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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Jun 11. 2020

내가 된장찌개를 끓이지 않는 이유

언젠간 다시 끓일 수 있을까

한국인의 밥상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된장찌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엄마는 비빔밥에 곁들일때 말고는 된장찌개를 하지 않아서 나는 갓 지은 쌀밥에 된장찌개를 놓고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먹는 식사에 약간 로망 같은게 있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내가 직접 요리를 하게 되었으니 된장찌개를 어서 끓여보고 싶은건 당연지사! 레시피를 보니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아서 신혼 초에 냉큼 시댁에서 된장을 얻어와 찌개를 끓였다. 남편도 시댁에 가면 된장찌개를 바닥까지 박박 긁어먹는 사람이니 내가 같은 된장으로 똑같이 끓여주면 되겠다 싶어 기뻤다. 된장찌개 별거 없지 않은가? 된장이 같으니 같은 맛이 날거라고 생각했다.


기쁜 마음으로 찌개를 끓여 밥상에 내놨지만, 남편은 왠지 시큰둥 했다. 맛있다고는 말하면서 숟가락은 잘 대지 않는 것이었다. 시댁에서는 분명 밥 위에 찌개를 붓다시피 얹어 후루룩 먹던 남편인데, 왜 깨작거리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기분이 상한 나는 물었다. 같은 재료에 어머님이랑 똑같이 끓였는데 맛이 없는거냐고. 그러자 돌아온 남편의 대답.

"요리는 정성이야."

뭐라고? 지금 내가 한 요리가 정성이 없다는 뜻인가? 난 발끈해서 물었다.

"무슨소리야? 내가 요리에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는거야? 나도 자기가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요리했어!!!"

"아니 네 마음이 정성이 없다는게 아니라, 요리는 시간을 들여서 정성을 다 해야 한다고."

그 말은 즉, 퇴근하고 부랴부랴 옷만 갈아입고 후다닥 끓여서는 깊은 맛이 안난다는 뜻이었다. 남편은 표현을 저렇게 해서 꼭 오해를 사는 편이지만, 여튼 요는 그랬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어머님은 얼마나 오랜 정성을 들이길래 맛이 다른걸까? 그때부터 두 집의 찌개맛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우선 어머님의 된장찌개는 깜짝 놀랄만큼 짜다. 그것 말고는 특별한게 없다. 들어가는 재료도 양파 두부 파 정도. 나는 코웃음을 쳤다. 짜기만 한 된장이 뭐가 맛있담?

남편이 또 좋아라 하고 먹는 작은집(작은아버지 집으로, 아버님과 우애가 좋으며 남편이 상경하였을 때 같이 살다시피 해서 왕래가 잦다) 된장찌개 역시 짜고 맵다.

그렇다면 나도 짜게 만들면 되는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집은 대대로 고혈압 집안이어서 엄마가 음식의 간을 엄격하게 제한해왔기 때문이다. 아빠가 특히 짠 음식을 보면 엄마를 심하게 질책했다. 고혈압 환자에게 이렇게 짠 음식은 먹고 죽으라는 뜻이라며 손도 대지 않았는데, 말이 너무 심하다 생각되면서도 은연중에 짠 음식은 건강에 아주 나쁜, 유해한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았던 것 같다.

반면 시댁은 두분 다 당뇨가 있음에도 아랑곳않고 음식이 짜다. 당뇨도 엄격한 식단관리가 필요한데, 평소 시아버지는 죽을때 죽더라도 맛있는거 먹고 죽을란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며 아무거나 드신다. 우리아빠랑 비교하면 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생각없는 발언인가 싶어 속으로 흉을 봤다. 두 집안의 음식문화 차이는 신혼초의 크고작은 남편과의 트러블과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더욱 더 시댁에 대한 반감을 갖게 했더랬다.


그래도 그 된장찌개의 비결이 궁금해 어머님께 여쭤봤다. 그랬더니 세상에, 육수만 2~3시간을 끓이신다는게 아닌가. 나처럼 멸치만 넣는게 아니고 황태 머리랑 디포리 등등을 넣고 두세시간을 푹 고아낸 육수에 된장을 풀고 또 오랫동안 끓이신단다. 채소는 양파 홍고추 청고추 두부 대파가 전부인데, 채소가 하나같이 정갈하고 특히 두부는 시장 손두부를 넣으셔서 그 단단하기와 고소함이 시판 두부에 비할게 아니었다. 게다가 된장찌개는 고유의 맛으로 먹어야 한다는 아버님의 지론에 따라 절대 차돌박이나 바지락, 우렁 같은게 들어가지 않고 봄철에만 냉이나 달래가 들어갈 뿐, 항상 같은 맛을 유지하신다.

작은집 된장찌개 역시 멸치, 보리새우,무,양파,건표고 등등을 넣고 두어시간을 푹 고아 육수를 만든 뒤, 된장(큰집에서 얻어오신거라 두 집이 같은된장이다)을 풀고 작은집의 별미인 고추지를 넣는다. 이걸 넣으면 찌개가 아주 매콤칼칼해지는데, 자다가도 생각날만큼 개운하고 별미다. 작은집은 된장찌개에 변주를 많이 주는 편인데, 꽃게다리, 바지락, 우렁 등등을 이용해 다양한 된장찌개를 만드신다.


이쯤되면 내가 30분안에 후딱 끓여내는 된장찌개가 손이 안 갈 법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퇴근하고 와서 두세시간을 찌개만 끓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뒤로 열심히 나도 이것저것 넣어보고 노력을 해봤으나 결코 그 두 집의 맛을 따라갈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요리전문가도 아니고, 내 입에는 내 된장찌개도 먹을만 한데, 남편 입맛에 꼭 맞추기 위해 계속 피나는 노력을 할 만큼 절실하거나 필요하지도 않으므로 자연스레 된장찌개 만들기와는 손절하고 말았다. 먹고싶을땐 시댁이나 작은집 가서 먹지 뭐.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아이도 나중에 '엄마표 된장찌개' 라며 그리워 할 음식을 해줘야하는데, 비록 지 마누라한테는 등짝을 맞을지언정 '우리엄마 음식은 정성이야' 라는 말을 할 만큼 깊은맛의 정성스런 찌개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 요리따위 못하면 어때 하며 살다가도 문득 정성스런 손맛을 가진 엄마가 되고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다시 재료를 부여잡고 고군분투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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