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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May 09. 2020

남편의 남다른 위생관념

적응하고 맞춰가야 하는거겠지.. ?

아직은 바람이 매서웠던 4월 어느날이었다. 코로나때문에 놀러갈 데는 없는데, 타이밍 좋게 4살 아들이 씽씽이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어서 사람 없는 야외 공터 같은데서 씽씽이만 쥐어주면 세상 즐겁게 놀 수 있었다.

그날도 아들은 머리가 퐁당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씽씽이를 탔다. 마지막에는 공터 모래놀이를 하느라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었는데 야외라 손 씻길데도 없어서 손소독제로 대충 닦아주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코로나때문에 더욱 위생에 곤두서 있던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애 옷을 다 벗겨서 곧장 화장실로 직행해야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누거품을 내서 목욕시켜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씽씽이와 함께 달리고 있던 남편이 아들에게 "아이스크림 먹자!" 라고 외치며 둘이 슈퍼마켓으로 쏙 들어가는게 아닌가. 아들과 아빠가 몸으로 신나게 놀고 난 뒤에 쌓이는 친밀감과 부성애를 이해한다. 체력을 한껏 소진하고 진하게 땀을 흘리며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연신 둘이서 꺄르륵거리고 소리지르고 파이팅을 외치는데,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손소독제나 짜고 있는 엄마는 느끼지 못하는 어떤 아드레날린에 휩싸여 있는 둘을 보며 그래, 아들에게는 몸으로 놀아주는 친구같은 존재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들이 좋아하는거라면 뭐든지 해줘서 백점짜리 아빠가 되고싶은 심정도 이해한다. 아이스크림 먹자고 외칠때 펄쩍 뛰어오르며 아빠 최고!! 하는 환호성과 함께 그 순간 아이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싶은 욕심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저 상태로 슈퍼로 뛰어들어가면 분명히 아이스크림을 당장 먹겠다고 떼를 쓸테고, 더러운 손에 아이스크림을 줄줄 흘려가며 빨아먹어가며 먹을텐데, 그런건 둘째치더라도 땀 흘린 직후에 매서운 칼바람을 맞아서 안그래도 감기걸릴까 조마조마한 상황에 아이스크림까지 얹겠다고? 도대체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뒤쫓아 슈퍼로 달음박질 해보지만 들어가보니 이미 아이 손에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한숨과 함께 짜증이 솟구친 내 표정을 읽은 남편은, 괜찮다고 집이 코앞인데 금방 들어간다고, 너무 까다롭게 굴지말라고 대뜸 선포한다. 이게 우리의 싸움 패턴임을 너무 잘 아는 나는, 그냥 조금 참기로 했다. 아이를 울려가며 아이스크림을 빼앗을 수도 없고 정말 집이 코앞이기도 했으므로. 대신 아이가 먹느라 정신팔려 걸음이 하염없이 늘어지지않도록 아이를 재촉했다. 그냥 들고 집에 들어가서 먹자고 채근하며 아이를 뛰다시피 걷게 했고, 아이스크림만 쳐다보며 빠르게 걷는둥 뛰는둥 하던 아이는 기어코 넘어졌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이스크림의 일부가 땅에 닿았고 아이는 황망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쳐다보았다. 재빨리 아이스크림 봉지를 보니 다행히도 똑같은 맛의 아이스크림이 하나 더 있길래 잘됐다고 집에가서 씻고 새거먹자 하며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빼앗았다. 앞서가던 남편이 휘적휘적 걸어오더니 이리 줘봐, 하며 땅에 닿은 부위를 입으로 베어 버리고 다시 아이에게 주려 하는게 아닌가! 몇입 먹지도 않은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버리는게 나도 아깝긴 했으나 어디가 땅에 닿았는지 정확히 보지도 못했는데 그냥 대충 떼어내고 먹인다고?


하긴 남편은 아이가 신나게 먹던 막대사탕이 땅에 떨어졌을때 잽싸게 주워서 자기 입속에서 몇번 굴린 뒤 퉤 하고 뱉고 다시 사탕을 아이에게 준 사람이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가 지금 뭘 본거지?' 하며 눈을 비비는 사이 상황종료. 그땐 여분의 사탕이 없기도 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도대체 이런 비위생적인 행동을 어떻게 할 수가 있나 절레절레 하다가 어느날 시아버님이 똑같은 행동을 하시는걸 보며 아, 사람마다 위생에 대한 기준이 다르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종종 나 없이 아들과 시댁에 가는 남편을 도저히 보낼 수가 없다....)


나도 애를 까다롭게 키울 생각은 없다. 다만 성인의 침에는 충치균이 있는데 아이들은 그 균 자체가 없으므로 아이들에게 충치가 생기는건 어른들의 침 때문이라길래, 입에 뽀뽀 안하고 내가 먹던 수저로 아이에게 먹이는 행동을 안하려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기계처럼 딱딱 맞추기가 어렵다는건 나도 안다. 급하면 대충 내가 먹던 젓가락으로 아이 반찬을 집어주게 되고 다 그런거지. 그런데 남편은 애시당초 그렇게 엄격하게 행동하는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본인이 충치가 많은 편이어서 걱정은 됐는지, 자기가 먹던 젓가락을 본인 국그릇에 휘휘 저어서 아이 반찬을 입에 넣어준다던가(먹던 국인데 거기에는 침이 없겠냐마는..) 물티슈로 젓가락을 쓱쓱 닦아 음식을 집어서 준다던가(물티슈가 그닥 안전하진 않다고 생각되는데..) 심지어는 샤브샤브 먹을때는 잘됐다 싶었는지 끓는 샤브샤브 국물에 젓가락을 휘휘 저어서 나름 소독한 뒤 애한테 음식을 먹이다가 뜨거운 젓가락에 입술이 닿아 빨갛게 부어오르는 걸 볼때면 '으이그 인간아' 하며 등짝을 한대 쳐주고 싶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의외로 위생 문제에서 많이 부딪히게 된다. 저마다 위생관념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에 관한거라면 조금 예민하게 구는 나에게 '그런거에 집착하지 말고 네 스타킹이나 제때 빨아라' 라고 퉁박 주는 남편은 의외로 내가 스타킹을 벗어 던져두는 꼴을 못보고 바로바로 빨아서 널어둔다. 잠깐 신었다 벗어서 오늘이건 내일이건 다시 신으려고 구석에 고이 숨겨둔 내 양말도 '저건 왜 맨날 저기에 있지?' 라고 한마디씩 지적한다. 설거지가 쌓이는 꼴도 못봐서 보일때마다 설거지를 하는 통에, 설거지거리 잘만 쌓아두는 나는 설거지를 거의 할 틈이 없다. 음식이 상해도 냉장고에 있으면 며칠은 괜찮다 라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상한 과일이나 음식을 냉장고에서 바로바로 꺼내며 한숨쉬는 남편. 서로 위생에 대해 생각하는 항목과 범위가 다르지만 그러니까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는거겠지? 역시 그래서 부부인가보다. 매 순간 갈등만 일으키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맞춰가며 살아야겠다. 남편도 그래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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