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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ep 23. 2019

아들 키우는 법

남녀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질 때

책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우리집 거실은 TV가 없고 책이 그득한 책장에 둘러싸여있다. 책이 주변에 많으니 자연스레 책을 읽기도 하지만, TV가 없으니 할 일이 없어서 책을 읽게 되는 것도 있다. 특히 유명하거나 회자되는 TV프로그램이 있으면 아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TV를 실컷 볼 수 있는 야간근무를 조금 좋아하는 편이다. 이번주 캠핑클럽은 드디어 핑클이 무대에 서는 것 같던데, 다음주 야간근무가 없다는게 아쉬울 지경이다.


여튼 그래서 TV를 볼 기회가 잘 없는데, 어느 날 TV가 있는 친정집에서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수개월 전에 본거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어쩌다 어른' 류의 강연 프로그램이었고, 미술 관련 교육전문가가 나와서 아들 다루는 법 등의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었다. 요즘같은 세상에 아들 딸 구분해서 키우나, 딸이 핑크색을 고르면 적극 만류하는게 요즘 부모의 역할 아닌가 하면서 시큰둥하게 보고있는데, 강연 내용은 내 생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강연의 요지는, 딸과 아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므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외출 후 손을 씻기고 싶을 때, 딸에게는 "손을 씻지 않으면 손에 세균이 살아서 감기에도 잘 걸리고 배도 자주 아플거야. 그러니까 손 씻자" 라고 말을 하면 손을 씻지만 아들은 귓등으로도 안듣는다는거다. 아들에게 손을 씻게 하고 싶으면 주구장창 이어지는 보건교육적인 설명이 아니라 단도직입적이고 직관적으로 말을 해야한다는 것.

"지금 손을 씻지 않으면 너는 내일부터 자전거를 타지 못해." 이렇게 말하면 아들은 주의를 확 기울이며 듣기 시작한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면, "손을 안씻으면 너는 감기에 걸리거나 배탈이 날 거거든. 그렇게 되면 아파서 자전거를 탈 수가 없지? 그러니까 손을 씻어야 해" 라고 답해주는거다. 그러면 아들은 자전거를 못타게 될까봐 손을 얼른 씻는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미술 점수가 아들들이 낮게 나오는 이유가 미술 평가의 대부분이 사람을 그리고 집을 그리고 풍경을 그리는 등등의 작업인데 기본적으로 여자애들이 잘할수밖에 없다고 한다. 여자애들은 사람을 관찰하고 종합적인 풍경을 잘 포착하는 성향이 있어서 그런 그림을 잘 그리는 반면, 남자애들은 그런 능력이 여자애들보다 떨어진다고 한다. 대신 자동차를 그린다던가 공룡을 그린다던가 하는 평가를 하면 남자애들 점수가 월등히 높을거라고 한다. 결국 평가방식이 문제가 있을 뿐 아들들이 딸들에 비해 뒤떨어지는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결론은, 남자와 여자는 본질과 특성이 다르니 아들과 딸은 다르게 키워야 한다는 것.


그런데 너무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와 여자는 기본적인 기질부터 이렇게 다른데,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오면 그 다름을 부정해야하고 똑같이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게 이상하다.

내가 신입사원일때만 해도 커피를 타달라는 팀장들이 종종 있었다. 그때는 아예 취업면접 때 질문 중에 "팀장이 커피를 타달라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류의 문항도 있었을 정도로 구시대적이었다. 어쨌거나 젊은 여직원으로서 부서장의 커피 심부름을 어떻게 현명하게 거절할 것인가가 화두였던 시대였다. 커피를 타다 드리기 시작하면 주구장창 허드렛일을 맡게될까 두려워 했고, 거절하거나 예민하게 굴면 중년층 여자선배들이 미리 커피를 타다드리거나 오히려 남자선배들이 쾌활하게 웃으며 커피를 타던 시절.

특히 남자와 여자는 기본적으로 다름이 없어서, 회사가 남자를 뽑든 여자를 뽑든 동등하게 일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여 "생수통을 짊어지지도 못하는 여직원 뽑아서 뭐해?" 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생수통을 기를 쓰고 집어들다가 남자선배들의 "내가할게 제발!"이라는 외침을 들어야 했다.


업무에 있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여자가 커피를 타야한다는 건 명백한 성차별이다. 하지만 생수통을 짊어지는건 남녀를 떠나서 힘이 센 사람이 하는게 맞다. 힘이 약한 사람한테 힘센 사람보다 더 씩씩하게 생수통을 들어올리라고 하는게 평등은 아닌데 말이다.

어린 아이를 키울땐 성별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맞게 훈육방식을 달리하면서, 다 큰 어른이 되어서는 차별과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상당 부분을 "나약하고 민폐를 끼치는 여성캐릭터" 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 같다.  이 사회의 수많은 남녀성대결 논란들도 다시 한번 불필요한 논쟁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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