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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Apr 18. 2020

나의 자존감도둑, 엄마.2

이제는 내가 극복해야 할 때

엄마 몰래 휴직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편과 나는 자격증 공부를 하기로 하고 각각 퇴사, 휴직을 단행했다. 남편의 퇴사를 부모님께 알릴 자신이 없어서 몰래 하기도 했지만, 두번다시는 '무언가를 준비-엄마의 기대-실패-실망' 의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아서였다.

준비한 자격증은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지만 따기만 하면 전문직의 삶을 살 수 있는 자격증이었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유관 공직 생활을 오래 하면 자동으로 발급되는 자격증이어서 마침 공직에서 정년퇴임하신 아빠가 그 자격증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셨을 때였다. 아빠가 개업하기 전까진 잘 알지도 못했던 자격증이었는데, 기왕 공부하는거 이정도 자격증은 따야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은연중에 자식이든 사위든 이 자격증을 따서 대를 이어줬으면 하는 부모님의 의중을 눈치채기도 했었고.


휴직은 딱 1년 반이 가능했다. 그 안에 이 자격증을 따야 했다. 남편까지 호기롭게 퇴사시키고 시작한 공부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생전 처음 해보는 분야의 공부라 용어부터 생소하고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데다 책도 너무 두꺼워서 겁이 났다. 잘못 선택한건가, 그냥 잠자코 회사나 다닐걸 어쩌자고 퇴사를 시킨걸까, 시간만 낭비하느니 지금이라도 복직해서 돈을 벌어야 하나.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퇴사를 각오하고 시작한 공부를 이렇게 접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매진했다.

누가 등떠밀지 않고 나 스스로 시작한 공부 2탄이었다. 1탄이었던 토익이야 공부라기보단 기술이었으니 재미는 있어도 배움의 기쁨은 별로 없었는데 이 새로운 공부는 달랐다. 전혀 모르는 분야였으므로 새하얀 백지를 받아들고 차곡 차곡 새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시냇물이 바위를 뚫듯 조금씩 조금씩 하얗던 종이가 빼곡하게 적히고, 도식화 되고, 퍼즐이 맞춰지듯 들어맞아갈 때의 기쁨이란.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고 복습을 하고 문제를 풀고 고된 나날들이었지만 배움의 기쁨에 힘듦도 잊었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남편은 저 뒤에서 레이스를 포기해가고 있었다. 그를 추스릴 새가 없었다. 나라도 완주해야 했다. 그렇게 나 혼자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수석으로 합격했다.


남편이 시험에 응시도 못했으므로 둘 다 합격할때까지 부모님께 비밀로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수석합격을 하면 해당 업계에 종사하는 아버지가 모를 수가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합격자 발표날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그렇게까지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봤던 것 같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여서 기뻤다기보다, 드디어 부모님을 만족시켜드렸다는 성취감에 더욱 기뻤다.

합격 후 부모님이 그토록 바라던 손주까지 안겨드렸다. 더할나위없는 효도를 했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나에게 기대하거나 바라는게 없으실 거라고 생각했다. 난 할 수 있는 효도는 모두 했으므로.


그로부터 수년의 시간이 흐른, 최근의 일이다. 심심풀이로 뜨개질을 시작한 내가 엄마는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데 시간을 쓰니?"

"재밌던데? 그리고 나 안해본거 도전하는거 좋아해. 예전에 공부도 그래서 재밌어했던거잖아."

"그렇게 도전하고 싶으면 그 윗단계 자격증 따라. 그런 쓸데없는거 할 시간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미 이 자격증으로 만족하셨던 게 아닌가? 그렇게 소원성취한 표정으로 기쁨을 만끽하던 엄마는 어디간거지?

"지금 또 공부하라고? 육아까지 하고있는 마당에? 엄마는 왜이렇게 욕심이 끝도 없어?"

"그러게."


물론 엄마가 농담 반으로 던진 얘기다. 최근에 그 윗단계 자격증을 딴 아들을 둔 동료아주머니의 자식자랑을 들었던 것 같다. 억대연봉에 잘나간다고. 그만큼은 안되는 딸을 뒀으니 살짝 부러우셨나보다.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물어왔던 딸이니 이번에도 또 혹시 누가알아, 해보기라도 하면 어떨까 하는 진담 반이 섞여 있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시간도 없을 뿐더러, 더이상 모든 욕구를 차단하고 시간을 쥐어짜며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사랑하는 가족과 좋은 추억을 쌓으며 시간을 보내고싶다. 그 자격증이 필요하지도 않다.

나에게 필요없으므로 엄마가 뭐라 하건 신경안쓰면 된다. 근데 그게 그렇게 깨끗하게 되지 않아 며칠동안 마음을 끓였다. 여전히 나에게 기대하는게 있으시구나, 나는 그때 만족하신거로 내 역할이 끝난 줄 알았는데, 난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엄마를 만족시켜드릴 수 있는걸까.

엄마는 그냥 흘려서 한 말이고,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니라는걸 뻔히 안다. 그런 말을 했다는 것조차 이미 잊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걸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고 혼자 의미를 부여하고, 딸에게 영원히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쟁이 엄마로 만들고 있다. '엄마를 만족시켜야만 존재하는 나'로 내 역할을 설정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나는 엄마의 무수한 빈말에 갈대같이 흔들리고 우울해질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엄마의 지나친 기대에 마음고생을 했던 건 맞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 스스로 설 때가 됐다.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던 프레임을 왜 씌웠냐고 엄마한테 따질 게 아니라, 내가 걸어나와야 할 때다. 나는 앞으로도 엄마한테 상처를 꽤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며칠을 앓았고, 다음번엔 하루를 앓을 것이며, 그 다음엔 반나절, 두시간, 이렇게 천천히 극복할 것이다. 어느순간엔 아무렇지 않겠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니까. 그리고, 내 아이에게는 내가 절대 자존감도둑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 애의 교우관계, 학업, 진로탐색에 내 욕심을 투영하지 않고 그 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응원해주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엄마로부터 전전긍긍 할 시간에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될 노력을 가다듬는게 더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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