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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ep 24. 2020

엄마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아?

유치하지만 상처받는중

얼마 전, 거실에서 남편이 시댁과 영상통화를 하며 아이와 조잘대는 소리가 들리길래, 추레하게 입은 나는 행여 화면에 잡힐까 방에 들어와 조용히 쉬고 있었다.

영상으로나마 가끔 만나는 시부모님은 손주의 재롱에 이것저것 물으며 재미있어 하셨고, 문득 시어머니가

"우리♡♡이는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하고 물으시는거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빠가 더 좋아!" 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건 정말 고민을 하거나 눈치를 보는거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말한게 아닌가. 충격을 먹는 나는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후다닥 방에서 나왔다.

"너,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하고 묻자, 아이는 그제서야 내 얼굴을 보고 배시시 웃으며

"엄마 아빠 다~ 좋아!!" 라고 하는거다.

이후로 간간히 무방비 상태일때마다 툭툭 물어 자연스러운 대답을 유도했건만, 아이는 항상 눈치를 채고 엄마아빠 다 좋다는 전형적인 대답만 할 뿐이었다.


아이에게 이런 질문 하면 안되는거 안다. 아는데, 아빠가 더 좋다는 말을 들으니까 왜이렇게 서운한건지, 자꾸 또 물어보게 된다.

사실 아이는 돌 전까지 유독 아빠손을 탔다. 산후조리를 해야하는 나를 위해 아이가 울 때마다 남편이 안아올렸고, 그즈음에 남편이 공부를 하느라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서 아이를 함께 돌보긴 했다. 게다가 난 아이가 조금 울더라도 스스로 다독이게 하는 편이라면, 남편은 애가 앵~ 하기만 하면 바로바로 달려가 안아주고 둥가둥가, 발에 먼지 묻을 새도 없이 안고 끼고 세상 귀하게 키웠다. 아기때는 아빠품이 더 단단하고 안정감 있어 아가들이 더 좋아한다는 말도 있긴 했지만, 때론 울다가도 남편 품에서만 뚝 그치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엄만데, 왜 내 품보다 남편품을 더 좋아하는건가 서운함과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어떨때는 애가 울면 남편보다 더 빨리 달려가려고 전속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내가 안아들면 뒤늦게 달려온 남편은 내 속도 모르고, 무거운데 이리 달라며  아이를 데려가곤 했다. 내가 먼저 애착을 쌓을거야! 라고 말하기도 유치하지 않은가. 그저 나 혼자 때아닌 모성앓이를 했던 거 같다.


돌 지날 무렵 남편은 구직 후 사회생활을 재개하면서 다시 아이와 나랑 둘이서 밀착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아이는 나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자다가도 나를 더 찾고, 울면 나를 찾고 하는 등 여느 가정과 다를바없는 모자 사이가 되었다. 나도 복직한 후에는 퇴근이 비교적 이르고 일정한 내가 더 많이 돌보게 되었지만, 그만큼 애와 투닥거릴 일도 많아졌다. 남편은 늦게 들어와서 잠깐 보니까 항상 아이를 이뻐하기만 하고, 주말에는 남편이 주로 돌보긴 해도 워낙 아이에 대한 허용범위가 넓은데다 둘이서 뛰고 씽씽이타고 물총놀이하고 몸으로 놀면서 아주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아이는 아빠 어깨에 올라타서 깔깔대며 장난을 쳐도 허허거리기만 하는 아빠인데다 하루에 세번씩 아이스크림을 조를때마다 척척 내주는 아빠이니 어찌 안좋을 수가 있겠는가.


이제 훈육이 필요한 나이이므로 나는 적절한 훈육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남편은 훈육을 하려다가도 그 어린 눈망울을 보면 가슴이 미어지나보다. 애가 심하게 장난을 쳐도 야단을 한번 못치고 그저 어르고 달래고, 어쩌다 큰소리를 쳐도 바로 헤헤거리며 다정하니 아이는 그저 아빠가 장난치는줄로만 안다. 오은영쌤이 절대 그러면 안된다 하셨는데, 어쩌려고 저러는지 도통 모르겠다. 다른집은 아들은 아빠가 휘어잡는다던데 우리집은 전혀 그게 안된다. 그나마 나 혼자 악역을 자처하며 혼낼땐 호되게 혼내지만, 울면서 아빠품으로 달려가버리곤 하니 나도 허무하다. 남편한테 매번 그러지말라고, 좀 단호하게 혼내라고 해도 알겠다고만 하고 늘 똑같다.


그래서 그런가, 아이가 아빠가 더 좋다고 하는 이유가. 한없이 받아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더 좋겠지. 그래도 엄마라는 끈끈한 애착이 있을줄 알았는데, 나도 이제 무턱대고 사랑만 줘야하나, 또 자아가 마구 흔들린다.

안된다는거 알지만, 훈육은 아주 중요하고 때에 맞게 적절한 반응을 줘야하는거 알지만.... 도대체 서운함이 가시지를 않는다. 언제쯤 철이 들까 나는.


그래도 잠결에 내 곁으로 와서 내 손에 얼굴을 파묻어야 잠에 들고, 눈뜨면 날 찾아 도도도 뛰어오고, 기분이 안좋을땐 내 팔에 매달려 위로를 받으려하는 아이를 보면, 분명 날 사랑하고 있다는 뜻인데... 무의미한 비교 따위 할 시간에 더욱 많은 교감을 해야겠지. 엄마 아빠 중에 누굴 더 좋아하는지가 대수인가!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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