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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Jul 02. 2020

아침부터 모르는 여자와 싸웠다

공평한 힘의 논리

아침 출근길, 아이 등원을 시키고 회사를 가야하니 빠듯한 시간인데다 오늘따라 어린이집 생일파티가 있다 해서 선물이랑 답례품 등 짐까지 있는 날이었다. 서둘러 어린이집 앞 골목에 진입하는데 큰 트럭이 비상깜빡이를 켜고 정차해 있고, 어린이집 앞 정차하기 좋은 위치에는 다른차들이 이미 주차가 되어있는데다 야쿠르트아줌마 캐리어까지 복잡해서 내가 차를 정차할 곳이 없는것 아닌가. 할 수 없이 어린이집을 지나쳐 조금 더 위로 올라가서 길 한켠에 차를 세웠다. 시동을 끄고 내리려는데 마침 뒤에서 그 큰 트럭이 출발하기 시작하는게 사이드미러로 보였다. 혹시 좁을까 싶어 내 차 위치를 살피는데 또 마침 내 앞쪽 빌라 주차장에서 차 한대가 빠져나오려고 준비하는게 보이지 않는가. 더 앞으로 갔다가는 저 차가 한번에 빠져나오질 못할것 같아서 그냥 그 자리에서 비상깜빡이를 켜고 잠시 앉아있었다.

트럭이 다가왔고, 트럭은 하필 또 마침 골목에 튀어나와있는 화분을 피하느라 내쪽으로 너무 가까이 붙어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내리지도 못하고 사이드미러로 상황을 지켜보는데 트럭이 지나갈듯 못지나갈듯 하더니 결국 포기하고 빵 하고 클랙션을 누르는거였다. 그래서 나는 할수없이 다시 시동을 켜고 조금 더 앞으로 옆으로 바짝 붙여서 차를 댔다. 그제서야 트럭은 무사히 지나갔고, 다시 시동을 끄고 내리려는데 앞에 그 주차장에서 나오려던 차가 내 차 때문에 한번에 돌지 못하고 멈춰선 상태였다.

거기서 내가 차를 뒤로 뺴줘서 그 차가 한번에 돌 수 있게 도와줬어도 좋을 일이다. 그리고 나 때문에 트럭이 못지나가서 답답했을 그 차 심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나도 정차해서 아이를 내려야 하는 입장이고, 시간이 여유로운 편도 아니었고 이미 시동을 끈 터라 그 차가 한번 후진해서 지나가주기를 바라며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바로 상대방 차 운전석에서 고함이 쏟아졌다. 40대 중후반쯤 되어보이는 여자였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에게 소리를 쳤다.

"차를 그렇게 대시면 어떻게 해요!"

여기까지는 나때문에 한번에 돌지 못한게 화가 나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말투가 너무 신경질적이고 짜증스러워서 나도 좋은 말투로 말이 나가질 않았다.

"후진 한번 해서 나가세요."

이렇게 말하고 애를 꺼내려고 뒷좌석으로 가는데 더 큰 고함을 치는것 아닌가.

"아니 트럭이 지나가야하는데 서서 뭐한거에요? 앞으로 갔어야죠!"

나도 가고싶었다. 그러나 더 앞으로 가면 또 다른 주차된 차들이 있어서 골목을 그냥 넘어가야 하는 위치였다. 골목을 넘어가면 다시 동네 한바퀴를 돌아서 어린이집 쪽으로 진입해야하는데 그러다보면 난 회사에 지각을 할 터였다. 조금 원활하지 못한 교통 흐름이었긴 해도 주택가 골목길인데다 트럭도 나도 각자의 볼일떄문에 잠시 정차하고 서로를 방해하는 사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트럭이 못가도록 내가 뻗대고 버틴것도 아니고 못가겠다는 신호를 보내오자 바로 차를 빼준거고, 트럭은 아무말없이 잘 지나갔는데 제3자가 그 상황에 대해 운전 훈수를 두는게 화가 났다. 본인도 자기가 바쁘니까 좀 기다려주거나 후진할 여유가 없었던거 아닌가. 애를 안고 짐을 이고지고 내리는 사람을 위해 1,2초 손해보는게 그렇게도 아침부터 짜증낼 일인가 싶었다.

"저도 여기서 내려야 해서 그랬어요. 바쁘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애를 안고 짐을 챙겨 가려는데 다짜고짜 쌍욕이 날아들었다.

"뭐야 완전 XXX이네! 아침부터 몰상식하게 @#$@$#!!"

황당했지만 나도 짜증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럼 뭐,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를 했어야 했나. 너를 답답하게 한 죄로 석고대죄라도 해줘야 하나? 그래서 나도 지지않고 같은 말투로 한번 쏴고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계속 쌍욕과 고함이 들려오더니 차가 붕 하고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어린이집 앞에 정차해서 조수석 창문을 열고 욕을 마저 하는게 아닌가.

"애 앞에서 창피하지도 않냐 이 XXX아!!!!!"

나도 열심히 맞받아쳤다.

"애 앞이니까 그만하고 가라고 이 XXX아!!!!"

아침부터 어린이집 앞에서 소란을 피워 부끄러웠지만 그렇게 두 여자는 서로를 향해 씩씩댔다. 그리고 차는 떠나버렸고 나는 아무렇지않게 어린이집에 아이를 내려놓는데 아이가 울먹거리는게 아닌가. 엄마의 못볼꼴을 보여줘서 너무 미안해 한참을 사과하고 안심시켜준 뒤 돌아서 나왔다.


회사로 향하는 길에 한참 생각을 했다. 운전을 하다보면 크고 작게 트러블이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운전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면?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키 187센티미터에 건장한 남자였으면 그 운전자가 그렇게 화를 내고 훈수를 뒀을까? 반대로 내가 내렸는데 나를 향해 화를 내는 운전자가 남자였다면, 내가 그렇게 사과 한마디 없이 지지않고 맞서 욕을 했을까? 그분이 어떤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서 대응행동이 참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 운전자들이 핑크색 경차를 절대 사지 않는다 다짐하고, 어두운 색의 SUV차량이나 세단이 지나가면 남자 운전자 같아서 경적을 울릴 일도 조금 참고 그런 일이 흔한거 보면 말이다.

나랑 남편은 운전하다가 방해되는 차가 있으면 조금 기다리고, 멈춰주고, 끼워주고 하는 편인데 안그런 운전자들도 많아서, 우리가 조금 머뭇거릴때 가차없이 뒤에서 빵빵 거릴 때가 있다. 짜증날정도로 뒷차가 신경질을 부릴 때면 남편은 차에서 내리고 싶어한다. 저 운전자가 자기 덩치를 보면 저렇게 빵빵거리지 못할거라는 판단에서다.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마구 화를 내거나, 얼굴 보면 화를 못낼거라고 생각하는 저 당당함이나 둘다 참 못났다. 상대방이 여성이건 남성이건, 자기보다 힘이 세게 생겼건 약하게 생겼건 그런거에 구애받지 않고 정확한 상황판단과 사리분별만 있으면 안되는건가. 하지만 일명 "환불 화장" 이라는 말도 있듯이, 같은 동성끼리도 서로 약해보이는 사람을 짓누르는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그 운전자나 나나 서로 비슷한 수준이니까 싸운거다. 만약 상대 운전자가 제시나 이효리처럼 완전 센캐 였으면 이렇게까지 욕이 난무하지 않았을거다.


사람도 동물이라 약육강식의 논리가 정확하다. 덩치가 큰 남편이 안전벨트를 풀고 나가려고 할때마다 내가 말린다.

"저 사람이 마동석 같은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래?"

물론 그 말 때문은 아니겠지만 남편은 더이상 벨트를 만지지 않고 그냥 간다. 그리고 난 늘 놀린다.


동물의 본능이긴 해도 조금 더 노력하고 성찰해서 약한자든 강한자든 서로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그렇게 노력할 수 있는게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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