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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Apr 19. 2021

[이 시국에 장막 희곡] 서로 다른 우리를 믿는다.

2주차> 희곡의 주제, 말하고 싶은 바 명확하게 정하기

둘 다 틀린 게 아니다.

이 무슨 황희 정승 같은 말이냐.

좀 나이브한 이야기 같지만 한 편으론 트랜스젠더인 나와 시스젠더 여성이 친구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 할 때 꼭 이런 방향의 주제로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틀려야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 입장이 달라도 우리는 여전히 잘 지낼 수 있다.     


‘여전히 두루뭉술한 것 같기는 하지만....’

최근에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그 친구에게 니키 리가 유퀴즈에 등장한 영상을 봤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니키 리의 전 작품들이 특히 자신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인지하고 표현한 작업물이라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나는 (유퀴즈만 보고선 그 작품 안에서 여성 정체성을 느낄 수 없었기에) ‘내가 본 건 안 그랬거든?’ 이런 식으로 반박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사실 그 친구의 감상은 근거 있는 것이었다.

좀 더 찾아본 니키 리의 작품들은 확실히 어떤 연작인지에 관계없이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여성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그저 ‘유퀴즈에선 그런 작품은 빼고 좀 더 보편적인 문화체험 느낌의 사진들만 선별해 보여줬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공공의 적을 내가 먼저 내세우고선 논쟁의 상황을 피했다.

친구는 그래서 남성 작가들과 다르게 자신을 피사체로 내세운 점, 유독 여성들과 찍은 사진이 많은 점 등을 추가로 설명했는데...

모두 친구가 먼저 설명하기 전에는 내 눈에는 안 보인 부분이었다.

다만, 나는 내가 못 봤다는 것을 인정하면 곧

‘한남=진정한 여성 아님’을 증명하는 것 같아 오히려 발끈하며 나의 편협한 감상에 대해 부정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니키 리를 유태오 부인분이라고 이야기했다.

친구가 니키 리라고 말해서, 다시 그녀의 이름이 뇌리에 들어왔었다.

아무리 고유 명사를 헷갈리는 나였지만 그건 분명 차이였다.     


내가 느끼는 관계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그냥 다르고, 내가 배울 점이 많은 친구이면 좋은 것일 텐데 그 부분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비단 나만의 탓은 아니고, 젠더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성별 정체성을 부정하는 상황이 왕왕 벌어지긴 하니까. 거기에 내가 더 파르라니 놀라며 부정부터 하는 것 같다.

예컨대, ‘여자면 화장 좀 해야지’ 말하는 생물학적 여성에 대해 여자가 아니라고 그 성별 자체를 부정하는 힘은 없으니까?

반면 트랜스젠더의 경우엔?

젠더 감수성은 ‘한참’ 부족한 와중에 화장은 하며 자신을 여성이라고 주장하니,

그들은 가장 악질의 적으로 인식된다.

꼭 트랜스젠더들이 다 생의 끝으로 몰리면, 성 평등이 이뤄질 것이라 여기는 운동들도 많았다.

(내 생각에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을 여성이라 주장하는 건 결국 자신들도 스스로의 믿음에 맞는 성별이 존재한다, 즉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닐까? 물론 낡은 사고들이 분명 존재한다. 헌데 몇 년 전 드라마 김삼순만 해도 여주 머리카락을 싸가지 남주가 가위로 잘라버리고 케잌을 얼굴에 던지고 하던데... 그 문화를 향유하던 시스젠더 여성 시청자를 보고 성 평등을 위협하는 최첨병, 여성 아님, 곧 괴물이라 말하진 않잖아?)     


더 어렸을 땐 서로에 대한 이런 몰이해 때문에 싸우기도 했었다.

이제 와선, 우리끼리는 괜찮은데 또 사회적인 시선을 생각하며 혼자 이렇게 이상한 짓거리를 할 때가 있다. (친구의 니키 리에 대한 감상을 듣고 갑자기 부정해버리는..)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입장에서 더 많이 생각한다.

한편으론 입장이 다르다는 말 자체가 ‘일반’의 범주에서 나를 배제하는 것 같아 신경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건 사실이다.

세상에 어떤 젠더 위계도 없다면, 트랜스젠더들 역시 자신을 또 다른 성이라 자유롭게 말하며, 스스로 패싱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도 않을 텐데...

그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     


으으. 왜 주제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흘렀지.

내 이야기의 주제는 이런 것이다.

결국 누군가를 대할 때 내가 불편한 지점은, 그 지점이 나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트랜스와 시스,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다루는 데 이런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시킬 것이다.

그래서 결국 반목하고, 자조하느냐?

나는 친구가 니키 리에 대해 설명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더 어렸을 때라면, 미안하다고 말했을 텐데,

진심으로 내가 고맙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좀 다행이다.

실제로 친구의 말을 듣고 찾아본 니키 리의 작품들은 유퀴즈에서 비춰준 것 이상으로 좋았다.

친구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친구의 감상 뿐 아니라 나의 감상이기도 했다.

지속되는 관계가 주는 그런 태도의 변화를 믿는다.

내가 여성 작가인 니키 리와, 그리고 내 친구와 소통할 수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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