면 죄' '사과할 의향 있다' 모두 대선 후보 부인이 국민들에게 쓸 표현이 아닙니다. 김 씨 발언이 전해지자 인터넷에서는 곧바로 “그 따위 사과가 어딨냐” “그런 사과를 받아줄 의향이 없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런 반응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한 상황입니다.




남편인 윤 후보의 대응도 문제입니다. 윤 후보는 논란이 커지며 지지율이 급락하자 언론보도가 난 지 사흘 만에 김 씨 ‘대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 아내와 관련된 논란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경력 기재가 정확하지 않고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제가 강조해 온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아내와 관련된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달게 받겠다. 그리고 더 낮은 자세로 국민께 다가가겠다 “


사과는 본인이 직접 하는 게 맞고, 최소한 ①어떤 부분이 어떻게 잘못돼서 죄송하다 ②내 잘못이고 책임이다 ③재발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고치겠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남편이 나와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여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아내가 "사과 의향이 있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https://brunch.co.kr/@2877e99751154fc/3

[사과할대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 있다]

https://brunch.co.kr/@2877e99751154fc/7

[대충 하면 되지?… 놉, 사과는 과학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무개념 사과가 나왔을까요. 저는 두 사람의 성장 배경과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씨나 윤 후보 모두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고, 어디에다 사과하며 살 환경이 아니었다는 거지요.


김 씨는 각종 투자와 사업을 하는 모친 덕에 어렵지 않게 자랐고, 전공도 예술 쪽으로 석박사 학위까지 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6개 대학에서 강의도 해왔고, 2007년엔 전시 기획사인 '코바나콘텐츠'를 설립해 그 분야에서는 꽤 이름도 알려져 있습니다. 윤 후보와는 2012년 결혼했습니다. 2019년 윤석열 당시 서울지검장의 공직자 재산신고에 따르면, 김 씨는 70억 원 가까운 예금과 건물,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재력가이기도 합니다.

윤 후보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남 부러울 것 없게 자랐습니다. 부친이 대학 교수이고, 한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를 다녔습니다. 사법시험을 봐서 검사로 일하다 검찰 최고위직까지 올랐습니다. 사시에 9번 실패했다거나 53살이란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이 좀 특이하지만 그 외엔 인생의 대부분을 줄곧 꽃길을 걸었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단숨에 주목받는 대권 후보 리스트로 올랐고, 정권이 그를 핍박할수록 지지율이 올랐습니다. 사과 한마디 할 필요 없이 그는 선출직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윤 후보가 '개 사과'에 이어 이번에 아내 '대리 사과'로 뭇매를 맞고, 김 씨가 적선하듯 '사과 의향'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데는 다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기에 대중들이 자신들에 대해 검증과 비판의 칼날을 들이댈 때 "그것도 죄라면 죄" "사과할 의향 있다" “현실을 좀 잘 보시라고" 등의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대통령 후보자와 부인은 엄연한 공인입니다. 지난 과거는 어쩔 수 없더라도 이제부터라도 대중과 소통하고 제대로 사과하는 법부터 배웠으면 합니다.



제대로 된 사과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든다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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