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 좋아하시나요?
오랜만에 집에 앉아 TV를 볼 기회가 생겼고, 연말 특집으로 성시경이 나와 노래를 한다. 오래간만에 흠뻑 빠져서 공연을 관람하듯 몰입해서 음악을 들었다. 2000년도 초반에 히트했던 그의 많은 노래들이 메들리처럼 흘러나오는데, 뭐랄까. 추억이랑 같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유독 그때의 노래들이 따뜻하고 연말 기분을 물씬 만들어 내는 건, 아마 그때의 길보드 차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그렇게 저작권이란 개념이 그렇게 철저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길거리 상점들에는 저마다 외부에 스피커를 설치하곤, 그때의 유행하는 노래들을 각자 선곡해 베스트로 편집해 틀어줬었다. 연말이 되면 길거리에는 온통 분위기 있는 노래들과 성탄 캐럴들로 시끌시끌, 가득가득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저작권 개념이 점점 커지고 자리를 잡으면서 길거리에선 더 이상 노래를 들을 순 없어졌고, 덩달아 길보드 차트라 불리던 시절은 생소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대신 멜론이나 벅스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의 순위로 판가름 짓는 시대가 되었지. 개인적으론 저작권의 잣대를 개인 상점들에게까지 적용한 게 연말 분위기를 없앤 주범(?)이며 마치 길보드 차트가 없어지는,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행동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뭐 어디까지나 정말 개인적 감상일 뿐이다.
성시경 노래 중에 제일 좋아하는 곡 중 하나는 2003년 개봉한 국화꽃 향기의 OST였던 희재다. 국화꽃 향기를 영화가 아니라 책으로 먼저 접했던 나는 무척 그 책을 사랑했고 그 후 OST를 MP3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그때의 서투른 마음들을 그 음악을 통해 표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OST를 유튜브로 찾아볼 때면 이젠 별이 되어버린, 아름다운 배우 장진영 님을 볼 수 있기도 해서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아무튼, 성시경의 노래는 그때 많은 젊은 남성들이 그랬듯이 좋아는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좋아하긴 뭔가 마음속에 그런 노래로 기억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주변 여자친구들이 성시경의 노래를 그렇게 좋아했으니, 그 치기 어린 마음이랄까, 뭔가 질투 어린 감정이 조금 담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서 내 감정을 쥐락펴락했던 그 친구들도 추억의 한 페이지로 멈춰버리고 남은 감정들은 그때 노래에 녹아버려서 그 노래가 들릴 때면 슬쩍 슬쩍 그 감정들을 음미할 수 있는 기분이 되는 것 같아서 좋은 듯하다.
노래에 흠뻑 빠져서 TV 앞에 앉아있다 보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집에서는 최근 잘 먹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커피 생각이 둥실둥실 떠올라, 따뜻한 커피를 한잔 내리곤 제대로 음악 감상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흡족한 마음으로 감상을 한다.
음악 감상을 하며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으며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불현듯 예전에 음악 감상을 위해 들렀던 대학로 재즈 바였던, '천년동안도'가 생각났다. 거기서 그때 당시 학생 시절 약간은 사치스러운 가격으로 기억했던 입장료를 지불하곤, 음료를 시켜놓고, 재즈 공연을 정말 온몸으로 박자를 타면서 빙글빙글 웃으면서 즐겼던 그때 말이다.
지금도 천년동안도'라는 재즈클럽이 남아있던가? 검색해 보니, 아직 남아있다. 그때는 대학로에 있었는데, 2018년에 클럽을 종로 인사동 쪽으로 이동해서 계속 영업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귀찜 거리로 옮겨진 재즈클럽이 그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기분을 주지만, 그래도 있어주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한 일인 걸로 정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