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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너머 Sep 05. 2022

야옹님 여름방학 스코틀랜드 여행기 2

스코틀랜드 여행 경로 정하기

스코틀랜드 여행을 앞두고 어디를 어떤 교통수단으로 갈지 고민이 많았다. 말이 같은 영국이지, 브리튼 섬 남동쪽 끝자락에 있는 우리 집에서 에든버러까지 가는 데 차로 8시간이 걸리고, 에든버러에서 그 유명한 스카이 섬까지 가는 것도 5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과연 우리 체력에 자동차 여행이 가능할까 의구심부터 들었다. 


기왕 여름방학 때 먼 길을 가는 김에 에든버러와 스카이 섬을 둘 다 보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 에든버러까지 기차 왕복 + 에든버러에서 출발하는 스카이 섬 투어

2) 자동차 여행


아직 차량통행이 적은 시간대에 마트 정도만 운전해서 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남편에게 운전 부담을 지우기가 항상 미안하다 (물론 미안하다고 하고서는 이번 여름 내내 영국 자동차 여행만 다니긴 했다). 그래서 운전을 하지 않을 수 있게 기차와 투어를 먼저 알아보았는데, 일단 1박 이상을 하는 투어는 비싸서 세 명이 다니기에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한인 투어는 날짜가 안 맞았는데, 바스에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너무나 열심히 듣는 가족들 모습을 보니 영어 투어를 비싸게 신청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결국 운전자 부담이 없게 굼벵이 같이 호핑을 하는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물론 우리는 영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렌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영국의 살벌한 렌트비를 내고 운전할 것인가, 투어비를 낼 것인가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우리 집에서 에든버러까지 차로는 8시간이 걸리지만, 기차로는 런던에서 갈아타는데도 6시간이면 갈 수 있기도 하다. 나중에 인버네스에서 스카이 섬까지 당일 투어도 있다는 것을 지인에게 듣게 되었는데, 결정하기 전 이것을 알았다면 차를 안 가져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에든버러까지는 사흘에 쪼개서 가고, 스카이 섬을 들러 내려오는 길에는 영국에 오기 전 꼭 가라고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았던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들렀다 오는 경로를 짜니 왕복에 최소 30시간, 1,500마일에 달하는 (우리 가족 기준) 대장정이 되었다. 거기에 여기저기 돌아다녔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번 여행에서 약 2,000마일 정도를 찍었다. 


대략적인 여행경로 (출처: 구글 지도)


북미 대륙 횡단에 비하면 귀여운 규모일 수 있지만 저질 체력 가족에게는 꽤나 도전적이었던 이번 여행. 남편은 장하게도 무사히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이유는 첫째가 남편의 책임감 덕이었을 테지만, 그의 말을 빌자면 "운전이 노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하이랜드의 풍경 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마치 태고의 자연 속을 자동차로 달리는 기묘한 느낌. 차창 밖으로도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이유는 큰 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과 그래서 인구가 늘기 어려웠던 탓도 있지 않을까 싶어,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다. 


(TMI) 그래도 영국 도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인지, 의외로 우리가 갔던 길은 스카이 섬을 제외하면 중앙선이 있어서 운전하기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스카이 섬도 구글 지도에 굵게 표시되어 있는 도로(도로명에 A가 있는 도로)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중앙선이 있다. 다만 지도상에 가늘게 그려져 있는 이름 없는 도로는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도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맞은편에 차가 오면 비킬 수 있는 양보 공간이 군데군데 있다). 영국 운전에 익숙하지 않다면 주요 도로만 다니더라도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단 스카이 섬의 알려진 명소는 결국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꼭 가고 싶다면 주요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을 먼저 가보고 다음 경로를 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실물의 만분의 일도 담아내지 못하는 차창 밖 풍경 사진 몇 점. 잉글리시 헤리티지 스티커를 붙이고 스코틀랜드를 누비자니 나홀로 괜히 뜨끔한 기분이었다


한편, 두어 달 전 내가 영국 날씨에 대하여 썼던 글을 비웃듯, 영국은 우리 스코틀랜드 여행 전 38~39도에 달하는 기록적인 더위를,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30도 정도의 영국으로서는 꽤 더운 날씨를 겪었다. 여름 여행을 마무리하고 정리할 시점이 되니, 자유롭게 자동차 여행을 할 수 있는 세대도 우리가 마지막은 아닐까, 문명의 이기로 대자연을 헤집고 다녔던 이번 여행이 사실은 큰 사치이자 폭력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비겁한 나는 이 편리함을 당장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내 생에 이렇게 긴 자동차 여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으니, 기왕에 담아온 감상을 잘 갈무리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일 터다. 거기에 소비를 조금씩은 줄여나가 보자는, 마치 초등학생 일기 같은 다짐도 한번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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