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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Mar 02. 2020

헬육아의 최고 난이도, 치카하기

아이와 싸우지않고 양치하는 법

징글징글하게 말 안듣는 34개월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다. 낯을 많이 가리고 겁이 많아 걸음마도 느렸던 아기였는데, 어느새 천방지축 사고뭉치의 개구장이 어린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모든 육아지침서에서 금지하는 '회유와 협박'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는데, 출근시간은 촉박해지는데 옷을 안입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설득이고 나발이고 "지금 입으면 사탕준다!" 만큼 효과적인게 없다. 최대한 회유와 협박을 안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육아는 늘 고난이도지만 그중에 가장 최고 레벨은 양치하기가 아닐까 싶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먹이고 설거지하고 어린이집 식판 닦고 아이 목욕시키고 내일 아침밥 쌀 씻어놓고 집정리좀 하고나면 나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 아이도 하루종일 어린이집에서 실컷 놀고 집에와서 각종 난장판을 해대며 놀고 밥안먹고 돌아다녀 엄마한테 한바탕 혼나 실컷 울어제끼고 따끈하게 목욕도 했고 그와중에 비누거품 장난 더 한다고 안나가겠다고 고집피우다 엄마한테 또 혼나서 대성통곡 오열하고 슬슬 졸리고 피곤한 상태가 된다. 그런 둘이 만나 양치질을 하려 하니 이건 무슨 맹수 대 맹수의 난투극을 방불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이는 아직 작고 어리지만, 팔다리도 제법 길쭉해져서 품 안에 들어오질 않고 힘도 꽤 세서 작정하고 버티면 감당이 되질 않는다. 물론 더 큰 힘으로 제압하고자 하면 하겠지만 그러다가 팔이라도 꺾일까 싶어 막무가내로 힘을 쓸 수도 없는 지경. 치카하기 싫다고 도망다니고 발버둥 치는 아이와, 점점 더 기력이 떨어지고 피곤해지는 엄마가 서로 으르렁대는,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 정말이지 치카만 잘해줘도 육아 고충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 같았다.


처음에는 기분좋게 살살 달랬다. 이에 충치가 살고 있으니 깨끗하게 닦아야 한다고, 잘 닦지 않으면 배가 아파져서 주사 꾹 하러 병원 가야 한다고. 그런데 당장 주사바늘이 눈 앞에 있지 않는 이상 이건 아이에게 그 어떤 의미도 되지 않았다.

한동안 효과 있었던 건 "지금 치카 안하면 내일 사탕못먹는다!" 였다. 치카를 안하면 오늘 먹었던 사탕이랑 초코가 이에 남아서 충치가 생기고, 이가 아야하면 이제 사탕을 못먹으니까 치카를 잘 해야한다 라는 논리는 아이에게 어느정도 경각심을 줬던 것 같다. 치카만 잘하면 사탕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라는걸 드디어 조금씩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떼를 쓰면 어느정도 사탕이나 젤리가 나온다는걸 안 뒤로는 소용이 없었다.

저불소 치약을 쓰는 조카들이 놀러왔을 때 한동안 효력 있었던건 "누나치약 줄게!" 였다. 무불소 치약과는 달리 거품도 조금 나고 향도 조금 강하니까 치카하는 재미가 조금은 생겼던 것 같다. 하지만 이마저도 혼자 쓱싹거리는 재미 뿐이지, 엄마가 구석구석 마무리해주는 것 까지 흔쾌히 하는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엄마랑 서로 양치해주기(이건 서로의 칫솔을 잡고 상대방의 양치를 해주는건데, 서로 하는거니까 같이 입벌리자 하면 잘 벌린다. 대신에 아이가 잡은 내 칫솔은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가 잇몸, 입천장 찌르는건 기본이고 콧구멍, 눈을 찌르기도 하므로 내가 정신이 없어서 애 이빨을 닦질 못한다;;), 이 닦는 인형 활용하기(관심없음), 이 닦는 어플 활용하기(자기 얼굴 보느라 정신없음), 이 안닦으면 윗집아저씨가 잡아간다(주로 무슨 아저씨나 도깨비, 경찰관이 잡아간다는 류의 협박은 안통함) 등등 오만 방법을 써봤지만 딱히 먹혀들어가는건 없었다.


양치하는 순간마다 애와 기를 쓰고 몸싸움을 하고 결국 화를 내서 애를 울린 다음에, 우느라 입을 크게 벌린 틈을 타서 재빨리 양치하는게 그나마 젤 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뿐인가 하는 자괴감과 애를 일부러 울린것에 대한 속상함, 그리고 행여나 시댁에 갔을 때 이런식으로 양치를 시키면 어김없이 날아꽂히는 잔소리. 싫다는데 관둬라, 양치 안해도 된다 등등.... 저기 애 충치 생기면 님들이 대신 아파주고 고생해주실건지..? 물론 충치 생길 이는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생기고 안생길 이는 대충 살아도 잘 안생긴다. 그렇다고 에라이 복불복이다 하고 안닦일 수 있는가?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저런 불필요한 잔소리는 왜 하는건지 알수가 없다.(갑분분노타임)


양치질이 뭐라고 내 정신을 피폐하게 하던 어느 날, 문득 아이에게 양치를 위생교육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장난이나 놀이처럼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역시나 빠방이! 마침 칫솔도 노란색이겠다 반신반의하면서 시도해봤다.

"어, 여기 노란색 포크레인이 있네? 아가 입 안에 포크레인이 들어가본대! 우와, 아랫니에는 오늘 아랫니가 먹은 초코까까가 들어있어! 포크레인 어서 파주세요! 네 출동합니다! 어, 윗니에는 오늘 아침에 먹은 곰젤리가 있네? 포크레인 출동해주세요! 넵 출동합니다!"

결과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반응이 좋았다! 아이는 꺄르륵 웃으면서 입을 쫙 벌리고 포크레인이 구석구석 닦아주기를 기쁘게 기다리는거였다. 양치가 끝날때까지 몸을 비틀거나 입을 다물지 않고 어찌나 착실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지,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동안 양치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이런 색다르고 신박한 방법을 왜 이제야 깨우친 것인가. 회한과 기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이가 치카를 잘 안해서 고민이신 부모님들께, 이런 방법을 적극 추천드린다. 물론 며칠 안갈수도 있다.(지금 성공4일차) 며칠 뒤 이 글 밑에 *소용없다 젠장. 하면서 덧붙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또 다른 무궁무진한 창의적인 치카 아이디어를 발굴해보며 도전할 것이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육아를 한다는 건 이런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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