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방의 비밀④ 그녀, 김미영

by 이리천

신라방 사장 김미영은 미인이다. 키 165센티에 45kg, 잘 관리된 호리호리하고 탄력 있는 몸매다. 거기다 40대 초반이라 해도 손색없는 동안의 미모에 귀 밑으로 짧게 자른 단발까지. 그 모든게 잘 조화돼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는다. 가게에 처음 들르는 손님들이 사장이 아니라 모델인가라고 생각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좀처럼 웃지 않는다. 손님들은 사장 나이가 쉰 살이 넘었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어머 어머’ ‘웬일이니’라며 짐짓(때론 진심으로) 놀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예의상 웃어주는 법도 없다. 몇몇 손님들이 혹시나 해서 끝까지 곁눈질하고 보지만 입꼬리조차 실룩거린 적이 없다.


그렇다고 화를 내는 얼굴이냐. 그것도 아니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이다. 가장 화냈을 때 하는 말이 “저 서운합니다”라는 정도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들어본 사람도 몇 년 전 세상을 뜬 시어머니이자 전 사장인 송금순 정도다. 남편 왕기학도 그런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녀는 신라방만큼 미스터리다. 인터뷰를 하지 않는 이유를 '바빠서'라고 잘라 말한다. 사업을 키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선대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한다. 가게가 늘어나면 맛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본인이 직접 한 적이 없다. 종업원들도 인터뷰를 하지 않으니 누가 한 얘기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방송이나 신문 기자들이 지어냈다는 얘기도 있다.


확실한 말이 없으니, 소문이 끝이 없다. 신라방이 실은 따로 하는 사업이 있다느니, 그래서 가게를 확장할 이유가 없다느니, 스위스 은행에 비밀계좌를 만들어놨다느니. 김 사장과 신라방을 둘러싼 소문은 음식 맛의 비밀만큼이나 끝이 없다. 그러면서도 딱히 진심으로 신경 쓰지는 않는다. 맛이 최고니까. 그걸로 다 용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웃 가게 사장들은 다르다. 신라방의 그늘에 가려, 퇴락한 도심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힘든 나날을 보내는 가게 사장들은 그렇게 너그럽지 못하다. 이들은 모일 때마다 신라방을 씹는다. 의심은 의혹으로, 의혹은 어느새 확정적 혐의로 부풀려진다.


왜 신라방은 확장하지 않을까. 왜 사장이나 직원들이나 그렇게 무표정인가. 왜 직원을 더 늘리지 않을까. 왜 그 흔한 인터뷰, 광고 한번 하지 않을까. 신라방에서 나오는 심심찮은 음식 관련 소문들은 왜 나오자마자 묻히는 것일까. 그게 김 사장은 수요일마다 지역 봉사 활동에 열심인 것과 관련이 돼있는 거 아닐까.


그러다 한 분식집 사장이 말한다. 김미영 사장이 시청 공무원들이나 경찰, 검찰 기관장 등 지역 유지들을 미모와 골프 실력으로 아주 혼을 뺀다는 것이다. “조신한 것 같아도 아주 불여우야”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다른 사장이 거든다. “김 사장이 가게 문을 닫으면 가끔 차를 타고 나간다는데, 남편 왕 씨하고 사이가 안 좋다는 얘기도 있어.” “이혼 머 이런 얘기도 나온다는데. 벌써 변호사도 만났대” 어느새 술에 취한 말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쳐 날뛴다.


사실 김미영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중국서 대학을 나온 해외 유학파 출신이라는 점, 20대에 신라방에 시집와 벌써 장성한 아들을 둘 씩이나 두고 있다는 점, 10년 전 시어머니로부터 남편 대신 가게를 경영을 물려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는 것 정도다.


김미영은 절대 나대는 법이 없다. 시끄럽게 경영하기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가게를 운영한다. 그의 성격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그가 경영을 맡기 전 신라방은 탄탄한 상태였다. 창업주이자 시조부인 왕기응 사장에 이어 시어머니인 송금순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맛과 평판으로 기반을 다져놓은 후였다.




시어머니 송금순이 신라방에 처음 들어온 것은 15살 때였다. 신라방이 문을 연 지 2년째 되던 해. 왕기응은 동생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들르는 송을 눈여겨봤다. 음식을 구걸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반듯했다. 항상 뭔가로 대가로 치르려 했다. 하다 못해 가게 앞 쓰레기를 옆으로 치우고 갔다. 동병상련이랄까. 왕은 송의 심성과 총명함을 알아봤고, 일자리를 주며 거둬들였다. 처음 맡은 일은 홀 청소. 그러다 주방에 이어 카운터까지 맡아보게 됐다.

7년 후. 왕기응은 송금순에게 식구가 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묻는다. 그녀라면 가게를 맡겨도 될 성싶었다. 히로쓰 밑에서 만난 아내는 아들 왕영의를 낳고는 시름시름하다 일찍 죽었다. 몸이 성치않은 아들에게 신라방을 맡길 수는 없었다. 송금순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하면 아들과 신라방을 함께 맡겨도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도 없었다.

송금순은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보다 두 살 어린 왕영의와 결혼한 이듬해 손자 왕기학을 낳았다. 왕기응은 며느리가 낳은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고, 한국에 도착한 지 28년 만에 가장 크고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이듬해 왕기응은 세상을 떠났고 신라방 운영은 애오라지 송의 몫이 됐다. 몸이 약한 남편 왕영의는 그 후 10년을 더 살지 못했다.

그러나 송금순은 혼자가 아니었다. 시아버지의 친구인 후이와 그의 산둥성 친구, 그리고 종업원들이 바위처럼 버티고 있었다. 신라방에선 개점 후 한 사람도 그만두거나 다른 가게로 옮긴 사람이 없었다. 누가 아프거나 죽으면 그 아들이 들어와서 일했고, 그 아들이 아프면 손자가 와서 일했다. 해고도 없고, 신규 사원도 없었다. 새로 들어온 멤버는 송금순과 그의 며느리 김미영이 유일했다.

이웃들은 그 이유를 항상 궁금해했다. 그러나 그것이 왕기응이 발견한 우물과 관련돼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김미영이 왜 가끔 우물가로 가는지, 그 후 왜 반드시 외출하는 지, 왜 수요일마다 지역 봉사활동에 그렇게 열정적인지도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김미영 자신과 남편 왕기학, 그리고 신라방 종업원들 뿐이었다.


K시 주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알아서도 안되고, 알면 위험한 비밀. 신라방의 사장과 종업원들은 그걸 공유하는 한 ‘패밀리’였다.


(5편에서 계속)





#신라방 #마약 #짬뽕 #비밀 #미스터리 #폭발 #우물 #썸남썸녀 #호수 #측백나무 #회화나무 #삼합회 #골수회 #간체자 #암호 #검찰 #경찰 #왕기응 #박찬우 #김수현 #정애라 #우물 #창고


http://ttenglis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