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코틀랜드였나
영국 학교는 가족 여행을 한국처럼 현장체험학습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출석일수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편이라서 우리가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기는 야옹님의 방학 때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영국의 공립학교는 6학기 제도라서 수시로 1~2주의 방학이 있기 때문에, 방학 때 비용이 비싸다는 점을 감수하면 여행의 기회는 차고 넘친다. 야옹님 여름방학 전에 이 중간방학 동안 세 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온 남편은 여행에 지쳐버렸다. 사실 우리가 결혼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신혼여행을 포함해서 같이 다녀온 해외여행이 세 번에 불과한데(그것도 일본과 괌이었다), 반 년동안 세 번을 영국 밖으로 나갔다 왔으니 우리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해외여행의 과잉이기는 했다.
영국에 살고 있는데, 정작 영국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는 것 또한 본말전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해서, 우리 집에서 멀어서 쉽게 가기 어려운데 영국에 속하는 곳, 하지만 한편으로는 잉글랜드와 이질적인 스코틀랜드를 1순위 여행지로 정했다.
여름방학에 유럽 본토를 누비는 대신 주 여행지를 스코틀랜드로 정하고 나니, 아쉽기도 했지만 속이 편한 점도 많았다. 우선 올해 여름은 코로나-19 보복 여행 심리가 극에 달해 여행 수요가 폭발한 반면, 그동안 인력을 감축하거나 임금을 동결했던 여파로 철도ㆍ항공사ㆍ공항의 파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자차를 가지고 가는 우리는 매번 항공사 홈페이지를 수시로 마음 졸이며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유럽의 저가 항공사는 수하물을 추가할 때 비용 부담이 큰데, 영국 안에서 우리 차를 가지고 가니 짐도 마음껏 싣고 다닐 수 있었다. 덕분에 컵라면뿐 아니라 휴대용 전기냄비와 아이스박스까지 바리바리 싸다니면서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여행 직전에 무슨 일이 생기는 경우에도 숙박 일정만 조정하면 되고, 여행 중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영국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다행히 아주 큰 일은 없었지만 타국 생활에서 가족의 안위가 영 순위라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실 이런 이유를 붙이지 않더라도 스코틀랜드는 하이랜드의 대자연과 에든버러가 있어, 언제 가느냐의 문제였을 뿐 영국에 있는 동안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이었다.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마치 의도적인 것처럼 스코틀랜드의 풍경을 롱테이크로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산 깊이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산 초입이나 심지어 차 안에서도 그렇게 찍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지리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스코틀랜드의 풍경은 내가 얄팍하게 알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이미지와 지독하게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한편 스코틀랜드의 날씨는 영국에서도 가장 춥고 변덕스럽다고 하니, 스코틀랜드를 간다면 여름에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에든버러의 축제도 8월에 집중되어 있어, 우리가 갔던 7월 말에는 축제 직전의 공기가 맴돌았다.
여행에 대한 감상은 그곳을 떠날 때의 기분에 집약되어 있다. 내 경우엔 하이랜드를 떠날 때는 1년 뒤 영국을 떠나는 그날 얼마나 아쉬울지 상상하고 있었고, 잉글랜드로 국경을 넘어가면서는 내년에도 스코틀랜드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여행이다 보니 내가 가고 싶던 스털링 성이나 하드리아누스 방벽 등은 일부 포기를 해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본질적으로 스코틀랜드의 산하와 길이 특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운전을 맡은 남편의 희생 덕에 잘 다녀온 여행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