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짝을 맞더라도 이 정도는 괜찮잖아?
"벌써"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었다. 믿기지 않는다.
"벌써"라는 시간의 속도 측면에서도 믿기지 않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분위기 측면에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시간이 눈 깜짝할 새..라고 표현하기엔 눈을 지그시 감고 한숨을 푹 내쉬는 느낌이라 깜짝'이란 단어를 쓰긴 민망하고, 쏜살같이..라고까지 하긴 속도감이 양궁처럼 경쾌하고 짜릿한 느낌도 전혀 아니어서, 시간에 대해 붙일 적당한 단어를 찾다가 올 한 해는 뭐랄까 일주일 단위로 흘러간 게 아닌 2주씩 질척 질척, 얼렁뚱땅 지나간 느낌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분위기도 상점의 현황은 역대급으로 좋지 않기도 하고, 애초에 영업 자체를 9시 이후에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연말 분위기를 만드는 대표적인 아이템인 알전구, 줄 조명 등을 상점에 붙일 이유가 없어졌으니 당연히 거리에서 조명은 사라져 버렸고, 많은 사람들 또한 연말 분위기를 즐기며, 연말 담소를 나눌 저녁시간 오프라인 공간이 없어져 버린 만큼 그나마 예의 상 달려 있는 공공시설물의 조명들을 나가서 볼 약속 장소에 가야 그런 조명이나 음악들을 경험할 텐데 그럴 기회조차 없어져 더더욱 시즌 분위기는 안 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역대 크리스마스 때마다 우리는 케이크를 사서 소소하게 기념을 하곤 했지만, 올해는 분위기도 그렇고 모이지도 않으니 나도 얼렁뚱땅 넘어갈까,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투썸을 갔다가 굿즈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려 불멍을 할 수 있는 LED 벽난로 램프를 팔다니! 그리고 케이크를 사면 저렴한 가격에 저 녀석을 살 수 있다니! 갑자기 물욕이 마구마구 솟구쳤고, 매장에 디스플레이된 벽난로 램프는 일렁 일렁거리며 아니, 살랑살랑거리며 나를 가져'라고 소곤거리는 것 같다. 귀찮아서 깔지도 않던 앱을 깔고 케이크 예약 주문을 한다. 집 근처 투썸이 어디 있는지 그제야 알게 된다.
이제 케이크를 선택해야 하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는 딸기가 들어간 하얀 생크림 케이크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하얀 생크림 위에 딸기가 잔뜩 올라간, 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별다른 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를 했을 텐데, 이번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딸기 정도는 양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뭔가 나를 위한 분위기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억울한 느낌까지 들어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결제해버리고 말았다. 스트로베리 초콜릿 생크림 케이크 말이다.
아마 몇 가지 약속이 취소되고, 기대했던 만남이 계속 미뤄지거나 감질나게 쫓기듯 식사만 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등, 포기해야 하는 옵션들이 너무 많아져서 그동안 뭔가 내 마음속에 쌓여있었던 모양이다.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케이크 정도는 내 맘대로 살 거임. 뭐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결제하고 나니 약간은 철없는 어른이 같은 짓을 한 것 같아서 뒤늦은 후회가 조금은 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콜릿 케이크는 양보해 줄 생각이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고 뭔가 내 등짝을 내가 때리고 싶은 기분마저 들지만, 그렇게라도 일을 벌여야겠다, 예쁜 쓰레기가 될 것 같지만, 벽난로 램프도 사버릴 테다!
이런 것 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다!
라고 꿈틀꿈틀, 내 마음속에 눌린 무언가가 내게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