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씨의 ‘읍소 사과’에 점수를 준다면

늦었지만 내용 파격적...평가할 만

by 이리천

저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저 사과와 용서, 화해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직장인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친여, 친야 성향도 아닙니다. 두 후보 모두 맘에 안 들어 진작 투표를 포기했습니다. 다만, 며칠 전 김건희 씨 ‘하대 사과’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어 어제 한 후속 사과에 대해 몇자 적어볼까 합니다.


https://brunch.co.kr/@2877e99751154fc/37

[김건희 씨의 ‘사과 의향 있다’ 발언에 대해]


김 씨 사과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번 사과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100점 만점에 70~80점 정도?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과에서 포인트는 세 가지입니다. 진정성과 스피드, 그리고 화자. 진정성은 콘텐츠와 여러 가지 비언어적 표현으로 평가할 수 있겠고, 스피드는 사과 시점이 적절했는지, 그리고 화자는 본인이 직접 하는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김 씨는 진정성과 화자에서는 득점했고, 스피드에서 실점했습니다.


김 씨의 지난 17일 “사과할 의향 있다”는 ‘하대 사과’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사과 내용도 그렇고 태도도 좋지 않아 반발이 컸지요. 그 후 나온 남편 윤석열 후보의 ‘대리 사과’는 문제를 더 증폭시켰습니다.


그러나 김 씨의 어제(12월 26일) 사과는 내용 면에서 평가할 만합니다. 사과문에서 중요한 게 다섯 가지(5R)입니다. ①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는지 적시(Recognition) 하고 ②그게 자신의 책임(Responsibility) 임을 인정하고 ③상대방이 공감할 수 있는 양심의 가책(Remorse)이나 죄책감을 표현해줘야 합니다. 더 중요한 건 ④충분한 보상과 배상(Restitution)과 ⑤재발(Repetition) 방지 약속입니다.


https://brunch.co.kr/@2877e99751154fc/7

[대충 하면 되지?... 놉, 사과는 과학이다]


김 씨는 자신에게 제기된 허위 경력 의혹과 관련, 어제 6분짜리 사과문 발표를 통해 이렇게 사과합니다.


일과 학업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 잘못이고 불찰입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서 14페이지짜리 유인물로 본인이 어떤 것을 부풀리고 잘못 기재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언론에 따르면, 11개 의혹 중 7개가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교생 실습’을 ‘근무’로, '단체수상'을 '개인 수상'으로 부풀려 표기하고, 임원 재직 기간을 늘리는 등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조선일보 정리 내용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사실 인정과 반성, 자숙의 다짐까지 다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보상과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이 부족합니다. 아내 역할만 하겠다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허위 기재는 아닐지 모르지만 경력을 부풀리고, 과장한 데 대해 책임질 일이 있다면 분명히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어야 합니다.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면 그 부분도 보상하겠다고 언급해야 하고요. 그 부분이 아쉽습니다.


일부에서는 또 김 씨가 너무 감성적 접근을 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사과 내용을 말하기 전에 유산 사실 등 개인사를 먼저 밝힌 것이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성적으로 일단 화난 청자들의 마음을 풀어놓은 다음, 본론으로 들어가는 아주 영리한 접근이라고 평가합니다.


“결혼 후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직장 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아이를 잃었습니다. 예쁜 아이를 얻으면 업고 출근하겠다던 남편의 간절한 소원도 들어줄 수 없게 됐습니다.”

“국민을 향한 남편의 뜻에 제가 얼룩이 될까 늘 조마조마합니다.”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없어져~~~”라는 부분이 크게 다가오더군요. 쉽게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닌데, 굉장히 과감한 표현을 선택했다고 봤습니다. 과하게 본인을 내려놓음으로써 듣는 사람을 오히려 미안하게 만드는 전략이죠. “상대가 저렇게까지 나올 줄이야….”라고 생각하게끔 허를 찌르는 고도의 전략입니다. 도대체 누가 저런 결정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전부 본인이 작성했다는 설명이지만, 저로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대목입니다. 그게 사과문의 가장 큰 포인트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과할 때는 인색하게 하지 말고 과하게 하라. 상대방이 부채 의식을 갖게 할 정도로. 그게 포인트인 거죠.


그리고 김 씨가 ▲사과문 어디에서도 ‘그렇지만’ 등의 토를 달지 않은 것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나와서 사과한 것 ▲어수선한 비호감 ‘애교머리’를 세련된 단발로 정리한 것(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 ▲사과문 발표 내내 눈을 내리깐 것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90도 폴더 인사를 한 것 등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모두 득점 포인트입니다.


물론 감점 사항도 있습니다. 우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보상과 배상에 관한 명확한 약속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의혹이 제기된 지 12일 만에 나온 너무 늦은 사과라는 점입니다. 본인과 남편, 야당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지지율이 급락해서야 어쩔 수 없이 나선 모양새가 된 거죠. 사과 발표 후 질문도 받지 않고 나갔다는 점도 감점 요인입니다.


여당에서는 사과문 발표 후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 남편에게 사과하는 막장 기자회견” “악어의 콧물 흘린 사과 쇼” “개 사과 때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등의 비판이 나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 의견으로는 최근 정치인들이나 그 배우자, 관련자들이 한 사과 중 가장 내용이나 형식상으로 잘 정리된 사과라고 봅니다. 다른 정치인들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이 정도로만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해도 한국 사회가, 한국 정치가 지금보다 훨씬 깨끗하고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짧은 소견이었습니다.


김건희씨가 늦었지만 직접 사과에 나선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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