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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Feb 12. 2020

돈이 엄청나게 많길 바라는건 아니다.

내 꿈은 그저 소박할 뿐

열심히 일한것 같은데 통장은 텅장이 되어있는걸 볼때마다 내가 뭐 엄청난 부를 바라는것도 아닌데, 그냥 작은 여유나 소박한 사치를 바랄 뿐인데 이마저도 왜이렇게 빠듯한가 슬픈 마음이 든다.


나는 무슨 캐비어나 송로버섯을 휘감은 요리를 먹고싶은게 아니다. 그저 기분 내고 싶을 때 호텔 뷔페나 요즘 핫하다는 랍스터 뷔페를 망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정도의 여유면 된다. 그런델 가기전에 장을 비우려고 화장실을 두번씩 간다거나 하는 그런 촌스러운 준비 없이, 방금 채워진 대게의 집게살을 선점하러 서둘러 출격하지 않는, 배가 터질것 같은데도 꾸역꾸역 케익에 아이스크림까지 밀어넣지 않는 사람이고 싶을 뿐이다.


요리실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면서 굳이 호주산 말고 한우 양지를 넣고 국을 끓였다가 망쳐버려서 우울해지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가족들이 잘 손을 대지 않아 그대로 남은 국 건더기를 버리며 '내가 지금 만원짜리를 버리고 있구나' 라는 자괴감과 더불어 '비싼건데 그냥 좀 먹지'라며 남편을 원망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나 체리를 한참 망설이다가 한팩 사오고는, 아이가 다 먹지 않고 조금 남겨줘서 내 몫도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아이가 체리씨를 엉성하게 발라먹고 뱉어버린걸 '주워서 먹어 말아?' 하는 고민을 하지 않고 나도 깨끗하고 예쁜 온전한 체리만 먹는 사람이고 싶다. '동물복지' '뭔가를 먹인' 등등의 딱지를 붙여서 아주 높은 가격의 달걀을 아무렇지않게 고르며 '음 좋은 환경에서 낳았으니 건강하겠군' 하고 장바구니에 담는 사람이고 싶다


온라인쇼핑몰을 둘러보면서 8~9만원대의 원피스를 척척 장바구니에 담는 사람이고 싶다. 예쁘다 싶어도 가격대가 8~9만원씩이나 하면 우선 제끼고 다시 이잡듯이 뒤져서 3~4만원대의 원피스들을 담아놓고, 다시 그중에서 심사숙고 해서 사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지금 결제하지 않으면 주말 끼고 택배가 늦게오니까 또 다음주에 입을 옷이 없어 안그래도 늦은 월요일 아침부터 장롱문 열어놓고 짜증내지 않는, 옷장에 예쁜 새옷을 여러벌 쟁여놓은 사람이고 싶다.


회사 동료들에게 밥을 사는데, 얘도 데려가자며 추가로 다른사람을 불쑥 데려와도 음식값의 총액을 재빠르게 가늠해보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한그릇 음식을 1인1메뉴씩 시키고 다같이 먹을만한 왕만두나 스프링롤도 넉넉하게 시켜주는 동료이고 싶다. 커피를 사는 날에는, 생과일주스가 먹고싶어도 꾹 참고 아메리카노를 고르고 있는데 그와중에 꼭 프라푸치노를 시키는 동료를 살짝 얄미워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서로 내겠다고 카드를 들이밀고 실랑이 하는 날에는, 저사람의 의지가 더 확고해서 내 허우적대는 팔을 모양새 좋게 거둬주기를 살짝 바라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조금 가격대가 나가는 바디 용품을 큰맘먹고 사지 않고 일상적으로 사는 사람이고 싶다. 딱 한개를 큰맘먹고 산 뒤 손님이 왔을때 내 바디용품을 잘 볼 수 있도록 거실 화장실에만 비치해두는 사람이 아니라, 나 혼자 쓰는 안방 화장실에도 놓아두고 쓰는 사람이고 싶다. 향기가 좋지만 비싼 바디로션을 외출 직전 노출이 되는 팔과 종아리에만 아껴바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전에도 온몸에 넉넉히 바르는 사람이고 싶다. 가장 좋은 샘플은 가족여행때는 안챙겨가고 아껴두었다가 친구들과 여행 갈때 버젓이 꺼내서 마치 일상적으로 쓰는 제품인 양 행세 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척척 사는 삶을 바라는건 아니다. 다만 백만원대 가방을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고 아울렛도 기웃거려보고 해외직구도 찾아보고 병행수입도 검색하고 면세점도 괜히 한번 가보고 실컷 고민하고 바라보고 갈망하다가 결국 포기하는 사람 말고, 그쯤 가격의 가방은 4~5년에 한번씩은 큰 망설임 없이 사는 사람이고 싶다. 남편이 꽃을 사오면 쓸데없이 돈낭비 했다는 생각이 앞서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기본 참치의 바로 윗단계 특참치에도 만족하던 남편이 한단계 더 위의 실장추천특참치를 먹고 싶다 할때 흔쾌히 그러자고 해주는 아내이고 싶다. 여유가 있는 친구 커플이 여행가자 할때 그들이 고른 숙소 가격을 보고 속으로는 '헉' 하면서 겉으로는 태연하게 '음 여기 좋긴 한데 좀 더 알아보자~'라며 말돌리지 않고 기분좋게 예약하는 사람이고 싶다.


쓰고보니 소박한 꿈이 아니네. 매사에 여유로우려면 엄청난 돈이 들테지. 소박하지도 않은 꿈 허황되게 자꾸 꿀 게 아니라 그냥 난 지금처럼 소소한 여유 -예를들면 취미로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 아이가 재밌게 씨리얼을 먹을 수 있도록 씨리얼 디스펜서를 사는 것, 빠방이에 푹 빠진 아이에게 고속도로 장난감을 통크게 사주는 것- 에 만족하며 살아야겠다. 가족과 함께라면 이정도도 나름 소소하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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