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여행을 갈거고요. 그 다음은 저도 몰라요.
나는 흔히들 말하는 적절한 시기에 부여된 사회적 과업을 이루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었다. 사범대에서 인문학을 굳이 복전하고 6년만에 졸업. 인문대 대학원 진학. 1년이면 마무리지어야하는 석사 논문을 쓰는데만 4년이 걸리고. 낮은 연봉으로 시작하기는 싫다며 이전에 경험도 없던 광고 대행사를 대학원 경력 인정도 못 받은 채 30살이 되어 입사했다.
생각해보면 인문학 전공자로서 당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옵션 자체가 몇개 없기도 했지만, 활동적이고 재밌어보이는 업무 자체에 대한 동경이 나의 커리어 시작을 광고로 이끌었던 것 같다.
제안, PT가 이어지며 내가 상상했던 수준 이상의 야근이 시작되었고, 내가 입사 1개월 만에 들은 첫 조언은 다음과 같았다.
버텨야 한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처음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왜 버텨야 하지? 버티지 않고 즐기면서 혹은 그냥 열심히 일하면 안 되는 건가? 왜 꼭 무언가를 버텨야하는 근무 환경이 만들어진 걸까?'
이런 의문들을 계속 품은 채 나는 겉보기에는 '버티고 있는'사람이 되어 어느새 4년차가 되었고, 이는 내가 퇴사하는 날까지도 혹은 퇴사 이후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는 단순히 내가 속해있던 회사나 업계에 한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조금은 유행이 지났지만 '존버'라는 유행어까지 나올 정도로 '버티는 생(生)'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고 있음은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다.
일을 하다보면 업무와 그 과정 전부가 모두 합리적이거나 효율적인 방식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불만이나 어려움들도 이겨내어야 내게 무언가 남는 것이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라는 건 이제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버티기를 포기한 이유는 이런 것들 때문이다.
나를 버티도록 지탱해주는 단단한 기둥의 부재, 참고 넘길 수 있을 만한에 대한 기준치 초과.
이 이유들은 다시 돌아가 야근으로 귀결된다. 겪어보기 전에 상상을 하던 야근하는 삶이란 이러했다. 일이 넘치도록 많고 바빠서.. 불 꺼진 사무실에서 개인 등을 켜두고 머그컵에 홍차를 마시며 머리를 쥐어짜는 커리어 우먼? 그게 바로 나?
하지만 대부분의 상상과 달리 야근은 일보다는 기다림의 시간이 많았고, 주말 출근까지 이어지는 나날들이 쌓이며 무엇보다도 온전한 나의 시간이 없어져간다는 것이 비참했다. 내 시간이 없어지니 자연스레 나의 삶에 대한 고민도 사라지고 그저 나는 일하는 부품 중 하나가 되기 위해 살아온건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분명히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기에 더욱 이 일을 평생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 밤 나는 덜컥 파리행 비행기를 예매했고,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티켓을 샀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라고 시작하는 말이 관리자 직급에선 가장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말을 꺼내자 상사는 예상했다는 듯이 당황스러움과 기막힘이 섞인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어진 1시간 여의 설득. 정말 걱정되고 아끼니까 하는 말이라고 포장된 위협섞인 말들.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물론 이미 티켓을 샀다는 건 비밀이고.
위장된 숙고의 시간 끝에 다시 퇴사 결심을 굳혔다는 의사를 밝혔고, 여행 가는 건 좋은데 갔다와서 뭐하게? 여행이 그렇게 가고 싶으면 3주 휴가를 줄게, 그러다 커리어 끊기면 어떡하니? 그동안 다니면서 뭐가 힘들었는데? 와 같은 질문 아닌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글쎄요, 그냥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글을 쓰는 이 시점은 퇴사한지 5개월차,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하는 '어떻게든'을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해보고자 한다.