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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ep 27. 2022

명품 가방이 뭐라고

명품에 대한 두가지 시선

둘째를 어느정도 키워놓고 나니 이제 일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시기가 왔다. 사실 두돌정도까지는 직접 키우고 싶었으나 첫째때도 그랬듯이 18개월 전후로 해서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막상 적응을 잘 하고나면 노느니 일해서 돈이라도 버는게 낫겠다 하는 의사결정을 하게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런 결론을 내렸고, 이번엔 회사로 복직을 하지 않고 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직장으로의 출근일이 정해지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들고 다닐 가방이 없다.'였다. 새로운 직무에 대한 연구고 준비고 나발이고, 일단 뭘 들고나갈게 있어야 출근을 할 거 아닌가. 그동안 다니던 회사는 캐주얼복장이어서 가방도 거의 에코백이나 들고다녔고, 그마저도 차를 갖고 다니느라 반지갑에 차키를 넣고 다니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지하철로 출근을 하며 무려 뱅뱅사거리를 지나다녀야 하는데, 나혼자 후줄근할수는 없지않겠는가.(번화가로 출근해본적 없는 자의 기대에 찬 로망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출근 준비를 하러 백화점으로 향했다. 집에서 애만 키우느라 잘 아는건 없지만 요즘 가방이 많이 비싸다는 것, 유명한 브랜드는 매장 입장하는것조차 어렵다는것 정도는 알고있었다. 그리고 가방을 살 예산도 사실 내 기준에선 200만원 미만이면 딱 좋겠지만 그 돈으로는 살 수 있는 가방이 없다는것쯤은 알고있으므로, 통 크게 한 400만원 정도면 고민없이 사야지, 하는 마음으로 갔다.

 

애들을 다 등원시켜놓고 남편과 함께 가장 한가할 것 같은 백화점으로 갔다. 오픈런까지 할만큼 인기많은 브랜드는 아니지만 적당히 이미지 좋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선택했다. 입장 순서가 되서 매장에 들어가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역시나 내 예상대로 가격이 적당하면서 무난하고 예뻤다. 여기까진 좋아, 계획대로다!하며 조금 더 둘러보는데, 한쪽 벽면에 눈에 딱 들어오는 아주 예쁜 가방이 있는거였다. 오 딱 저거다! 싶은게, 직접 들어보니 아주 고급스럽고 크기도 적당하며 새출발하는 나에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가방 예쁘다고 칭찬하며 마음에 들면 사라고 했다. 흡족하게 웃으며 당장 사겠다는 표정으로 점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이게 딱이네요. 이거 얼마죠?"

"네. 900만원입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900만원이라니....? 저 입구에서 본 것들은 대충 300만원대였는데, 갑자기 가격이 이렇게 뛰다니? 같은 브랜드에서 이럴수가 있는가...?


"아...네.. 그럼 이 작은사이즈는 얼마인가요? 생각해보니 이건 좀 클것같네요."

"네, 이건 830만원입니다."


남편을 쳐다보니 완전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으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살건 아니지? 하는 표정으로.


조용히 가방을 내려두고 매장을 나왔다. 돈이 없고 아깝고를 떠나서 가방에 그렇게 큰 돈을 써야하는가가 의문으로 다가왔다. 그래봤자 짐을 넣는 가방 아닌가? 이게 땅도 아니고 건물도 아니고 (아 물론 가방으로 재테크를 하는 시대지만, 난 그렇게 투자자산처럼 여길 게 아니었으므로) 오로지 희소가치를 위해 천정부지로 가격을 올리는 명품회사의 비위를 기꺼이 맞춰주며 호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이후 이상하게도 가방에 대한 욕구가 딱 사라졌다. 그냥 뭔가 그런 명품의 가격구조에 혐오가 들었달까. 물건만 담을 수 있는 튼튼하고 깔끔한 가방이나 하나 사서 들어야지 하고 생각하던 중, 길을 걷다가 우연히 '가죽공방'이라고 써져있는 입간판이 보였다. 그래 바로 저거야!! 좋은 가죽으로 만들면 그게 수제명품가방이지! 그리고 직접 만든다는 의미도 있고, 평소 가죽공예도 해보고싶었는데, 완전 안성맞춤의 기회가 아닌가! 망설임의 여지도 없이 가죽공방에 전화를 걸어 수강일자를 정하고 예약금을 보내고 일사천리로 진행을 했다.


수강 첫날, 공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딘 것 처럼 설렜다. 생전 처음 해보는 공예인데다,  노력으로 예쁜 가방도 탄생한다니 너무 신기하고 기대가 됐다. 작업은 패턴을 그리고 커터칼로 자르는것부터 모두 직접 했는데, 공방 선생님이 패턴 종이가 낭비되지 않도록 요리조리 그려주시고, 자를때도 패턴이 버려지지 않도록 자꾸 주의를 주셨다. 그래, 이것도 공방에게는 다 돈인데 내 똥손으로 패턴종이를 낭비할 수 없지. 그러나 문제는 가죽 재단이었다. 가죽이야말로 패턴종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비싼 원재료가 아니겠는가. 똥손인 내가 아무렇게나 죽죽 긋다가 가죽을 못쓰게 만들어버리면 선생님이 속으로 얼마나 날 원망하겠는가. 잔뜩 긴장한 채로 가죽 원단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죽은 의외로 너무 부드럽고 촉감이 좋았으며 술술 잘 잘려나갔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신나게 자르기 시작했는데, 아뿔싸! 방심한 사이 커터칼을 잡은 손의 힘이 어긋나면서 눈깜짝할새에 가죽을 자르기 위해 자를 대고 누르고 있던 내 왼손 두번째 손가락을 죽 긋고 말았다.


칼이 지나간 강도를 내 오른손이 잘 알고 있으므로 단순히 후시딘으로 아물 상처는 아니라는걸 긋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피가 차오르는데 그와중에도 가죽에 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손을 치켜들고 뒤로 물러서니 바닥에 피가 뚝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방쌤도 놀라서 일단 밴드로 꽉 둘러 피가 줄줄 흐르는걸 막고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밴드를 풀자마자 다시 피가 줄줄 흘러 의사도 당황하며 급하게 마취주사를 놓고 꿰맸다. 붕대를 칭칭 감아놓았고 중간중간 소독을 하며 2주 뒤에 실밥을 풀자 하셨다. 칼에 다쳤으니 파상풍 주사도 한대 맞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제서야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가방을 그냥 살걸 뭣하러 만들겠다고 이 야단을 피웠나, 칼을 조금 조심해서 쓸걸, 아니 그것보다 칼로 이렇게 다칠 수 있다는걸 공방에서 알려줬어야 하는거 아닌가, 아니면 손가락 골무라도 끼워주던가. 그렇지만 마흔이 다 되어가는 성인에게 칼은 위험하다고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따질 수도 없는거 아닌가. 6세 아들에게 하듯이 자를때마다 "어어어 조심조심!! 칼은 위험해요~" 해주셨어야 내가 정신차리고 주의했을텐데, 설마 그렇게까지 어리숙한 사람인 줄 모르셨겠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일단 공방에서 내 손가락을 자른것도 아니고 내가 실수해서 다친거니 누구 탓을 할 수 없었다. 공방에서는 도의적 책임으로 병원비를 내주었고 나는 말없이 손가락을 부여잡고 기약없는 다음 수업을 약속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바가지 듣고, 애들 돌보는것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고, 샤워할때는 비닐장갑 끼고 자유의 여신상처럼 팔을 쳐들고 씻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잠들때 엄마 손가락을 조물거려야 잠드는 둘째에게 왼손을 내어줄 수 없어 몸을 돌려 오른손을 쥐어줘야하고, 그렇게 내 등 뒤에서 덩그러니 혼자 잠들어야 하는 첫째가 안쓰러웠다. 생각할수록 손을 다친게 어처구니 없고 짜증이 났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명품가방은 900만원에 팔 만 하구나 라는것을. 장인들도 수없이 손을 다치고 힘들게 한땀한땀 만드는 것 아닌가. 아무리 숙련되었다 하더라도 날카로운 칼은 언제든지 위협적일 수 있다. 공방쌤도 자주 다쳐서 파상풍 주사를 주기적으로 예방주사처럼 맞는다 했다. 장인들도 때론 다치고 일손을 놓고 아이들도 맘껏 못 만지겠지. 누군가의 손가락의 댓가가 900만원이라면 비싼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결론을 낸 나를 남편은 못마땅해했지만, 여튼 내 손으로 만드는 수제 명품가방은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이므로 그냥 가방을 샀다. 물론 900만원보다 한참 저렴한걸로. 가방을 만드신 장인의 거칠어진 손을 상상해보며 감사한 마음으로 들고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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