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용서, 화해에 대해 글을 쓴다니 많은 분들이 말립니다. “요즘같이 이기적인 시대에 누가 그런데 관심이나 있겠느냐”는 게 포인트입니다. 자기 먹을 것, 놀 것, 입을 것, 돈 벌 것 이런데나 신경 쓰지 사과나 용서같이 돈도 안되고, 도움도 안 되는 주제는 관심 외라는 겁니다. 글 쓰는 주제를 바꿔보라고 합니다. 부동산 여행 재테크 IT 등등으로.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과와 용서 이런 무형의 행동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나 음식, 부동산 이런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무지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과 용서는 잘만하면 엄청난 돈이 됩니다. 어렵게 얘기할 필요 없습니다. 사례는 차고 넘치지만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18년 8월 2일. 머스크는 투자은행인 케이뱅크캐피털마켓이 인정한 것처럼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사과’를 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약 5조 3200억 원(47억 5000만 달러) 짜리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머스크는 이날 그해 2분기 실적 관련 콘퍼런스 콜(상장사가 기관 투자가나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자사 실적과 전망을 설명하기 위해 여는 전화회의)을 열었습니다. 그는 행사초 정중한 사과를 합니다.
“이전 콜에서 정중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My apologies for not being polite on the prior call).
지난 1분기 콘퍼런스 콜 때 자신이 질문자들의 질문에 무례하게 답변한데 대해 사과한 것입니다. 그는 당시 자신이 수면 부족과 과로로 신경이 무척 날카로웠던 상태였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행사 내내 여러 차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거듭 사과합니다. 그리고 그날 뉴욕증시 시간 외 거래에서 테슬라 주가는 무려 8.5%나 뜁니다. 실적이나 전망이 모두 엉망이었는데도 말이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3개월 전인 2018년 5월. 당시 테슬라는 신제품 모델3의 생산 일정이 어그러지고,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등 사면초가 상태였습니다. 6분기 연속 적자로 수십억 달러의 빚을 내야 할 상황이라는 분석이 월가에 지배적이었습니다. 당시 콘퍼런스 콜에서는 당연히 현금흐름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투자증권사인 번스타인의 토니 사코나기와 RBC캐피털의 조지프 스팍(둘 다 애널리스트)이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머스크는 이런 질문에 이렇게 면박을 줍니다.
“지루하다(boring)”
“멍청한 질문(bonehead question)은 쿨하지 못하다”
“나는 우리 주식을 사라고 설득하려고 여기 나온 것이다. 변동성이 무섭다면 사지 마라”
테슬라 주가는 실적 악화에다 CEO의 무례한 태도가 겹치며 당일 5.5%나 떨어집니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 28억 달러(약 3조 원)가 증발한 것이죠.
3개월 후 머스크가 그 같은 행동에 대해 정중히 사과한 것입니다. 그 전에도 트위터로 수차례 사과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전 행사 때 독한 말로 면박을 줬던 두 명의 애널리스트들에게 질문 기회를 먼저 주면서 사과했습니다. 길지도 않았습니다. 딱 10자. My apologies for not being polite on the prior call. 이게 CNBC 블룸버그 등 언론 매체를 통해 헤드라인으로 뽑혀 나가며 분위기는 반전됩니다. 그날 테슬라 주가는 시외 거래에서 7.5%가 뛰었고, 그다음 날엔 여러 긍정 전망이 겹치면서 다시 16% 뛰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테슬라는 2분기에 7억 1750만 달러(약 832억 원)라는 기록적인 손실을 냈고, 현금 흐름 역시 중국 공장 건설 등으로 더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 말이죠.
미 언론들은 그가 오랜만에 보인 CEO다운, 어른다운 행동에 주목했습니다. 머스크는 1분기 컨퍼런스콜 때 말고도 온갖 돌발적 행동과 발언으로 유명합니다. 타임지는 그를 '믿을 수 없는' 인물로 규정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거듭 사과하는 모습에 리더로서 책임감을 보였다는 데 시장이 평가한 것입니다. 미 경제전문 주간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이날 사과는 투자자들과 머스크의 팬들에게 그가 정상적이고 안정적이며 책임감 있는 자세로 돌아왔음을 확신시켜주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머스크의 달라진 모습은 또 있습니다. 머스크는 지난해 11월 7일엔 세금 낼 돈이 필요하다며 보유주식 10% 매도 여부에 대한 여론을 묻습니다. 주주들은 찬성표를 더 많이 던졌고, 그 후 머스크는 보유지분의 10%에 가까운 164억 달러(약 19조 4500억 원) 어치의 주식을 팔았습니다. 그래도 테슬라 주가는 여전히 100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 몰래 경영진들이 스톡옵션을 내다 팔아 주가가 30%가량 빠진 국내 일부 몰지각한 IT기업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사과가 왜 필요하고, 혁신기업이 어떠해야 하는지 머스크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머스크가 그의 천재적인 사업 기질과 상상을 뛰어넘는 아이디어에 비해 아직도 암호화폐나 사업계획 관련해 경솔한 장난질을 많이 친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투자자 고객들과 빠르게 소통하는 모습은 우리가, 특히 한국 기업인들이 많이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위 ‘혁신의 대명사’라고 하는 한국의 IT기업 젊은 오너들이 머스크처럼 솔직히 사과하고 반성, 소통하나요.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은둔형 재벌 총수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전문경영인들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오너들이 돼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참고로 2018년 8월 2분기 콘퍼런스 콜 당시 70달러 언저리(주식 액면분할 감안한 가격)였던 테슬라 주가는 3년 반도 안돼 1000달러에 안착해 있습니다. 무려 1430% 상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