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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Nov 18. 2019

아이를 낳기전엔 몰랐던 무서움

누가 미리 알려준다 해도 무서운건 마찬가지

흔히들 아기를 갖기전엔 그렇게 입덧이 괴로운지, 피부는 얼마나 뒤집어지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힘들고 두려웠다 등등 얘기를 하는데, 난 조금 다른 류의 공포심을 갖고 있다.


우선 특별한 임신출산교육을 받지 못한 여느 평범한 사람 중 하나로서, 나 역시 임신이란 그냥 많은사람들의 축복속에서 배가 동그랗게 부풀고, 조금 웩웩 거리다가 남편이 새벽에 딸기를 사오면 신나게 먹고, 하늘이 노래질때까지 힘주다보면 아기가 뿅 나올테니 출산당일만 힘들면 되겠지 싶었다. 그날만 고생하면 어여쁜 아기와 천년만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완벽한 결말을 맞이할테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두려움과 천근만근의 걱정거리가 쌓여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고 착상되는것도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데다, 착상되었다 해도 그때부터 무럭무럭 자란다는 보장이 없다는게 첫번째 두려움. 임신 12주가 지나야 안정기라는 말은 12주까지 먹는거 조심하고 뛰거나 운동을 하지 말라는 뜻인줄 알았으나, 그런걸 다 조심한다 해도 유전자문제 또는 불완전임신 등으로 유산이 가능하다. 내가 조심한다고 막아지는게 아닌 임신초기 유산. 꽤 흔한 일이라는데 임신 전까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임신 12주가 지났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그때부턴 조산을 하지않고 만삭 출산을 하는게 목표가 된다. 난 아기를 갖기 전 "19주만에 출산한 아기, 건강히 퇴원해" 라는 기사를 보고는 아, 아기는 19주만에 출산해도 살릴만큼 의학이 발전했구나~ 하면서 안도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임신하고 12주가 지났을때, 이제 어느정도 안정기니까 7주만 더 잘 품고 있으면 되겠네~ 라는 말도안되는 무식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조산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물론 의학이 발달해 미숙하게 태어난 아기도 이런저런 처치로 잘 살리지만, 아기는 그 와중에 큰 후유증을 얻을수도 있고, 여러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넘기고 퇴원한다 해도 기나긴 재활훈련을 해야할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맘졸이는 부모마음은 어찌할 것인가. 조산을 누가 하고싶어 하는것도 아니고, 이 역시 원치않았던 유산처럼 원치않았는데 문이 열리듯이 아기가 그냥 나오게되거나 임신중독 등의 문제로 아이를 더이상 품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조산을 한다. 이 또한 엄마가 어찌할수없는, 노력밖의 일이다.


만삭까지 잘 품는다고 그 과정은 마음이 편할까. 중간중간 검진때마다 마음을 졸일 일은 허다하다. 각종 기형아검사를 통과해야하고 초음파로 태아의 성장을 지켜보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게 발견될까 조마조마하다. 나의 경우 30주 넘어가면서부터 태아의 장에 혹이 있다는 소견을 들었는데 좀 더 지켜보다가 계속 혹이 보이면 대학병원으로 이송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틈만 나면 온갖 신께 빌었다. 제발 건강하게 태어나달라고. 결국 초음파상의 오류로 판명났을때 얼마나 안도했던지. 여하튼 내 뱃속에서 무사무탈하게 제 날짜 채워서 나오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만삭까지 잘 품고 출산일이 다가오면 그때부턴 극한의 고통이라는 출산의 아픔에 대한 두려움이 다가온다. 그런데 그냥 아프기만 한거라면 참을 수 있다. 출산은 그냥 아픈걸 견디는게 아니라 제일 아픔의 세기가 강한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제일 아플때 제일 큰 힘을 줘서 아기를 몸밖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그래도 아픈걸 견뎌내고 힘을 줘서 아기가 순탄하게 나가기만 해도 다행이지. 주기적인 자궁수축으로 뱃속 아기는 산소부족과 심박수가 떨어지는 고통에 시달린다. 아기가 더 힘들어지기전에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빨리 세상밖으로 빼내야하는게 극한의 고통에 처한 엄마의 임무다. 나의 경우도 난산이어서 아기 심박수가 떨어질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던지. 뱃속이 터져도 좋으니 아기만 무사히 나와주기를 수백번 기도했다.

그밖에도 좁은 산도를 빠져나오면서 아기의 쇄골뼈가 부러지거나 팔이 빠지는 등의 부작용, 무사히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양수가 혈액으로 들어가는 양수색전증으로 산모가 급사하는 경우도 있는 등 확률은 크지 않아도 갖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사무탈하게 잘 낳았다 해서 끝인가. 본격적인 걱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누군가가 "이 아이는 아무 문제없이 기고 걷고 말하고 잘 성장할겁니다." 라고 도장 쾅 박아주면 차라리 맘편히 키울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처음부터 판단해줄수가 없고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발달해가는 아기를 지켜봐야 할 뿐이다. 시력과 청력은 잘 발달할지, 고관절 탈구 없이 신체는 잘 성장할지, 경기나 각종 질병 바이러스 등등에 걸리지않고 잘 클지, 대근육 소근육 다 잘 발달하고 뇌도 정상적으로 성숙되고 두개골도 적당한 시기에 잘 닫힐지, 말을 하고 감정을 나누는 등 인지능력은 잘 성장할지 그저 관찰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아기의 시선을 살피고 딸랑이를 방향바꿔 흔들어가며 청력을 테스트하고, 다리를 접어서 주름을 확인하고, 뒤집기를 유도하기위해 아기를 요리조리 돌려보고, 머리둘레를 재느라 줄자를 들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엄마 해봐 아빠 해봐 엄마 눈을 봐봐 등등 갖은 테스트를 한다. 그 와중에 평균치는 누가 정한건지, 거기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가슴이 철렁하고 밤새 검색을 하며 마음을 졸인다. 나도 애가 대근육 발달이 늦어서 얼마나 며칠밤을 검색으로 지새웠던가. 아기들은 제 속도가 있어 때되면 알아서 한다는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리불안 저리불안 한게 부모마음이다.


어느정도 큰 어린이가 되면 이 걱정이 끝일까. 아닐것 같다. 취학아동을 둔 언니를 보면 진짜 걱정은 취학후에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주재원으로 발령난 형부를 따라 온가족이 중국으로 이사한 언니네는, 조카가 외국인학교를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는것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외국인 담임쌤이 아이가 조금만 부진해도 당장 유급을 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통에 아이가 외국생활 적응도 어려운데 혹시 상처를 입을까 전전긍긍하며 아이의 학습을 도왔다. 1년뒤 슬슬 중국어와 영어의 말문이 트이면서 유창하게 다국어를 하자 학교에서는 우수상을 줬고, 그걸 받아든 언니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내서가 아니라, 아이를 낯선환경에 갑자기 떨궈놓은 미안함,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지 못하고 가끔씩 조바심 낸 것에 대한 죄책감, 눈에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마음이 혹여 다치는 일이 생길까 조마조마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서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이런 일들이 한두개일까. 학년이 올라가면 새 친구들과 무난하게 잘 어울리기를, 누구에게도 상처받지않고 상처주지 않기를, 노력한 만큼 성취하는 기쁨을 느껴보기를, 수능같은 큰 시험에 너무 목을 매거나 좌절하지 않기를, 차가운 세상에서 큰 어려움 없이 제 몫을 해가며 성장하기를, 언젠가는 너도 나처럼 예쁜 아이를 키우며 행복을 느끼기를... 수많은 우려와 걱정과 기도가 아이를 키워낼테지.

 

이 모든게 아이가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걱정과 두려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고, 온갖 걱정속에서 아이를 키워내는 부모는 실로 대단한 존재다. 부모가 된 사람들 모두에게 격려와 존경을 표한다. 우리 모두 잘 키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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