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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Feb 14. 2021

모유수유 3대 굴욕

쿨한 엄마가 되는건 어렵다.

첫째를 낳고 나니 이상하게 부러운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둘째를 키우는 엄마"였는데, 전전긍긍하며 키우는 초보맘과 달리 두번째 육아여서 능숙하고 쿨한, 경력자의 여유가 너무 부러웠었다. 그래서 둘째를 언능 낳아서 나도 여유롭게, 아기 예쁜것만 맘껏 즐기며 발로 하는 능숙한 육아를 하고싶었다.


그러던 내가 드디어 둘째를 낳았다! 초산과 달리 출산도 훨씬 수월했고 신생아 안는 자세도 첫애때처럼 쩔쩔매지 않았다. 그래그래, 내가 원하던게 이거였어! 나도 이제 능숙한 엄마가 되었구나! 하면서 기뻐했다. 자 그럼 다음관문인 모유수유는? 이것 또한 부러웠던 쿨한 부모상이 있었는데, "안되면 분유먹이지뭐~ 요즘 분유 잘나오니까!" 였다. 첫애때 기를 쓰고 모유를 먹이던게 너무 힘들었어서, 이번에는 모유수유가 잘 안되면 쿨하게 분유를 먹이리라 다짐을 했다. 그런데... 아기를 키운다는건 그게 몇회차든 장담하기가 어렵다는걸 왜 몰랐을까?


첫째는 37주1일에 태어났다.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자궁문이 열려있고 주기적인 수축이 있다며 당장 짐싸서 입원하라는 말에 얼떨결에 입원했으나 촉진제를 맞아도 진행이 되지 않아 결국 양수를 일부러 터뜨려서 낳았다. 정상분만 범위지만 만삭출산보다 3주 일찍 태어난 아가는 체중도 적고 힘도 없었다. 아기는 막달에 쑥쑥 큰다던데, 그러기 전에 태어났으니 오죽했을까. 작고 일찍 태어난 아가라서 젖을 빠는 힘이 없었다. 수유실 가보면 머리숱도 수북하고 덩치도 꽤 큰 아가들을 가슴팍에 끼고 '아기가 30분째 빨아요~힘들어요~' 하는 엄마들이 있었는데 너무 부러웠다. 나는 잠만 자고 있는 아기 입술을 벌려 유두를 끼워넣고 있을 뿐, 수유라고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작게 태어난 아기에게 더 잘 온다는 황달마저 생겨서, 아이를 치료실에 보내고 내 모유는 유축을 하기 시작했다. 치료가 끝난 후에도 모유가 황달을 더 오르게 한다는 말에 직수를 하지 못하고 유축만 주구장창 했다. 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 거의 유축만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조리원에서 시키는대로 시간을 지켜 유축을 열심히, 자다말고 새벽에도 시간맞춰 일어나 유축을 하다보니 모유양이 쭉쭉 늘었던 거 같다. 조리원 퇴소할때쯤에는 아기도 꽤 커서 빠는 힘이 생겼고, 모유양도 넉넉하니 완모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조리원에서부터 '참젖이다', '양이 많다' 이런 칭찬을 들어온데다 모유만 먹는 아기가 몸무게도 잘 늘고 쑥쑥 커가니 너무 기뻤다. 부끄러울만큼 왜소한 내 가슴이 이제야 제 기능을 발휘하는구나 싶어 괜시리 당당해졌다. 하지만 30분씩 걸리는 수유시간과 먹다 잠들기 일쑤인 아가를 깨워가며 먹이는것도 고행인데다, 유두에 상처도 자주 나고 유선염도 여러번 오고 해서 고생고생하며 6개월가량을 먹이다가 결국 단유를 했었다.


둘째도 37주6일에 양수가 터지면서 예정보다 일찍 태어났다. 형보다 며칠 더 자궁속에서 버텼지만 몸무게는 더 작았다. 불안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둘째도 황달이 오면서 치료를 받으러 병원행. 또 유축인생이 시작됐구나 싶었다. 첫째때도 철철 넘치던 모유, 역시나 둘째때도 그러려는지 가슴이 불어터지기 시작했다. 먹어줄 아기도 곁에 없는데 양만 넘치면 뭐하나 싶어 이번에는 유축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다. 조리원에서도 젖양이 너무 많으니 유축횟수를 줄이라 했고, 유축양도 많아서 냉동보관을 부탁하러 갈때마다 폭풍칭찬을 받았다.

약 5일간의 입원 후 드디어 둘째가 퇴원했다. 이 아가는 또 얼마나 빠는 힘이 없을까, 또 제대로 젖을 물리지도 못하고 유축을 이어가야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게 걸, 유두가 입에 닿자마자 옴팡지게 빨아먹는게 아닌가! 더이상 젖소같이 유축을 안해도 된다는 기쁨에 만세를 부르며 모든 수유콜을 받아내며 직수로 먹이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수유텀이 참 짧은거다. 내 가슴은 모유 부자인데 이게 무슨일이지 싶었지만 모유는 아가가 빠는 만큼 나온다길래 우선 수시로 젖을 물리자 싶어 열심히 물렸다. 그런데 수유텀은 늘어날 줄 모르고 아기는 계속계속 배고파했다. 아기를 굶길 수는 없으니 신생아실에 분유 보충을 부탁하자 의아해하는거다. '모유부자인 너가 왜?' 하는 시선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모유는 많은데 쉬고 싶은 척을 했더랬다. 방으로 돌아와 물이랑 두유를 하마처럼 마셔대고 밥도 많이먹고 휴식도 충분히 취했지만 모유양은 늘어나지 않았다. 급기야는 아기가 잠에서 깨는게 두렵고 원망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게 뭐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아기가 눈을 뜨는걸 왜 두려워해야하지? 그냥 분유를 먹이면 되지! 어차피 첫째도 돌봐야하는데 모유에 집착할거없이 분유로 키우자! 라고 쿨하게 결정하며 조리원을 퇴소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차츰 모유수유 횟수를 줄여가며 분유수유 양을 늘려갔다. 일주일정도 그렇게 먹인 뒤 단유마사지도 받고 왔는데 왠지 마음이 허전한거다. 어차피 완모하지 못할거 완분으로 가자 한거였는데, 혼합수유로 좀 더 모유를 먹여도 됐을걸. 아니다 아니다, 첫애도 돌봐야하는데 30분씩 걸리는 모유수유는 너무 힘들다, 잘 끊었다. 아니 근데 큰애는 어린이집을 다니니 사실상 낮에는 심심할 정도로 할일이 없지 않은가. 그럼 30분씩 수유해도 괜찮잖아? 이렇게 내 마음이 오락가락 하던 와중에 친정엄마는 애 면역력을 위해서 좀더 모유를 먹이지 왜 그리 일찍 끊냐며 아우성이셨고, 분유만 먹은 아이가 2,3일씩 변을 못보고 끙끙대는 모습이 안타까웠으며, 결정적으로 단유마사지를 돈주고 받았음에도 다시 차오르는 모유로 가슴이 아프자 내가 왜 이렇게 후회와 안타까움에 휩싸이면서 돈을 주고 모유를 끊어내야 하나 하는 현타가 온거다. 온갖 감정에 휩싸인 그날 밤, 나는 다시 아이를 끌어안고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단유 초기이긴 했어도 여튼 단유를 했으니 완모는 어려울 일이었다. 쿨하게 혼합수유로 가자 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모유양을 차츰 늘려가 완모까지 이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어차피 단유했었다가 다시 먹이는거니까 양은 별로 안돼. 그냥 애 변비 생길거같아서 먹이는거야~" 라고 쿨하게 말은 했지만, 직수 직후에 분유 보충을 하는데 아기가 먹는 분유양이 적길 바랬다. 분유를 많이 남기면 그만큼 내 젖을 많이 먹었다는 뜻이 될테니 내심 분유를 남겼으면 했지만, 아기는 어김없이 분유를 벌컥벌컥 먹어댔다. 그걸 본 친정엄마는 "네 젖양이 그렇게 부족하니?"라고 가슴에 비수가 되는 말을 꽂았더랬다. 한때는 모유부자였던 내 입장이 말도안되게 초라해지며 확인사살당하는 느낌이었다.

그 뿐인가. 아기가 모유를 다시 먹기 시작하면서 다행히도 변비는 없어졌지만, 이번에는 변을 지리는 횟수가 많아졌다. 모유먹는 아기 변이 원래 묽다지만 혼합수유를 하면서도 이렇게 잦을 수가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는 친정엄마의 촌철살인.

"너 물젖이니?"

한때는 참젖이라고 칭찬받았었는데... 참으로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젖양 부족과 물젖의 오명을 쓰고도 꾸역꾸역 혼합수유를 하는데, 대망의 가장 굴욕적인 순간이 왔다. 그건 바로 모유 거부.

알고있었다. 혼합수유를 하면 언젠가는 유두 혼동이 올거라는걸. 모유거부가 시작되면 이제 정말 쿨하게 단유를 할 생각이었다. 안먹는다는데 어째? 드디어 이 지리멸렬한 수유를 끊고 맥주나 실컷 마셔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목도 못가누는 아기가 모유 먹기 싫다고 고개를 이리빼고 저리빼고 혀를 내밀고 입술을 꾹 다물고 엉엉 울면서 내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온몸으로 거부하는데... 가슴이 미어지는거다. 이놈자식아, 모유가 그렇게도 싫은거냐, 모유가 몸에 좋다길래 난 널 한방울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것 뿐인데 어미 맘도 몰라주고.....


모유 수유 3대 굴욕 '젖양부족, 물젖, 모유거부'를 죄다 겪고도 여전히 쿨하게 수유를 끊지 못한다. 울고불고 해도 여전히 들이대는 엄마한테 체념한건지 어쩔때는 잘 먹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질질 끌면서 언제까지 먹일지 나도 알 수 없지만, 아이 앞에서 절대 쿨해질 수 없는 엄마라는거 하나는 깨달은 것 같다. 하긴, 자식을 향한 애틋한 마음은 몇회차가 되든 무뎌지지 않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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