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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Mar 23. 2024

초등학생의 마법같은 진화

내가 모르는새에 또 훌쩍 커버린 아이

천방지축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첫째가 드디어 초등학생이 되었다.

보통의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를 정도로 활발하고 장난기가 넘쳐서 간혹 어떤 질환이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활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유치원에서도 상담주간만 되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우리 애는 말썽을 많이 피우지 않나요?" 류의 질문들을 송구한 표정으로 여쭤보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선생님들은 아주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겉으로는 와 다행이네요~ 라고 웃지만 속으로는 '쟤가?' 라는 의구심을 품었었다.


그런 아이가 어느덧 자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게 되자 불안감이 물씬 몰려왔다.

내가 아는 우리 아이는 아주 작은 것에도 흥미를 느껴 주의를 확 옮겨가기 일쑤였고, 그래서 가장 큰 걱정은 과연 수업에 잘 집중할 수 있는가와, 해야할 일이 있어도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발견하면 휙 돌아서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방과후수업을 가는 길에 운동장의 놀이터가 보이면, 교실로 가지 않고 휙 놀이터로 나가버리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서 하루는 초등학교 교사인 사촌동생에게 물어봤다.


"초등학생 중에 학교에서 길 잃어버리는 아이도 있어?"

"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혹시 있으면 교내방송을 해줘? 몇학년 몇반 누구 교실로 오세요 같은거"

"아니 ㅋㅋㅋ 방송 하기 전에 금방 찾지. 다른반에 가 있거나 하면 그 반 담임이 원래반으로 보내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사촌동생은 별 이상한 질문을 다 한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난 여전히 그런것들이 심히 걱정이 되었다.


드디어 입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는 그래도 무난하게 생활을 하는 느낌이었다.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무섭다, 방과후교실 찾아가는게 무섭다 했지만 그래도 화장실도 잘 가고 옆반 가서 놀다오기도 하고 급식먹고 양치도 잘 하고 물건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챙겨다녔다. 학교 생활도 재미있어 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즐거워했다.


오히려 적응 못하고 허둥지둥하는건 나였다. 두 아이가 다 새롭게 학교와 유치원에 입학하는 바람에 다 달라진 등하원시간과 동선, 변경된 학원스케줄과 셔틀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했고,  두 아이의 적응을 도우며 학기초 준비물도 제각각 챙기느라 정신이 혼미했다.

그 중의 백미는 하교시간인데,  4교시 5교시 방과후수업이 제각각 돌아가니 요일마다 나오는 시간이 다 달랐다. 차라리 몇시이건 정각에 맞춰주면 덜 헷갈릴텐데 어느날은 12시 50분, 어느날은 1시 40분, 4교시에 방과후를 하면 2시 20분, 5교시에 방과후를 하면 3시 10분 이런식이니 정확히 몇분에 나오는지가 주구장창 헷갈렸다. 결국 도저히 외우지 못해 엑셀에 표로 정리해서 캡쳐해서 저장했지만, 그마저도 매일 시시각각 열어보며 오늘은 몇시 몇분까지 교문으로 가야하는지 숙지해야 했다.


그리고 대망의 학부모 참여수업 날이 다가왔다. 드디어 우리 아이가 수업시간에 어떻게 하는지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예전에 어떤 분은 참여수업 날 교실에 들어갔는데, 아이가 몸을 아예 뒤로 돌리고 앉아 내내 뒷자리 아이와 장난을 치는 바람에 엄청 민망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서, 나도 오늘 그 꼴을 보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는 바른 자세로 얌전히 앉아 선생님의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질문에는 열심히 손을 들며 자기의 생각을 똘망똘망하게 말했다. 한 사람씩 앞에 나와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선물을 발표하는 시간에는, 평소 개그욕심이 충만하고 주목받는걸 좋아하는 아이라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거나 장난을 쳐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할까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양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긴장을 잔뜩 하며 발표를 소심하게 마쳤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특히, "부모님께 힘이 되는 말" 을 해보라는 질문에는, 예시로 나왔던 엄마 사랑해요, 화이팅, 엄마아빠 멋져요 등등을 반복하며 발표하는 아이들 틈에서, 손을 번쩍 들고는,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어!"

라고 큰 소리로 멋지게 외쳐서 주변 학부모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안그래도 응원이 필요한 요즘의 나에게, 정말 힘이되는 말이었다. 짜식, 엄마 감동했다!


내 예상과 다르게 아이는 너무나도 잘 적응하고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있었다. 물론 이 모든것은 아이들을 잘 통솔하는 담임선생님 덕분이다.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아이들을 올바르게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건, 1학년 담임선생님의 힘이라고 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 오늘 너무 멋있었어. 엄마 감동했잖아. 수업시간에 집중도 잘하고 최고야."

"그래? 나도 오늘 엄마가 교실에 있어서 좋았어!"

"그런데, 아까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선물 말인데, 그건 왜 엄마를 주고싶었어?"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꽃, 반지, 하트 등을 선물하고 싶다고 그려놨는데 우리아이만 유튜브캐릭터를 그려놨다. 안그래도 얼굴 대신 스피커인지 뭔지가 달려있어서 그 캐릭터를 모르는 사람은 좀 흠칫할만한 형상인데, 평소에 내가 알던 모습보다 더 기괴하게 그려놔서 흡사 괴물같았다.


난 아이가 주제를 듣지도 않고 종이를 받자마자 본인이 좋아하는 캐릭터부터 그렸고, 뒤늦게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선물을 그리라는 말을 듣고는 차마 지우지도 못하고 새로운 종이를 달라고 하지도 못해서 그냥 들고 나왔을 거라고 추측했다. 앞으로는 선생님의 지시를 먼저 주의깊게 듣고 행동하라고 말하려는데,


"아~ 그거 시중에는 없는 업그레이드 버전인데, 내 꿈에 나왔어. 너무 멋있어서 엄마한테도 보여주고 싶어서 꿈에서 본 대로 그렸어!"


그랬구나. 너의 상상속에서 경험한 멋진걸 엄마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정말인지 아닌지, 그냥 내 추측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멋지게 해내고 있는 아이인데. 뭐가 되든 지금처럼 차근차근 적응하고 나아가면 다 좋아질 것이다.


아이의 작고 소중한 시작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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