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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천 Jan 17. 2022

엘리베이터에서 떡을 받았습니다

'층간소음' 없는 세상은 이렇게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저녁 퇴근길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아주머니가 문쪽에서 급하게 뛰어 옵니다.

개폐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니 안경에 하얀 입김이 올라온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릅니다. 


17층. 바로 위층입니다.


아무 말 없으시던 아주머니. 

13층께서부터 가방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바스락 바스락.

비닐 포장지 소리가 요란합니다. 

뭐하시나.

15층쯤에 이르렀을 때 아주머니가 뒤돌아서며

갑자기 떡을 몇 개를 내밉니다.  


"떡 좀 드세요. 제가 방금 받았는데 좀 많아서요."

"네?......."


당황스러운 상황. 

웬 떡?

이걸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바로 윗증이니 이웃인데....

됐다고 하기도 그렇고, 받자니 그것도 이상하고.


 엉거주춤하는데 아주머니 떡을 몇 개 더 꺼냅니다.


 "금방 받은 건데 맛있을 거예요. 댁에 가서 좀 나눠 드세요."

 "아 예.. 예...."


아주머니가 내미는 떡을 손으로 받을 수도 없고, 그냥 가기도 이상하고...

가방과 함께 신문지를 내미니 그 위로 떡 몇 개를 놓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내립니다.


집사람이 묻습니다. 

 

"어? 이게 뭐야?"

 "응. 위층 아주머니가 주셨어."

 "잉?"

 "떡을 받았는데 많아서 나눠 먹자고 하시네."

 "누군지 알아?"

 "아니"

 "무슨 떡이래?"

 "몰라."
 "누군지도 모르고, 무슨 떡 인지도 모르는데 떡을 받아와?"

 "그러게."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와 한참 위층 얘기를 했습니다. 

아내도 위층에 제대로 인사를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나이 든 부부와 20대 아들이 사는데 가끔 아들이 큰 소리를 지른다는 것. 

오전 10시가 되면 누군가가 초인종이 울리고 12시가 되면 청소기를 돌리고

아저씨는 가끔 '컥컥' '윽윽' 하는 소리를 내고

가끔 부부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아들은 야행성인지 밤에 음악을 틀고 발꿈치로 걸어 다니는 소리가 

공부하는 작은 딸 방으로 들린다는 정도. 


가만 생각하니 이사 온 지 1년이 넘었지만 

위층과 한 번도 인사를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아주머니는 

아들의 큰 목소리와 음악소리 때문에,

가끔 싸우는 소리 때문에,  

아래층에 좀 미안해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16층 남자를 보니 뭐라도 인사해야 하는데

마침 받은 떡이 있어 그냥 주신 게 아닐까.


그런저런 얘길 하면서 가만 생각해 봅니다.  


아파트 이웃.


가장 가깝게 살면서도 가장 잘 모르는 관계.

큰일이 나면 생사를 같이할지도 모르는 관계.

돕고 살면 누구보다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

관계가 틀어지면 최악이 될 가능성이 큰 관계.


누구보다 잘 모셔야 할 사람이구나.

그런데 너무 소원했구나.

시간 봐서 함 인사해야겠구나. 


저녁 내린 소박 눈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모두 행복한 저녁 되세요~~~~^^

 



#아파트 #층간소음 #엘리베이터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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