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지하철 속 외로움

완벽한 타인이면서 이렇게 찰싹 붙어있는 아이러니라니.

by 트윈블루

지하철 타고 가면서 책을 보면서 가는 날이 있는 편인데,

읽다 보니 예전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 이라기보다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이 더 맞겠다 싶은 그런

모습들로 가득 차 있음을 문득 깨닫고 책을 덮고는, 조금 더 주의 깊게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는 예전 어릴 때 지하철은 서로 시끄럽게 떠드는 시장 바닥 같은 느낌으로 기억한다.

공공시설에서는 정숙'해야 한다는 안내 팻말도 지하철 객차 끝 연결통로 위에 붙어 있었던 것 같다.

각 만원 객실을 파고들며 스포츠 신문과 일간지를 판다고 소리치며 다니는 사람들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면, 너무 옛날이야기인가?


지금도 만원 지하철인 건 변함이 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꽤 많이 바뀌었단 생각이 든다.

저마다 바쁘다.

어떤 사람은 뭘 보느라고 바쁘고 눈을 감고 자느라고 바쁘고 귀를 막고 무엇을 듣느라 바쁘고,

아무것도 듣지 않고 잠을 청하느라 그렇다. 잠을 청하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지만, 그 수는 꽤 적어졌다.


내가 서있는 객실 주변에 사람들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한다.


지금 내 눈에 먼저 보이는 사람들은 지하철 객실 내 좌석에 앉아 있는 일곱 명이 눈에 들어온다.

네 명 아니 다섯 명은 여자고 두 명은 남자다.


첫 번째 여성은 휴대폰으로 보고 있고 두 번째 여성도 휴대폰을 보고 있고 세 번째 여성은 귀까지 막고 휴대폰을 하고 있고 네 번째 여성분도 휴대폰을 하며 귀를 막고 있다.

다섯 번째 좌석에 앉아 있는 남자도 귀를 막고 휴대폰을 하고 있고 여섯 번째 남성만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일곱 번째 여자는 핸드폰을 하고 있지 않지만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무엇인가를 듣고 있다.


내 주변에는 만원 지하철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둘러싸여 있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며 내 주위에 몇 명이나 있는지 세어본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다섯 명... 약 11명 정도가 직접적으로 내 반경 1m 이내 붙어 있는 꽤나 혼잡도가 높은 퇴근길 만원 지하철이다.


문화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거리를 4가지 단계로 정의했는데,

친밀한 거리는 46cm / 개인적 거리는 120cm / 사화적 거리는 360cm/ 공적인 거리는 그 이상부터~

라고 정의를 했다. 사람과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는 거리는 개인적인 거리를 침범할 때 느끼는 거리인데, 내 반경 46cm 이내에는 친밀하지도 않은 사람이 9명이나 서있다는 건 참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기에, 아마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지우기 위한 도피 수단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9 명 중에 귀를 막고 있는 남성은 4명, 귀를 막고 있지 않는 남성은 2명.

귀를 막고 있는 여성은 1명, 귀를 막고 있지 않은 여성은 2명.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려 감싸고 있는 9명의 사람 중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람은 8명.

나머지 한 명은 여성인데 연인과 함께 있기 때문에 굳이 스마트폰의 필요를 못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맨 앞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은 넷플릭스의 뉴스 탭을 보고 있고 곧 공개 예정인 드라마 혹은 영화 리스트를 보고 있다.


왼쪽 남성은 유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으며, 가끔가다 메시지를 확인하며 영화를 보고 있다.

아. 방금 카카오톡으로 누구한테 메시지를 보낸 거 같다.


내 대각선 좌측 여성은 네이트 판을 하면서 쇼핑 리스트를 보고 있다 베스트 10 뭐 이런 거 말이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파란색 폴로티셔츠를 입고 있는 남성은 곰돌이 TV라는 걸 보고 있다. 야구 중계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내 우측에 서 있는 검은색 캐주얼 후드티를 입은 키가 작은 여성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게임을 엄청나게 집중해서 하고 있다. 예전 그 ez2dj 같은 그런 리듬게임 느낌 말이다.


내 우측 대각선에 있는 남성분도 유튜브로 보고 있다. 어떤 영상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부러 훔쳐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내 사적인 거리를 넘어 친밀한 거리 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저절로 내 눈에 담겨 보이는 것을 그저 묘사했을 뿐이다.


객실 내 출입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환승역에서 대거 내려 자리 여유가 생겨 위치를 조금 옮기고 뒤를 돌아서 조금은 편한 객실 한가운데 자리로 들어가 손잡이를 잡는다.

그새 만원 지하철에서 약간의 사람이 빠져 여유가 생겼다.


위치를 바꾸며 자연스레 내 뒤편에 있었던 새치가 많은 남성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분만은 유선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지 않고 눈을 감고 있다. 내 후면 좌측에 서 있던 남성은 보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그저 내 눈에 노출이 된 영상을 토대로 추론하자면 운전하는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 있고 곧이어 사고가 나는 걸로 봐서는 한문철의 블랙박스 채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오토바이로 사고가 나는 장면까지 내 눈에 담긴다. 으윽.. 오토바이 타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아마 잠깐 그의 생각과 겹쳤는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빈자리가 생기면서 하얀색 남방을 입은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성분이 자리에 앉게 되었고 한 여성분이 비좁은 자리를 피해 내 앞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분 또한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을 하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보이고 싶지 않아 눈을 피한다.

아무리 내 눈앞에 이런 장면이 그저 노출되어도, 그렇게까지 보임당하고 싶진 않다.


내가 보고 싶어서 보는 것도 아니고 내 시선에, 내 개인적 거리를 넘어 친밀하게 여기는 거리까지 침범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것을 그냥 기술했을 뿐이니까 말이다.


내 오른쪽 사선에 서 있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은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더니

다음 환승역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내려서 제법 이제는 자리가 좀 챙기고 더 먼 곳까지, 다음 의자까지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그럼 지금처럼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없단 말인가?

내 주변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지하철 한 칸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가만히 천천히 세 보니 30명 정도 다. 30명 중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음 굳이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한다면, 눈을 감고 아무것도 듣지 않은 채 잠을 자는 것 같은 사람 딱 한 명 정도?


나머지는 모두 무엇을 하고 있다. 손에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있고

귀를 블루투스 혹은 유선 이어폰으로 막고 있으며

무엇인가를 찾거나 모든 걸 보고 있다. 모두 INPUT만 하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으로 카톡을 하는 듯 스마트폰으로 테스팅을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아. 통화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긴 있구나.

통화하고 있는 분은 핑크색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검은색 후드의 아무리 봐도 임산부처럼은 보이지 않는 중년의 여성만이 유일하게 통화를 하고 계시는군..


이렇게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는데

아무도 내게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곳에서 나는 정말 완벽한 타인인 것이다.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그들의 친밀한 거리에 나 포함 9명이나 옆에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의 일상의 개인적인 한 파편을 "본의 아니게 공유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곤, 군중 속 고독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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