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집에 없던 일이 생겼습니다. 집사람이 제 글을 읽고 나서 압박을 넣기 시작한 것입니다.
“남들에게 사과하라 하지 말고 당신부터 나한테 사과해 봐.”
처음엔 지나가는 말로 몇 번 하더니 어제는 아예 책상 앞으로 와서 ‘헤드락’까지 걸었습니다. “빨리 해보라”라고 하면서. 대략 난감입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을. 참 이 말이라는 게..
문득 10년 전 미국에서 살 때가 생각납니다. 잠깐 교회에 다녔지요. 미국에 가신 분들은 이해하실 겁니다. 처음 정착할 때 대부분 교회의 도움을 받습니다. 일종의 '딜'이라고나 할까요. 교회에 나간다고 약속하면 교회 분들이 이삿짐 나르는 거나 정착에 필요한 소소한 일들을 봐줍니다. 잠깐잠깐 오가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교회에 이사를 돕는 전담팀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 전엔 교회를 다녀본 적도 없는데 1년 동안 안 빠지고(여행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결석했지만요) 계속 교회에 나간 겁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꼭 저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습니다.
큰 충격이었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목사님이 제 옆에서 제 속을 들어다 보면서 그렇게 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설교란 게 이런 건가 하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다음 주에 가면 또 무슨 소리를 하실까.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집 사람이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생전 안 가던 교회를 왜 그렇게 열심히 가느냐고. 제 사정을 얘기해도 안 믿는 눈치였습니다. '신앙을 빙자한 친교 목적'이라고 빈정대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열심히 교회에 나갔고 멀리서도 눈치챌 수 있는 그 열정에 목사님도 감복하셨는지 하루 이틀 저를 찾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러다 결국 저희 집까지 왔습니다. 증언을 하라고 하더군요. 제가 하느님에게 아주 가까이 가 있는 상황이라며 “나는 당신의 도구입니다. 당신의 도구로 써주세요”라고 말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목사님 말씀이 그 말을 제 입으로 하면 하느님과 제가 계약을 맺는 거라고 하더군요. 목사님과 사모님, 저와 집사람 이렇게 넷이 탁자에 둘러앉아 서로 손을 부여잡고,
“말씀해 보세요”
“안되네요”
“말씀해 보세요. 당신 앞에 주님이 와 계십니다.”
“….”
이런 대화를 2시간 넘게 나누는 기괴한(?) 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 손을 잡은 제 양 손은 땀으로 범벅이고, 말은 안 나오고. 아마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그 광경을 봤다면 빙의를 부르는 그런 광경으로 오해할 수 있도 있는? 아무튼 제가 생각해도 희한한 일이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요.
결국 목사님은 다음엔 할 수 있을 거라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이 그렇게 떨어지질 안더군요. 말을 하는 순간 정말 제가 신자라고 해야 하나요, 환자라고 해야 되나요 무시무시한 종교인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수녀원에 들어가는 서약을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목사님, 지금도 카톡으로 미국에서 제게 매일 저녁 기도문을 보내주시고 계십니다. 저는 그 목사님 교회 떠난 후로는 단 한 번도 교회를 안 가고(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고) 있습니다.
얘기가 한참 옆으로 샜네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생각과 말을 일치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생각은 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막상 하려면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쑥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겁이 나서 인지(미안해 라고 말하고 나면 영원히 집사람의 하수로 남을 것 같은 두려움?), 아니면 불치의 교만함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은 성숙하지 않은 영혼에겐, 특히 쫌생이 같은 50대에겐 벅찬 일인 게 확실합니다.
집사람은 오늘도 한마디 합니다.
“계속 사과 안 하고 엉터리 글만 쓴다면 나도 계획이 다 있지. 댓글로 그 정체를 폭로해 버리겠어.”
여러분, 여러분이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떨어지지 않는 입과 밀려오는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이에서 어떤 솔로몬의 해법을 찾으실까요. 우문현답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