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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블루 Dec 15. 2021

소울 수프로서의 오뎅국물

완벽한 오뎅국물이 되기 위한 T.P.O.


국물 요리가 꽤 자주 생각나는 겨울이 된 것 같다.



국물 하면 떠오르는 건 국물떡볶이의 달큼한 국물과,


집 앞에 맛있게 끓여주는 닭 한 마리의 국물도 생각나고,



군 시절 끔찍한 트라우마와도 같았던 미역국 국물도 생각난다.


닭 미역국이었는데  닭이 미역에 염색돼서 초록색으로 염색된 닭이 


뼈째로 뭉텅뭉텅 떠있던 초록색 미역국..





아무래도 베스트 원을 꼽자면, 어묵 국물이 아닐까 한다.


음... 어묵국물이라고 하니 기분이 살지 않는다. 오뎅국물이라고 해야


 더 짭짤하고 뜨끈하게 느껴지는 느낌?



겨울밤에 야식으로 먹던 떡볶이와 오뎅을 팔던 포장마차는 


이제는 여러 가지 사유로 보이지 않아 아쉽다.


오뎅국물은 겨울철 국물의 클래식이랄까, 소울푸드랄까,


그런 기본적인 공식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말이다.



 국물은 잘 먹지 않는 나도 오뎅국물만큼은 생각날 때가 많은데 


길거리에서는 붕어빵 노점과 같이 거의 멸종 위기 업태로 지정해야 할 만큼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달라져 이제 정말 보기 어려워진 것 같아 아쉽다.



물론 먹고 싶다면 얼마든지 마트에서 간편하게 키트를 사다가 해 먹을 수 있지만


입으로 느끼는 맛은 똑같지만 체감하는 맛은 전혀 다르기에 가끔은 아쉬울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오뎅국물의 TPO는 다음과 같다.



T:  저녁시간을 조금 넘긴듯한 해가 지는 시간 ~ 막차가 끊기기 전 새벽이라 불리기 전 완벽한 밤이 딱 좋겠다.


     아침 혹은 낮에는 기온이 온화해서 적당히 코트 정도를 걸쳐 입었는데 


    저녁이 되면서 기온이 떨어져 옷깃을 여미면서 식당까지 찾아가거나 하기 귀찮다..라고 생각할 만한 계절도 좋지.


    연말쯤이라면 이런저런 인사이동과 퇴직과 발령 등 이야깃거리가 쌓여있을 테니 안줏거리도 마련되어 있는 좋은 시간이다.



P:  겨울, 늦가을이나 초봄까지는 봐줄 수 있지만 밖에 돌아다니기 좋은 기온이어서는 전혀 기분이 나지 않는다.


     기온이 체감하기에 으으~ 하고 싸늘한 느낌이라면 바람이 불어도 괜찮지만


     춥다'라는 수준의 기온이라면 바람이 너무 몰아치면 노점 안에까지 추운 바람이 몰아쳐서 


    오뎅국물의 온기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빨리 허기만 때우고 가고 싶어 지기 때문에 심각하게 추워서는 안 되는 느낌이다.


     사무실 등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지하철 앞이나 버스정류장 근처가 좋다.



O: 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잔업이나 원치 않는 어떤 이벤트 발생으로 


     저녁을 대충 때우거나 아예 끼니를 놓친 상황,


    동료, 혹은 친구와 실내에서 나오며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사뭇 추워진 공기와 


     허연 입김과 함께 간단히 먹고 헤어지는 분위기면 괜찮지. 




 오뎅국물은 미지근한 곳보다는 한참 끓이고 있어 꽤 뜨거워야 해서 


후후 불어서 식혀서 마시는 편이 좋고,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그 뜨끈한 온기가 순식간에  온몸에 퍼지면서 


차가운 몸을 덥히는 훈훈한 온기가 드는 느낌이 들 그때, 


나도 모르게 크으으, 좋구먼, 이라고 절로 감탄사가 나왔던 것 같다.






뭔가 까다로운 것 같지만, 꼭 이런 상황이어야만 마시겠다 이런 건 아니지만,


이런 모든 TPO가 어쩌다 충족되면 


오뎅국물은 더 이상 단순한 국물 따위가 아니라


차가워진, 혹은 온기가 빼앗겨 식어버린 내 몸과 마음을 데워주는 소울 수프 수준이 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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